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운동장 달리기 - 식욕, 다이어트 그리고 인생의 비밀을 가르쳐 준
정서정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정서정의 <한밤의 운동장 달리기>의 대상독자층은 분명하다. 다음과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범주에 들어갈 텐데 그것인즉 첫 번째는 어느 날 ‘내 뱃살이 어쩌다 이렇게 됐지?’하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며 두 번째는 ‘살 빼야겠다!’라고 생각해서 주위에 뛸 만한 곳을 찾아다녔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물론 여기에 두 가지를 더 첨부할 수가 있는데 그 첫째는 삼일동안 굶어서 뿌듯했는데 어느 순간 식욕을 참지 못해 냉장고를 거덜 낸 자신을 발견했던 경험이 있는 경우며 둘째는 ‘치사하고 더럽다’는 마음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했지만 이내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건가?’하는 자괴감이 든 적이 있는 경우다.

그렇다면 네 가지인데 이런 경험이 한번도 없다면, 감히 <한밤의 운동장 달리기>를 건너뛰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주인공 조나선이 한밤에 운동장을 달리러 나가서 무슨 경험을 하는지 엿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 된다.

회사에서 중요한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끝내고 나온 조나선은 ‘엄청난’ 절망감을 뒤집어쓴다. 직장상사로부터 ‘섹스어필’ 못해서 상대에게 졌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때, 누군가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에 있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조나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내가 정말 살 쪘나?’하는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 내가 정말 살 졌지.’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던 조나선은 마음을 쉽게 진정시키지 못한다. 먹을 것 좋아하던 옛 애인을 떠올리며 ‘살만 남긴 지나간 연애’를 원망하기도 하지만, 이미 그런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고 또한 지금 당장 변신할 방법도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에너지를 느낀다. ‘나도 살 빼면 되잖아?’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 운동장 다섯 바퀴를 돈다. 그리고 계획을 세운다. 체념조로 말하듯 ‘코끼리’같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와 같았던 미래의 몸을 만들어 보자고.

요즘은 다이어트가 대세다. 아니, 대세를 넘어서 확신이다. TV뉴스에서는 ‘다이어트 안 해도 되는데 다이어트 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순진한 소리에 불과하다. 다이어트의 핵심이 건강보다는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건 젊은 층일수록 더하다. 몸으로 비교당하고, 그것으로 대역죄인이 되기도 하는 판국에 누가 다이어트를 외면할 수 있을까?

조나선이 운동장에 나선 것도 그런 이유며 평소라면 일단 덤벼들만큼 좋아하던 음식들을 외면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물론 이것이 정당하다고는 조나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TV뉴스에서 ‘다이어트가 die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외 방송들은 ‘S라인이 아니면 die다’라고 다른 말을 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다른 말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하고 있는 것을. 그래서 조나선은 띈다. 어두운 밤, 운동장을 돌며 ‘언젠가’를 외치며 뛰고 또 뛴다.

이쯤 되면 <한밤의 운동장 달리기>는 요즘 불야성을 이루는 다이어트 물결의 하나로 보일 것이다. 일종의 우화 같은 형식으로 나타났지만 결국 속내는 살빼는 비법을 알려주는 책들의 하나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조나선이 달리는 도중에 만난, 조안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그것은 식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조나선은,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사람들, 초보든 고수든 간에 누구나 한번씩 생각하는 ‘무조건 안 먹기’를 실행하는데 조안은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알려준다. 식욕에 솔직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다이어트를 할지언정 다이어트의 노예가 되지는 말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조안의 등장과 함께 이런 내용이 언급됐다고 해서, 책의 정체가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아직까지는 일반적인 다이어트 책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곧 분수령에 다다른다. 그것은 앞에서 조나선이 다이어트 하게 된 결심과 관련이 있다. 바로 ‘왜 다이어트를 하는가’이다.

조나선은, 아니, 조나선과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다이어트란 무엇이었을까? 누군가와 비교된 것, 혹은 살 때문에 비난 당한 것에 따른 분노가 아닐까? 그런 이들에게 조안은 다이어트가 아니라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알려준다. 몇 킬로그램 빼야겠다는 생각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달리고, 절제하는 것을 인생의 재미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어찌 보면 뻔한 말이다. 하지만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다. 똑같은 달리기일지라도 칼로리 계산하며 달리는 것과 바람을 가르는 자신의 존재감에 흠뻑 취해 달리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는 것일 테니까. 게다가 조안은 그 사실을 아주 경제적으로 알려주기에 뻔해도 이미 뻔한 말이 아닌 게 된다. ‘나만의 것’으로 따라해보게 만드는 것이다.

어느 날 ‘당신’은 뱃살이 접히는 끔찍한 현실과 마주했다. ‘당신’은 운동장에 나간다. 그도 아니라면 헬스클럽에 찾아가 돈을 내고 런닝머신 위에 오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당신’은 달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때 '당신'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가? 몸인가, 의지인가?

그 질문 앞에서 갈팡질팡한다면 <한밤의 운동장 달리기>를 파트너로 삼아보자. 조안에게 도움을 얻은 조나선처럼, 생각의 전환의 물론이거니와 운동장 다이어트 비법까지 알려주니 작지만 제법 무거운 선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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