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서관에서 학부모도우미의 역할은 사서교사보다 훨씬 더 많고 중요하다.
내가 아는 한 초등학교에서는 도서실의 학부모도우미들이 팀을 짜서 한 달에 한 번씩 인형극도 공연해주고, 매주 그림책도 읽어주고, 도서실에 구비할 책도 직접 고른다.
그 학교는 일단 목록으로 고른 책을 대형서점에 가서 직접 읽어보고 편집이나 삽화 같은 것들까지 꼼꼼하게 살핀다고 한다.
우리학교의 학부모도우미들도 정말 훌륭한 분들이 많다(아니 많았다). 어린이도서연구회나 이런저런 단체들, 대학의 평생교육원 같은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손으로 꼽을 수도 없고,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책을 선정하는 일을 하는 엄마도 있다.
심지어는 큰 대학도서관에서 십여 년을 근무한 엄마도 있고, 사서교사 경력이 십수 년인 엄마도 있으니, 경력 2년째인 나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그런 엄마들 앞에서 지난 해, 새로 부임한 교장선생님이 말했다.
엄마들이 선생님보다 더 잘 압니까? 도서실 책 선정은 선생님이 합니다.
(그래서? 이상한 출판사의 책을 똑같은 책으로 50권씩 들여다 놓았고, 나는 그 책 캐비넷 위에 쌓아두었다.)
도서바자회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겁니다.(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직접 고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는 엄마들에게)
아니, 우리 도우미들도 출판사 로비나 받는 그런 단체 사람들이라니 큰일 아닙니까?(어린이도서연구회의 책들은 출판사 로비 받아 선정한다는 도서바자회업자의 말에)
결국 도서도우미들은 교장선생님이 하시는 일마다 딴지를 거는 몹쓸 인간들이 되어버렸고, 올해는 아예 뽑지 않았다. 교장선생님이 뽑지 않으신다니 난 그냥 깨갱~
(작년의 도서도우미들은 학교운영위원회에 진출했다. 학교도서실 활성화가 공약이었고, 최다득표로 당선되었다.)
그래도 올해 도서실은 해야 할 행사가 많다. 돈을 벌 도서바자회도 해야 하고, 수천만원의 예산으로 리모델링을 해서 이전도 해야 한다.
그래서 교장선생님이 내놓으신 비장의 카드는, 어머니회에 도서발전위원분과(딴지 하나. 도서 발전? 여기가 출판사냐? 책을 발전시키게.)를 둔 것. 70여 명의 도서도우미들이 10명으로 팍 줄었다.
사서교사인 나는 10명의 도우미를 뽑겠다는 말도, 뽑았다는 말도, 그리고 그 명단도 '공식적으로' 들은 바는 없다. 비공식 루트로 전해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제, 도서발전위원분과장을 맡은 한 엄마가 전화를 하고 찾아오셨다. 자리를 주었으면 일을 시켜야지, 왜 아무런 얘기가 없느냐고. 무슨 일을 하면 되느냐고.
자신들은 리모델링을 위해 다른 학교에도 가 보고, 아이들에게 그림책도 읽어주고, '도서실' 발전을 위해 힘껏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단다. 작년에 70명이나 되는 엄마들보다 10명이니 소수정예로 더 열심히 할 수 있단다!
그리고 심지어는, 작년 같은 그런 도서바자회라면 자신들은 하지 않겠단다! - 빙고
올해도 쉽진 않겠다. 지금도 서너 시간의 운영위원회 혈전이 끝나면 바로
'도대체 운영위원들에게 무슨 얘길 한 거예욧!'
라고 인터폰하는 우리 교장선생님, 도서발전위원들까지 한몫 거들면 그 불똥은 다 나한테 튀겠지. 에이고, 내 팔자야.
그런데 왜 이렇게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겔겔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