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3, 4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이 물었다.
예의가 너무 바른 친구여서 기억에는 있는데, 내 머리가 나쁜지라 몇 학년인지, 그리고 이름이 뭔지 도통 기억할 수 없다.(용서해다오)
선생님은 무슨 색을 좋아하세요?
응? 노란색.
(매우 난처한 기색으로) 노란색 말고, 오렌지색이나 빨간색은 어떠세요?
(이때쯤은 다른 애들 대출해주느라 이미 시선도 거두고)응? 그럼 오렌지색.
그랬더니 10분쯤 후에, 오렌지색 색종이로 꽃을 한 송이 만들어왔다.
선생님, 선물이에요. 밖에 꽃이 많은데, 꺾어드릴 수는 없고, 제가 만들어서 드릴게요.
사소한 것에 목숨 걸며 감동하는 나는, 눈물이 왈칵 났다. 내가 나의 고마움을 표현할 새도 없이 그 친구는 뛰어가버렸다.
이 꽃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컴퓨터에 붙여 두었다. 사실, 구형 모니터에 다닥다닥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내 컴퓨터는 그 꽃의 적당한 위치가 아니었다. 6학년 도서부 아이들은 아주 난리다.
선생님, 촌스럽게 이게 뭐예요?
선생님 취미가 참 특이하시네요.
심지어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 아이들도 있다.
제가 더 예쁘게 만들어드릴게요. 제발 좀 떼세요. 저 이런 컴퓨터 앞에서는 도우미 못해요.
그래도 나는 꿋꿋이 붙여두고 있다. 언제까지? 그 친구가 볼 때까지.
그런데 그 이후로 일주일째 그 친구가 안 온다. 매일 오던 친구였는데... 어떻게 된 걸까. 내 반응이 신통치 않았을까? 조금만 더 기다리다가 TV는 사랑을 싣고 이런 데 나가야 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선물에 목숨을 거는 걸 알아버렸는지, 어제 또 선물을 받았다.
지난 2월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 친구에게서였다. 부활절이라고 달걀을 이쁘게, 아주 이쁘게 만들어왔다. 은박지로 달걀을 포장해서 바구니 모양을 만들고, 거기에 예쁜 꽃과 리본을 붙였는데, 도대체 아기자기한 것이나 예쁜 것과는 거리가 먼 나는 또 감동하고 말았다. 잠시 교무실에 다녀와 보니 벌써 다녀가 버렸다는데, 게으른 나는 연락도 못하고 있다.
또 있다.
금방 6학년 한 여학생이 수줍게 내밀고 간 편지.
민들레와 꽃 줄기로 만든 편지인데, 글씨는 딱 일곱 자,
선 생 님 사 랑 해 요
난 지금까지 선생님들이 어떤 아이를 편애하는 것을 교사의 자질 운운하며 손가락질했었다. 그런데 이제 조금은 이해가 가려고 한다.
점수를 주는 담임교사가 아니면 도무지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아이들 속에서 날 이렇게 좋아해주고 따르는 친구들을 내가 어찌 좋아하지 않으랴. 선물이나 밝히는 속물이라고? 할 수 없다. 내 본성이 그런 걸, 나한테 어쩌란 말이냐.
교무실에서, 아침부터 참 기운 빠지는 일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날 무시하고 깔아뭉게는 한 부장 앞에서, 확 받아버리고 싶은 걸 우아한 내가 참자고 꾹꾹 눌러 참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로 인해 나는 또 기운을 얻는다.
그래, 내가 언제 선생님들께 잘 보이려고 시작한 일이었더냐.
오늘 하루도 신나게 놀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