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학교에 사서교사가 되었다며, 견학차 한 선생님이 오셨다.
작은 도서실에서 봉사를 하신 적은 있었지만, 책임을 맡고 도서관에 근무하는 적은 처음이라(게다가 배울 곳도 없이 혼자), 걱정이 태산이시라고.
남 얘기가 아니었다. 나도 불과 몇달 전에 꼭 그랬다. 오죽하면 인수인계를 핑계로 세 번이나 도서실에 와서 전임 사서교사에게 매달렸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 딱 일주일만에,
어? 전임 사서교사, 일 대충 하고 갔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옆 학교의 신임 사서교사에게 열변을 토했다.
학교도서관은 일반 공공도서관이나 어린이도서관과는 조금 달라야 한다,
우리학교도 그동안 창작동화 위주로 구입했는데, 이제 보니 학습에 필요한 자료들이 더 우선인 것 같다, 물론 창작동화의 기반이 아주 기본적인 것은 갖추어져 있다는 전제 하에서이다,
내가 그리는 학교도서관은 한 반이 도서실에 있는 수많은 참고도서를 중심으로 수업이 가능했으면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선사시대에 대해 배울 때는 도서실의 멀티미디어 자료를 이용해 대형스크린으로 자료화면을 보고, 사계절의 한국생활사박물관 같은 책들을 모둠별로 놓고 보면서 수업을 하는 것이다,
고학년 미술시간엔 스토리를 들려주고 그림책을 만드는 수업을 할 수도 있고,
저학년 미술시간엔 그림책을 놓고, 자기 사진을 꼴라쥬해서 자신만의 그림책을 만들 수도 있고,
국어시간엔 교과서에 실린 책의 원문 동화를 도서실에서 읽으면서 수업할 수도 있고...
한참 열변을 토하다, 갑자기, 넌 그렇게 하고 있니? 하는 듯한 눈길을 느낀다.(자 격 지 심)
도대체 넌 뭐하니?
벌써 3월 한 달이 다 가는데, 내가 한 일이라고는 너무 많은 복본을 갖춘 책들(우리 교장선생님의 취미생활이 같은 책 50권, 100권씩 사는 거라서) 치워둔 것, 그리고 대출증 걷어서 진급처리하는 것, 리모델링 계획서 낸 것!
이게 전부다. 일당 3만3천원이 아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일들조차 시간이 부족해서 늘 시간외근무를 한다는 점이다.(수당도 따로 못받고)
난 하고싶은 게 참 많다.
선생님들께 수업 진도에 맞춰서, 우리 도서실에 이러이러한 자료가 있습니다
미리 자료를 뽑아드리고, 매월 주제별 전시도 하고...(국어, 수학, 과학... 하는 식으로)
난 정말 하고싶은 게 많다.
그러니 매일 실밥 뽑는 시다만 시키지 말고, 제발 예쁜 옷을 그려내는 디자인도 좀 시켜주.
시다 월급 준다고 시다만 시키면, 고용주만 손해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