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짜깁기 문화…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있다
한국대중음악상은 지난 3월 2005년 최고의 앨범으로 ‘두번째달’의 데뷔앨범을 선정했다.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신인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상 등 3관왕을 휩쓴 이 앨범에 대해 수상작 선정위원회는 ‘상업적 자살’과 같은 시도였다고 평했다. 수록곡 대부분이 생소한 민속음악 연주곡이었기 때문이다. 음악평론가 박은석은 이들의 음악이 드라마 ‘궁’의 OST로 인기를 끈 것에 대해 “영리한 음악방송들이 외면한 인디음악의 가능성을 TV 드라마가 대신 확인시켜주었다는 사실을 탄식해야 한다”고 심사평에서 밝혔다.

한국대중음악상은 방송사들의 연말 가요시상식이 상업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행사로 전락했다고 판단하고, 음악을 판매량이 아닌 ‘질’로 평가하겠다는 취지로 대중음악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상이다.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대중음악계는 편집시대의 부작용을 온몸으로 떠안고 있다. 음반시장이 불황을 면치 못하면서, 새롭고 다양한 음악적 시도는 설자리를 잃은 채 상업성을 입증받은 비슷한 패턴의 음악들이 반복 생산되고 있다. 대중음악상을 제정한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김창남 교수는 “창조의 씨앗이 말라가고 있다”며 왜곡된 음악시장의 현실을 비판했다. 김교수는 음악이 블로그 배경음악, 휴대전화 통화연결음과 벨소리 등으로 이용되는 것에 대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모바일 콘텐츠 자체가 창조성보다 순간적인 자극과 편의성을 선호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음악은 이미 음악이 아니라 그저 신호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교수는 또 “개인이 음원을 통제하고 이용하는 기술적 능력이 생겨, 이미 존재하는 자료들을 싼값에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용하다보니, 창조적인 원천기술(originality)의 가치가 인정을 못받는다”고 꼬집었다.

출판계도 신작시집보다 주제별 모음시집이 더 인기를 얻고 있고, 인문학·철학 등도 원서보다 재해석이나 비평을 곁들인 책들이 더 사랑받고 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출판계에 분화와 통합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더욱 작고 세부적인 방향으로 나뉘는 반면, 책 속의 내용은 통합적인 설명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많은 병 중에 우울증이라는 작은 주제를 택하면서, 우울증을 설명하는 방법은 우울증의 A부터 Z까지를 망라하고 있다. 이른바 검색형 정보취합 방식이다. 한소장은 아무리 편집시대라도 ‘기본적인 지식과 인문학적인 사유’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신영복 선생의 고전 강의 서적이 인기를 끈 것은 단순히 원본보다 읽기 쉬워서가 아니라, 원본의 지식을 다시 해석하고 녹여낸 신영복 선생의 ‘눈’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한소장은 “상상력과 기본 소양에 집중해야 할 대학이 본연의 위치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도, 우리 사회가 창조의 위기를 맞은 근본적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창작과비평사의 염종선 편집장 역시 “최근 들어와 이렇다할 담론들이 진행되지 못해 과거의 이론들을 재해석하는 경향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편집시대의 명암은 포털뉴스의 영향력 강화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검색 서비스 업체 구글(Google)은 최근 ‘맞춤형 뉴스 사이트’를 열었다. 개인이 직접 등록한 관심분야에 따라 머리기사와 뉴스리스트를 편집하는 것이 특징이다. 개인에게 우선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뉴스들을 골라 제공한다는 것이다. 성공 여부는 아직 판가름되지 않았으나, 뉴스를 제작하지 않는 구글이 ‘맞춤형 뉴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한국의 포털 역시 뉴스공급원으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네이버는 현재 뉴스 사이트 개편작업을 진행 중이다. “언론사와 뉴스편집권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밝혔다. 미디어 다음도 뉴스 서비스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한 ‘열린사용자위원회’를 9월 중 시작할 예정이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그동안 포털사이트를 둘러싼 ‘언론의 책임논란’이 있다. 포털 사이트는 수백개의 뉴스 중 일부를 골라 초기화면에 메인 뉴스로 배치한다. 카테고리 검색과 클릭을 통해 네티즌은 얼마든지 다른 뉴스를 읽을 수 있지만, 메인 화면에 올라온 뉴스와 그렇지 않은 뉴스의 가독성은 큰 차이를 보인다. ‘주간 최다 스크랩 기사’ ‘가장 많이 읽은 뉴스’ 등의 메뉴도 네티즌의 뉴스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인터넷 선정주의와 검색어 만능주의도 문제다. 포털의 메인 화면에는 연예인들의 가십성 뉴스가 연일 메인뉴스로 올라오고 있다. 여성 연예인들의 성형수술 의혹이나 모바일 화보 출시, 스캔들 등은 단골 메인 뉴스다. ‘이슈=검색어 상위’라는 공식이 일반화되면서 자극적인 제목으로 검색어 띄우기가 반복되고 있다.

네티즌들의 선정적인 제목달기도 문제로 지적됐다. 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비슷한 내용들이 제목만 선정적으로 바뀌어 올라오고 있다”며 “알맹이(본질)에 대한 논의는 냉소적으로 흐르고, 껍데기에만 집착하는 문화가 만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창조는 없어지고 편집만 남은 시대에 대한 경고다.

〈글 장은교·사진 박재찬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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