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팩트마저도 속이는 저질언론과 핵심을 비켜가는 사쿠라개혁간의 싸움을 보며 -
이미 예상한대로 이번 스웨덴 총선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한국이 시끄럽다. 언론들과 정부간의 대립구도도 형성되고 있는데, 이 대립구도가 팩트마저도 속이는 저질언론들과 민심과 진정성을 잃은 사쿠라진보 노무현 정부간의 것이라 그야말로 활당하기 이를데 없기도 하다.
스웨덴총선은 보통 어느 정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독일을 포함 유럽의 이웃나라들도 참 부러워하는 그런 나라, 바로 스웨덴이 복지국가라고 하는 노르딕모델의 대표주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처럼 대서특필되며 엄청난 논란을 야기시키진 않는다.
그런데 한국에서 보통의 경우 관심도 끌지 못하는 스웨덴이 지금처럼 언론방송에서 장식되는 것은 노르딕모델, 즉 복지모델의 대표주자 스웨덴을 한국이 이데올로기싸움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한쪽에선 나아갈 바로서, 또다른 한편에선 결코 그쪽으로나가서는 안되는 방향으로서 말이다. 게다가 중도우파진영이 선거에서 승리했음으로 인해 일찌기 독일병 관련 논란에서 잘 보여지듯이 아주 좋은 안주거리가 장만이 된 셈이다.
이번 스웨덴 총선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면 그렇다. 표결결과만 가지고 보자면, 중도좌파진영과 중도우파진영간의 대결구도에서 박빙의 승부가 났으며, 중도우파진영의 승리로 인해 어느정도의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나 이는 보완 혹은 정비의 의미이지 궤도수정이나 복지국가의 포기를 의미하진 않는다. 만약 중도우파가 후자의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면 참으로 오랜만에 정권을 탈환하지도 못했고, 또 정권교체후 그쪽으로 나간다면 다음 선거에선 분명히 정권이 뒤바뀌게 된다.
이러한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독일을 잠깐 끌어들일 수도 있는데, 독일의 경우 중도우파에서 좌파에 이르기까지 어떤 공통분모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사회연대 혹은 공동책임에 기반한 사회국가모델의 유지와 지속이다. 만약 누군가 이것을 해체하겠다고 들고나온다면, 기대하는 표를 얻지 못한다. 또 바로 그렇기때문에 중도우파정당 연합과 중도좌파정당 사민당간의 연정도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차떼기정당과 사쿠라정당이 대세인 한국의 상황과 유럽의 상황, 특히 그 정치적 토대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현재 의료개혁논란에서 잘 보여지고 있듯이 독일의 경우 어떤 콘센스를 만들어내기가 어려운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이와 달리 스웨덴의 경운 시민들이 그야말로 기꺼이 높은 세금을 내는 나라이다. 역시 같은 복지국가군에 속하는 독일의 경우 어떤 부분들에서 실패한 것들이 있는데, 스웨덴의 경운 형평성과 효율성, 이동성 모두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회분위기와 일반의 정서, 곧 심리적 요인이 다르게 작용한다.
저질언론들의 경운 있는 그대로의 팩트마저도 속인다. 바로 이것이 한국 언론방송의 현실로서, 그야말로 기본도 가지고 있지 못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19일자 "[기자의 눈] 스웨덴 복지모델 실패 아니다"라는 기사를 내보낸 서울경제를 제외하고 한국경제와 파이낸셜타임즈 등 대부분의 경제지, 그리고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을 제외하고 조중동을 위시한 대부분의 종합지들이 이번 총선으로 스웨덴의 복지모델이 마치 판가름이 난 양 보도하고 있는데, 이 기사들을 보면, 그야말로 아행햏하기 이를데 없다. 물론 이 저의는 노무현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저질 자본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저질 자본의 논리는 이미 한국사회를 관통하고 있다. 또 노무현정부가 저질언론들의 공세에 대응하는 모습에서 쓴 웃음이 절로나오기도 한다. 왜냐하면 노무현정부는 말로만 무언가를 외치는 사쿠라정부이기 때문이다. 즉 저질과 사쿠라간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기에 기가막힌 것이다.
스웨덴식 복지모델을 이야기할 때 필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왜 시민들이 높은 세금을 기꺼이 내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요인들을 정책상으로, 또 심리적으로 분석해 줘야 하는데, 이렇게 본다면 한국이 지금 당장 할 일은 무엇인가가 눈에 들어 온다. 그것은 복지국가의 슬로건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며, 수치를 들먹이며 2030비젼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이 길을 가건 아니면 저 길을 가건 일단 중요한 것은 투명한 사회,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적절한 게임의 루울을 가진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그 토대 위헤서 한국에 맞는 어떤 적절한 것을 찾고 또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내면서 말이다.
노무현을 선택한 시민들이 노무현정부에게 원한 것은 대체 무엇이었던가. 바로 여기에서 어떤 본질적인 것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에게 원한 것은 전천후 해결사의 역활이 아니었다. 하물며 그에게 갈 길이 너무도 먼, 그러나 현재 이데올로기적 논란이 되고 있는 복지의 완성을 주문했겠는가? 오히려 원했던 것은 어떤 다른 것에 있었다. 즉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나가기 위한 거름의 역활을 주문했던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정부가 과연 그렇게 했던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살맛나는 사회이다. 이는 자살율 1위의 나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살맛이 나기 위해서는 한편에선 배도 불러야 하지만, 또다른 한편에선 (가난하던 시절 한국의 농촌에서, 그리고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에서 잘 보이듯이) 어떤 다른 무언가도 있어야 한다. 즉 어울려서, 그리고 더불어 살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껍데기들을 가지고 재단하는, 공존의 상식이 아니라 몰상식이 대세인, 함께가 아니라 어떡하든 나만 잘되고 보자는 작금의 한국사회가 어디 그러한가? 게다가 경쟁이 있다해서 잘못된 사회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경쟁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하게 이루어지며, 또 많은 이들이 준정신병에 시달리며 신음하게 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는 바로 우리 앞에,우리 옆에, 우리 뒤에, 그리고 우리 속에 들어 있다.
언제쯤이면 저질언론과 사쿠라의 대결이 아니라, 진짜배기 공존의 상식에 입각해 보다 나은 길을 찾아가려는 이들간의 대안모색이 주류를 이루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이때가 오지 않으리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를 만들기 위해서 할 일은 있다. 우리는 저질은 저질로서, 사쿠라는 사쿠라로서 판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선언해야 한다.
또 바로 이 점에서 G-Live를 찾아 오는 독일 관련 한인들이 가진 공통분모를 높이 살 필요가 있다. 즉 독일 혹은 유럽과 발을 대고 있음으로 해서, 즉 문화간 대화의 장에 놓이게 됨으로 해서 비교의 기회를 가지게 되고, 또 시야를 넓게 가져가게 되는데, 더 구체적인 예를 들면 저질언론이 왜 저질언론인지를 더 잘 보게 되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데, 이를 썩히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이를 생산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저머니라이브 작성일 : 200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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