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박원순 - 고문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고문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 ‘시한폭탄(ticking-bomb)' 이론에 대해
1956년 11월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폴 타이트겐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다차우 강제수용소에서 독일군의 반복된 고문을 견뎌낸 프랑스 저항운동의 영웅이었다. 당시 그는 알제의 지방장관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알제의 독립운동가 페르디난트 이브톤이 자신이 일하고 있던 가스창고에 설치된 폭탄이 발견되면서 붙잡혔다. 문제는 두 번째 폭탄이 어딘가에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브톤은 입을 열지 않았고, 곧 수천 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경찰 책임자는 그 독립운동가를 고문해서라도 폭탄의 소재에 관해 자백을 받아내야 한다고 결사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폴 타이트겐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를 고문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거절하였다. 나는 그날 오후 내내 전율했다. 마침내 그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내가 옳았다고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한 번 고문의 ‘사업’에 빠지면 당신도 실종된다. 이해하라. 공포는 모든 것의 기초이다. 우리가 모두 말하는 문명이란 허구로 뒤덮여 있다, 그 껍질을 벗겨내면 거기에는 공포가 있다.
이렇듯 고문은 언제라도 허용하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폭탄 설치한 사람에게 고문을 가해서라도 그 설치 장소를 알아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고문이 고문을 낳고 마침내 고문의 세상이 될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폭탄을 설치했다고 인정한다. 고문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폭탄을 설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고문이 그것을 드러낼 것이다. 또 어떤 사람에게 폭탄을 설치했다는 친구가 있다. 고문이 우리를 그 용의자에게 인도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위험한 의견을 가지고 있고, 폭탄을 설치할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고문은 그의 계획을 드러나게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런 위험한 생각과 폭탄설치를 할지도 모를 사람을 안다. 고문은 우리를 그 모든 사람들에게 인도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용의자가 어디에 있는지 자백하기를 거부하였다. 고문은 그 모든 사람들을 위협할 것이다.
이런 사례는 세계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 어린 아이가 납치되었고, 그 범인이 잡혔지만, 아이를 숨겨둔 장소를 말하지 않아 아이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28세의 법학생 마그누스 개프갠은 2002년 9월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11세이던 한 은행가의 아들 야콥폰 메츨러를 납치했다. 개프갠은 아이를 질식사시킨 후 아이의 사망 사실을 숨긴 채 이틀 후 아이의 부모에게서 몸값 1백만 유로를 받았다. 몸값을 지불하는 순간부터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 프랑크푸르트 경찰은 다음날 그를 체포하였다. 경찰은 그 아이가 사망한 상태라는 것을 모른 채 개프갠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숨겨둔 장소에 대해 개프갠이 허위진술로 일관하자, 경찰은 “정확한 위치를 말하지 않으면 폭력과 고문을 가할 것”이라고 그를 위협했다. 위협을 느낀 개프갠은 그제야 정확한 위치를 자백했고, 경찰이 현장에 급파되었으나 아이는 사망한 상태였다.
이듬해인 2003년 7월, 납치범 개프갠은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경찰은 개프갠에게 고문 위협을 지시한 프랑크푸르트 경찰서 부서장 볼프강 다쉬너와 직접 심문을 당당했던 경찰관 오트빈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두 경찰관은 프랑크푸르트 지방 법정에 서게 됐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위급한 상황에서의 정당한 행위’였는지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고문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인지를 놓고 독일 사회에 큰 논쟁이 벌어졌다. 독일 기센대학교 범죄학 연구소장이자 법의하작인 아서 크로이처 교수는 독일 일간지 <타게스 슈피겔>을 통해 “어떤 예외적인 경우에 따라 ‘한 번쯤’ 고문을 허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고문을 허용하는 틈이 형성되고 그 틈새가 점점 커져 자칫하면 ‘댐’이 붕괴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폭탄을 설치한 범인이 그 설치 장소를 말하지 않을 때는 고문을 해서라도 입을 열게 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이른바 시한폭탄 이론은 사실 권력을 가진 자가 언제나 받게 되는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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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는 “고문은 30개의 폭탄을 발견함으로써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문은 동시에 또 다른 방식으로, 또 다른 장소에서 활동하는 50명의 테러리스트들을 만들어 더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야기할 것이다”라고 언명했다. 고문의 공식적인 정당화는 언제나 범죄자의 범죄 규모, 공범의 이름, 적군의 의도, 테러리스트에게서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정보를 입수해야 할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런 식으로 고문이 용납되고 허용되고 정당화되면서 고문은 일반화된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고문을 용납하거나 정당화될 수 없다.

박원순(2006), 야만시대의 기록 1, 역사비평사, 42~47쪽
- 박원순 변호사가 이 두툼하기 그지없는, 그리하여 더욱더 섬뜩한 이 세 권의 책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가장 잘 요약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옮겨 본다. 함께 보면 더욱 좋을 듯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