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적 근대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아마도 "중독"의 개념이 제일 알맞을 것입니다. 중독이란 물신화된 대상에 대한 부자연스러운, 본인의 의지력으로 벗어나기 어려운, 사회적 맥락이 은근히 (간접적으로) 강요한 욕망을 의미하는 것인데, 개인 욕망의 노예화, 특정 대상들의 물신화야말로 자본주의적 "근대"의 주춧돌이지요. 근대적 "중독"의 세계는 그야말로 무한한 것인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물론 일 중독, 즉 장시간의 노동에 대한 일종의 마조키스트적 애착 같은 것입니다. 이건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일제 식의 병영형 직장 문화와 얼키고 설켜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남성"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낳은 모양인데, 사실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여가 시간의 "(유사) 근무시간화"라는 것은 또 최근 신자유주의 시대의 특정이더랍니다. PC, 휴대폰이 보급되어서 일 중독자들에게 그 중독에 빠지기가 더 쉬워진 것이지요. 그 다음에 속도와 편리함에의 중독, 예컨대 자동차 중독인데, 국내에서는 이게 집을 사지 못하는 중산층 하부 구성원들의 한과 어우러져 유럽에 비해 약간 광적인 형태를 취한 것 같아요. 요즘 같은 계통의 "애어컨 중독"이 맹위를 떨치는데, 저로서는 아주 이해 안되는 현상이에요. 습하고 더우면 선풍기를 틀어도 좀 나아지고, 참을 만하면 여름에 당연히 더워야 하니까 그냥 참아도 되고... 물론 대형 강의실, 회의실에서는 애어컨이 필요하다는 게 이해되지만, 병균을 마구 살포하고 감기 증세를 일으키는 이 기계를 우리가 왜 이렇게 사랑해야 하는지요? 미국의 남부가 "애어컨 중독"이 한국 이상으로 심하다던데, 유럽은 좀 덜 하는 것 같아요. 위에서 말한 자동차 중독이나 애어컨 중독은, 그 경제적 효과가 엄청 크기에 관련 업계로서 그걸 유지시키는 게 사활의 문제일 걸요.

근대에 접어들어 생활 속에서의 폭력은 사실 많이 줄어들었지만 일 중독으로 인해 생기는 스트레스를 대개 시각적 폭력에 대한 중독으로 풀어주는 현상이 생기더랍니다. 돈 계산에 지쳐 기진맥진하는 투자 신탁 회사의 화이트 칼러들이 저녁이면 이종격투기를 생으로 보여주는 레스토랑에 가서 빈민 출신의 젊은이들이 서로를 아프게, 더 아프게 하여 결국 실신시키는, 선혈이 낭자한 장면을 포르노 그 이상으로 잘 소비하더랍니다. 빈민 출신의 선수라는 일명의 "타인"이 맞고 또 맞고 결국 쓰러지면, 본인을 PC의 노예, 돈의 노예로 만든 그 커다란 "타인", 즉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리 복수"가 이루어진다는 일종의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인지요? 아니면 주먹으로 밥벌이하는 사람에 대한 자신의 우월한 위치도 아울러 확인하는 것인지요? 아니면 성적 욕망이 변태적 "정복 욕망"으로 변질돼, 싸움의 장면을 일종의 섹스로 무의식적으로 파악하여 은근히 흥분하면서 "줄기는" 것인지요? 난 모르겠는데, 우리 사회의 주목 받을 만한 중독 현상임에 틀림없지요. 그리고 서구에서의 젊은이 마약 중독에 해당되는 국내 현상은 게임 중독일 걸요. 국가와 자본으로서 참 좋은 것이지요. 마약 중독이 대중화되면 범죄 문제 등이 생기는데, 게임 중독은 1조원 이상의 게임 시장을 유지시키면서도 어떤 가시적인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잖아요. 10여만 명의 청소년, 청년들이 PC방에서 게임으로 자기 인생을 망가뜨리고 게임 안하면 못사는 정신적 불구자가 돼도 그건 국가와 자본으로서 관심 밖의 일이지요. 중독의 왕국이여, 영원하라! 노예들에게 이 정도의 눈요기 기회를 주어야 공연히 스파르타쿠스나 예수 크리스토 같은 불온 분자들이 안생기고 조용하고 좋지요.... 낭떠라지를 향해 달리는 기차 속에서의 태평성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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