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군이 6·25 한국전쟁중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한 민간인 1만7천여명을 학살했다는 공식 조사결과가 나왔다.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종수 한성대 교수)는 14일 ‘보도연맹원 학살의혹사건’ 등 3가지 과거 의혹사건에 대한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국민보도연맹’은 해방후 전향한 좌익인사를 관리하기 위해 정부가 만든 단체로 회원수는 최소 6만2천여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연맹원 규모를 20만~7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과거사위는 “학살을 주도한 사람은 경찰 1,081명과 군인 5,157명이며 이들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민간인을 집단처형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피해규모는 경찰 전산자료상 1만7천7백16명이며 이중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3,593명이다.
이종수 위원장은 “좌익활동과 무관한 민간인도 상당수 처형됐다”며 “실제 피해인원은 1만7천여명 이상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전쟁 당시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예비 검속 근거로 쓰인 내무부 치안국장 명령은 법적인 근거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과거사위는 “개전 초기에는 경찰 주도로, 계엄하에서는 헌병·특무대가 경찰과 합동으로 검속을 담당했다”고 밝혔다.
한강택 경찰청 차장은 민간인 학살에 대해 “국가기관인 경찰과 군이 적법한 사법절차에 의하지 않고 좌익활동 관련자 및 그와 무관한 양민을 학살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시인했다.
‘남조선민족해방전선사건’에 대해 경찰 과거사위는 “남민전이 사회주의를 지향한 반국가단체지만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단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조사결과는 기존 대법원 판결과 동일하다. 경찰 과거사위는 “당시 검찰 기소내용에도 간첩활동 혐의는 빠져 있었다”고 밝혔다. 1979년 10월 검거 당시 남민전은 ‘북한 정권의 사주를 받은 간첩단’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46년 대구 10·1사건’은 1946년 노조 총파업투쟁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시위대 한명이 사망하면서 대구·경북 전역의 대규모 소요사태로 번진 사건이다. 경찰 과거사위는 “시위대를 위협하려는 목적으로 경찰이 발포했으며 이로 인해 소요사태가 확산, 수백명이 사망했으나 정확한 인원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형 박상희씨도 시위 도중 사망한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김준일기자 ant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