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따뜻해지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하, 벌써 4월이다.
학교다닐 때는 중간고사 운운하며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를 불렀지만, 4월 참 좋다. 책 읽기도 좋고, 식목일에 개교기념일, 그리고 국회의원도 뽑아야 하니 쉬는 날이 많아서 더 좋다.(물론 일용직인 나는 출혈이 크지만.)
하루종일 히터를 틀어야 했던 볕 안 드는 4층 구석의 도서실도 오늘은 아침부터 유리창을 열어 두었다. 살랑살랑 코끝을 간질이는 바람이 참 기분 좋다.
4월은 과학의 달이다. 그래서 학교마다 과학행사가 있다.
며칠 전, 과학부장님이 공문 비슷하게 생긴 걸 들고 내려오셨다. 그 중 맨 마지막장을 북~ 뜯어 주시면서, 이 책들이 도서실에 있는지 찾아달라고 하신다. 과학도서 읽고 독후감을 받으려고 하신단다. 학년별로 3권씩 선정도서가 있었다.
어? 출판사가 없는데, 괜히 냄새가 좀 수상하다. 여기저기서 좋은 책이라고 귀동냥했던 책들은 단 한 권도 없고, 전부 같은 출판사이다.
다행히 우리 도서실에 두 종류의 책이 있다. 읽어보았다.
맙소사. 이건 책이 아니다. 각종 오역에 오자에 어법에 안맞는 문투는 두 번째로 하자.
내용중에 지구를 지켜야 하는 한 비밀요원 때문에 아무 관계도 없는 맥주집 여종업원이 잡혀온다. 직접 고문해봐야 단련된 사람일 터이니, 한번 들러 술을 마셨던 맥주집 여종업원을 옆에서 고문해서 불게 하려는 의도이다.
그런데 입을 꼭 다물고 있으니 알몸으로 데려온 여종업원의 손목을 잘라서 피를 플라스틱 컵에 받고 죽인다. 그래도 우리의 주인공은 전 인류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꾹! 참는다.
이게 아이들이 읽어야 할 동화라구? 것도 3학년이? 내 아들이?
책을 덮으려다 보니 책 맨 뒷표지에 나온 책소개는 더욱 가관이다. 조우랑 게일은 달나라에 남아서 행복하게 살았댄다. 허, 그 둘 죽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폭사했다. 게다가 우리편인 노부부 운운하는데, 그 책 어디에도 늙었건 젊었건 부부는 없다.
하마터면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힐 뻔했다. 아니, 다섯 권이나 꽂아두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빌리라고.
사서교사가 맨날 알라딘을 드나들면서 서재폐인이 되어가는 동안, 우리 애들은 도서실에서 그런 책을 읽는단다. 자책한다! 반성한다!
더 속상한 건, 그런 책이 하마터면 3학년 전체가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할 뻔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무성의 무책임으로 책을 만들어두고, 교육청이나 학교에 로비만 하면 되는가. 그렇게 먹고들 사나보다. 정말 너무나 속상했다.
이런 거 어디 고발할 수 없나? 아이들의 영혼을 좀먹는 그런 책을 만드는 사람은 도둑질을 한 사람보다 더욱 심한 벌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닌가? 이거, 정말 범죄행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