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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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 벗어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된다.
집착, 불안, 두려움과 떨림. 미래의 허상, 과거의 유령이 현재를 흔든다. 깊게 패인 감성의 상흔은 젊음마저도 서서히 분해해 버리고 마는 것은 외부가 아닌 내부의 문제인 것이다. 정체성, 강렬한 자아의식이 몰아치는 청소년기의 하룻밤을 그려낸 이 소설은 젊음의 마찰음과 파열음 그리고 정화된 멜로디가 흐른다.

아버지가 자신이 저지른 짓이 스트레스가 되어 위를 다친 것이며,
병이 난 것으로 용서를 받은 거라 생각할 셈이었던 것이며,
두 쌍의 처자를 남기고 혼자 이 세상에서 달아난 것이며,
그렇다, 달아난 것이다, 아버지는.
두 쌍의 모자를 지켜보는 것으로부터도, 혼자 처자식의 경멸을 견뎌가는 것에서부터도.
209p


죽어버린 한 아버지와 두 명의 어머니와 두 명의 자식.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에 반하는 불륜이 잉태한 아이들이 겪는 위기의식이 섬세하다. 거부할 수 없는 저질러진 운명, 거부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불분명한 지금의 문제를 누가 해결해 줄 것인가. 그들의 고민은 지극히 현시적이며 자기 중심적이며 폐쇄적이다. 하지만 고등학교의 마지막 축제를 통하여 서서히 친구들에게 열리게 된다.

성장통의 마지막이자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는 보행제.
모든 상황은 그들의 삶에 집중된다. 은 외연을 가리고, 내연에 집중하게 한다. 피크닉은 현실을 벗어나 현실을 관망하게 한다. 보행제는 티벳의 오체투지와 같은 깨달음의 과정을 이끈다. 그렇게 인생과 자아에 대한 성찰은 새로운 시작을 약속한다.

지금 여기 있는 것은 저주 같은 의지뿐이다. 212p

인생이란 무작정 걷기.
오직 지독한 의지만이 현재를 있게 한다. 빠른 기록이 남는 것이 아니라, 오직 누구와 그 시간을 함께 했는가, 앞으로 함께 할 것인가가 중요할 뿐이다.
성장과 치유의 의식은 깊고 깊은 밤하늘 아래에서 새로운 역사를 준비한다.
보행제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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