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609151503311&code=900308
 |
|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온 외국인 여성들은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을 겪곤 한다. 전남 담양으로 시집 와 벽지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필리핀 출신 여성들이 담양군 문화회관 앞에서 자세를 취했다. |
몽골 새댁 완자홀도는 남편이 좋아하는 해산물을 반찬으로 준비하려면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몽골에서는 보지도 못했던 게나 멍게, 해삼이 영락없는 벌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낯선 음식을 먹느라 고생하던 그녀가 모처럼 고향음식을 하려면 남편은 우유냄새가 나 비리다며 내켜하지 않는다. 필리핀에서 시집 온 레아도 신혼 초에 웬 식용유를 그리 많이 쓰냐며 시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었다. 시집 온 첫 달에 식용유 다섯 병을 썼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내가 튀기고 볶는 음식 하나는 잘한다며 칭찬했지만 아내가 해주는 음식이 영 낯설기만 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시집 온 고려인 나타샤는 할머니가 쓰는 ‘사투리’(한국어)를 좀 알아 들었지만 정작 한국어는 대학에 진학해서 배워야 했다. 한국으로 시집온 후 일상생활의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남편이 자기에게 쓰는 표현이나 말투 때문에 속상해 한다. 남편이 자신더러 ‘마누라’라고 부르면 러시아어의 ‘미게라’라는 말처럼 들려 속상하다고 한다. ‘품행이 좋지 않은 여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등록된 전체 혼인신고의 13.6%는 국제결혼이었다. 농어촌 지역만 살펴본다면 전체 결혼의 35.7%가 국제결혼이었다. 전혀 다른 문화에서 태어나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며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이다. 결혼하기 전까지 대부분 서로를 알고 익숙해질 수 있는 충분한 시간도 갖지 못했다. 더욱이 이들은 서로의 언어조차 알지 못한다. 부부로 함께 살지만 말보다는 눈짓과 손짓으로 의사소통을 시작한다.
국제결혼한 부부들이 문화가 달라 매일 매일 겪는 이러한 갈등들은 어쩌면 사소한 일들일 수 있다. 이들이 처한 보다 심각한 갈등과 문제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부차적인 문제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탈법적인 중개업자가 개입된 인신매매성 국제결혼이나 매매혼이라 비난받을 수 있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행태, 낯선 곳에 시집와서 홀로 겪는 인권유린의 사례도 심심찮게 지적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주목한 국제결혼의 문제가 결혼이민자 여성이 당하는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이들이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방법을 지원하는 데 집중된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 본 국제결혼 부부들의 일상적 경험과 갈등이 단순한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함이 있다.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이 음식 차이나 말투에 그치지 않고 보다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문화가 무엇인지를 인식하지 못해 문화 차이에서 기인한 갈등이 개인간의 성격문제로 치환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문화마다 친족제도가 다르고 가족이나 친척에 대한 생각이나 의무가 다르다. 부계나 모계가 모두 중요한 필리핀의 친족제도에서 자라난 필리핀 여성은 한국으로 시집와서도 친정식구에 대한 가족으로서의 의무감을 느낀다. 반면에 여자는 시집을 가면 ‘출가외인’이라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부계 친족관념을 갖고 있는 시어머니나 남편은 필리핀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아내나 며느리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갖기도 한다. 본국의 친정에 돈만 보내려 한다며 결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남편은 결국 아내와 부부로서의 정서적 친밀감을 형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신뢰하지 않기도 한다.
바람직한 부부의 조건으로 부부간의 낭만적 관계와 애정표현을 중시하는 필리핀 여성들은 말이 없고 무뚝뚝하기만 한 한국남편들을 보며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머나먼 땅에 홀로 와서 남편만 믿고 살지만, 남편은 전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매일 매일 느껴야 하는 이들의 정서적 결핍감은 때로 우울증으로 악화된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러시아어를 배우며 러시아 문화를 습득했다. 남녀가 동등한 인격체라는 문화적 가치를 갖고 있는 고려인 여성들은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시부모나 다른 어른들 앞에서는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집에 돌아와 단 둘이 있을 때도 여전히 가부장적 태도를 보이는 남편이 서운하다. 고려인은 외모에서 입증되듯이 혈통이 같은 민족이라 당연히 문화도 같다고 생각하는 남편들은 아내가 겪는 문화적 갈등을 이해하지 못한다. 때로 아내의 성격이 강하고 이기적이라며 불평만 할 뿐이다.
국제결혼 부부가 겪는 이러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적응해 나가려는 당사자들의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문화 간 차이를 학습하고 적응하는 노력이 순전히 아내에게만 전가되고 있는 현실이다. 국제결혼 부부를 위한 정부나 시민사회의 지원은 결혼이민자 여성이 한국문화에 동화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물론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음식 요리법을 배우는 것은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한 기본적인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과 부부로서 인연을 맺은 한국인 남편들도 아내들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결혼이나 부부생활은 어찌 보면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점점 늘어나고 있는 국제결혼 부부와 그들의 자녀들이 경험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개선해야 할 공동의 과제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대의 특징은 문화 간 만남의 증가로 낯선 문화가 서로 만나 조화를 이루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혼성문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문화다양성은 글로벌 사회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한 여성들이 한국사회에 정착하면서 자신들의 문화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다.
국제결혼 부부와 가족들이 서로 다른 문화 때문에 갈등하기보다는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문화적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할 시점인 듯하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모국어를 배운 아이들이 아시아를 무대로 자유롭게 활약할 수 있다면 글로벌 코리아의 새로운 인재가 될 것이다. 반면에 끊임없이 한국문화로 동화될 것만 요구한다면 이 아이들은 한국사회에서 소외받는 또 다른 계층이 될 위험도 존재한다. 글로벌 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한국사회가 오늘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한건수/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