주말에 아이와 교보문고에 갔다. 모두가 아는 바로 그 이유로 사람들이 평소보다 적어도 두 배는 많았다. 내가 주인인 것처럼 으쓱했다. 새로운 알바생도 대거 투입된 것처럼 보였다. 뭔가 흥성거리는 이 축제의 느낌이 신 났다. 고른 책을 결제하려다 젊은 알바생에게 십 프로 쿠폰이 계정에 있냐 물었는데 없단다. 그 앞에서 모바일로 영업점 체크인을 하고 쿠폰을 바로 받으려고 하니 바로 눈에 안 띄어 당황했다. 나는 이제 이런 모습을 들키는 게 신경 쓰이는 나이가 됐다. 그래서 침착을 가장한 채 다시 오겠다고 하고 교보문고 한강 작가 책이 품절됐다는 안내가 있는 매대에서 열심히 영업점 체크인 쿠폰을 찾아 헤맸다. 한참이나... 정말 너무 오래여서 내 자신이 싫어지려 했다. 드디어 찾았을 때 이 모습을 누군가가 봤을까 봐 부끄러워 다른 직원에게 가려 했으나 하필 그 아르바이트생과 눈이 바로 마주쳤다. 나는 짐짓 처음인 듯 이 책을 내밀었다. 


"이 쿠폰을 찾으시려고 그러셨군요." ㅋㅋㅋ

아르바이트생이 굳이 아는 체 해준다. 그래 노화란 그런 거다. 







내가 십 프로 쿠폰을 힘들게 찾아 결제한 책은 바로 이 책이다. 왜 하필 또 이 책인가. 칠십 대의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저자가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노화 과정을 세포에서 일어나는 단백질 대사 기전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고 더 나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항노화산업붐에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과학책일 수도 있고 철학책일 수도 있다. 잘 읽히고 매력적이고 심오하다. 


"할 수 있다고 반드시 해야 할까?" 이 도발적인 질문은 작금의 수명 연장 기술과 각종 항노화 산업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우리가 "삶이라는 축제의 현장"에서 홀로 떠나야 하는 그 필연성을 부인하는 것이 과연 잘 사는 삶에 도움이 될수 있을런지에 대한 도발적 반문이다. 의료 기술, 과학의 발전으로 우리가 우리의 노화를 뒤로 미루고 삶을 연장하는 것이 그리고 그럴 수 있다는 환각을 주는 것이 가지는 궁극적 의미란 무엇인가?


나는 우리가 훨씬 오래 산다고 해서 훨씬 만족스러운 삶을 살리라 확신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1세기 전보다 수명이 두 배 늘었지만 여전히 만족스럽게 살지 못한다. 오히려 죽음에 더 집착하는 것 같다. 120살이나 150살까지 산다면, 그때는 왜 300살을 살지 못하느냐고 불평을 늘어놓지 않을까? 수명 연장을 추구하는 것은 신기루를 좇는 것과 같다. 진정한 영생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어떤 것도 충분치 않다.

-pp.330


노화가 불쾌한 것은 그것이 마치 다가올 죽음의 전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 인지능력이 퇴화하고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건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다 하나의 불길한 해석이 된다. 인생의 유한성이 그것이다.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산업의 백만장자들이 그토록 항노화 사업에 매달리거나 참여하는 기저에는 내가 이생에서 성취하여 가진 그 모든 것을 두고 가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기 힘든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을 회피하는 방법이 절대로 인간의 과학기술일 수는 없다는 게 과학자이자 노인인 저자의 제언이다. 그의 어조는 냉철하고 냉정하다. 지금으로서는 노화를 막는 방법도 죽음을 무한정 늦추는 방법도 없다고. 받아들이고 쿨하게 떠나라고. 말은 쉽지만. 글쎄다. 내가 나의 어리버리함을 타인에게 들키기 싫어하는 마음의 기저에도 그런 두려움이 깔려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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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4-10-21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불편한 것들이 생기는데, 그것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서 조금 두려워요.
가장 두려운 것은 늙는다는 것 자체보다 늙어서 아픈 것이죠.
아프면 돈이 들텐데, 늙고 아프면 돈을 벌 수 없고,
그러면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니, 그점이 제일 싫고 두려워요.

늙어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다 딱 적절한 시점에 죽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blanca 2024-10-22 11:17   좋아요 0 | URL
나이듦이라는 건 아무리 이론적으로 들어도 내 몸에 나타나야 비로소 실감 나는 것 같아요. 제가 기대하는 노년과 죽음이 가능할까 가끔 너무 두렵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