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가 출범하자 멕시코는 미국, 캐나다와 함께 선진국대열에 낀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런데 지난 2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NAFTA가 최대쟁점으로 떠올랐다. 선진국의 꿈이 한낱 춘몽이었음을 깨달은 농민들이 집권당인 제도혁명당에 반기를 들었다. 역전 끝에 겨우 0.5%차이로 이겼다. 그러나 좌파인 민주혁명당이 개표불복을 선언하고 나서 정국은 혼미한 양상이다.
미국의 가장 큰 골치는 멕시코의 불법이민이다. 경제난민의 물결을 막으려고 멕시코와의 국경선에 장벽을 치고 방위군을 투입하고 있다. 1996년 미국내 불법이민은 500만 명이었다. 그런데 무려 1,200만명으로 늘어났다. 그 중 78%가 멕시코와 남미에서 가난을 피해 목숨을 걸고 넘어온 사람들이다. 미국의 값싼 농축산물이 멕시코의 농업을 망쳤다.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농민들이 다시 살길을 찾아 미국으로 밀입국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멕시코는 남은 농업기반마저 붕괴될 처지에 놓였다. NAFTA에 따라 2008년에는 주식인 옥수수와 콩 시장을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 남미국가들이 작년 11월 미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를 거절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미국 농업보조금의 삭감-철폐가 걸림돌이었다. 미국은 '2002 농촌법'에 따라 농업에 2486억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그 돈은 주로 초국적 기업농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지난 2월 1일 스위스는 미국과의 FTA를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한미FTA 협상개시가 발표되기 하루 전날이었다. 미국은 예외 없는 개방을 주장했고 GMO(유전자변형식품) 표시에도 반대했다. 스위스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이다. 한국은 70%인데 77%에 달한다. 농업인구비중은 2.9%로 한국의 7.8%에 비해 훨씬 낮다. 농업이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로 한국의 3.2%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과의 FTA를 포기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농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과 FTA를 강행하고 있다. 막연하게 쌀은 지키겠다는 말 한마디로 갖고 말이다. 쌀 시장은 다자간 협상을 통해 국내소비의 8%가 이미 열렸다. 미국이 그 중의 상당량을 할당량으로 가져갔다. 미국은 전략상 끝까지 예외 없는 개방을 주장하다 쌀은 다자간 협상에 맡길 줄도 모른다. 선심 쓰는 척하면서 다른 분야와 축산물에서 대폭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미국은 그것이 더 이익일 것이다.
정부가 농업피해액이 9,000∼2조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산출근거가 무엇인가? 제주도에서는 감귤의 피해액만도 10년간 1조원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피해규모를 파악하려면 농업포기→가족해체→도시이주에서 발생하는 간접비용까지 포함해야 한다. 이것은 불가측성의 문제다. 장난 같은 숫자놀음을 그만 두라. 양극화를 해소한다고 큰소리치는데 탈농에 따른 사회정책은 마련했나? 협상중단이 최상의 방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