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폐쇄된 공간 속에서 수 십년을 살아야만 했던 한 인간의 생각을 읽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구절 한 구절 여백을 아끼고, 글자를 다듬어서 써야만 했던 사색의 결정이 가벼울 리 없다. 인간보다 시멘트 벽에 더 친숙해져야만 하는 고독, 새로움과 창조의 양지에서 배제된 삶에 대한 번민, 압박 속에서 기존의 지식에 얽매일지도 모른다는 지식인으로써의 자존심과 불안, 그리고 잘려나간 학자로써의 학문열…

이 모든 것들의 기억과 경험은 특수하다. 역사와 개인의 시대적 간극을 무엇으로도 좁힐 수 없어보인다. 모호한 관념과 막연한 존경으로 우상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렇다고 소통을 강요할 필요는 없고, 이해를 가장할 필요도 없다. 다만 자신의 삶에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되듯이 그의 사념에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치열함을 치열하게 다가서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이 책은 30년 간의 편지다.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것들을 표방하고 있지만, 저자인 자신에게 보내는 독백이며, 넘치는 학자의 기질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글을 쓰고 싶은 욕망, 글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처연하다. 그것이 학자의 본능인가. 학자로써의 자존심을 잃고 싶지 않아서일까. 글은 유난히 고고한 어휘를 휘날린다. 이것은 나의 생각이고 나에게 보내는 선물이라는 듯이 많은 치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관념과 겉치레를 경계하고 성찰하는 모습도 보인다.

“복잡한 표현과 관념적 사고를 내심 즐기며, 그것이 상위의 것이라 여기던 오만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236p

인간은 그렇게 성장한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생물학적 성장이 이뤄지고, 감당해야 할 억지적 환경 속에서 방황도 하면서 정신적 성장을 일궈낸다. 벽은 3차원 공간을 지배하지만, 인간의 정신만큼은 지배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노년을 쫓아가는 자식과 부모가 겪는 변화의 시간들이다. 감옥 안에서 늙어가는 자식과 감옥 밖에서 늙어가는 부모… 마치 스냅샷을 찍듯 서서히 서로의 시간으로 빠져드는 애틋함이 저린다. 그들에게서 빼앗아 간 날들…. 잘려나간 가능성들의 통곡. 어떻게든 표현해야만 하는 상황… 책은 그렇게 탄생한다.

이 책은 감동적이지 않다.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읽은 것만이 있을 뿐이다.

감옥... 인간 내면의 고결함을 완성시키고 뿌리내리는 공간이라고
신영복의 삶은 나직이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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