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저격수’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10년간 경제저격수로 활동한 존 퍼킨스는 1945년 교사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엄격하지만 자부심 있는 가정에서 자랐다. 생활은 풍족하지 않았지만 우등생이어서 대학도 장학생으로 진학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는 모두 잘사는 부잣집 자재들. 부유층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좌절을 맛보다 결국 자퇴했다. 하지만 다시 보스턴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군대 징집을 피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국(NSA)에 지원했다.

존 퍼킨스는 국가안전보장국 면접에서 관심사항은 남을 앞지르고자 하는 굳은 의지,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 외국인과 쉽게 어울리는 재능, 과거 경찰에 거짓말을 하고자 했던 결심 등이라고 꼽았다.

국가안전보장국 면접을 앞두고 주변(사실상 NSA)의 조언으로 평화봉사단에 지원했다. 평화봉사단으로 가면 역시 징집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경제저격수 후보로 선발된 것이고 평화봉사단 활동도 그 훈련의 하나였다. 교육을 마친 그는 1968년 에콰도르에서 평화봉사단 활동을 했다. 이때 그는 세계은행의 요청으로 에콰도르와 주변국 사회기반시설 융자 결정 보고서 등을 작성해 보고했다. 그는 경제저격수에 의한 에콰도르 석유회사의 파괴행위를 목격했다.

1970년 NSA와 연계된 국제 컨설팅회사 메인사에 입사한 존 퍼킨스는 본격적인 경제저격수 훈련을 받는다. 그의 임무는 개발도상국에 대형 차관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고 차관을 받은 나라가 회사에 대금을 지불한 후 파산토록 유도하는 것이다.

개도국의 주요 업체를 파산시키면 영원히 채무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이 군기지나 유엔 내 투표권 확보, 석유나 천연가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재정의존도가 높으면 미국에 대한 충성도도 높다, 개도국 회사 소유자는 혜택을 보지만 빚은 국민 모두가 떠안게 된다, 빈부의 격차는 더 늘어나지만 통계수치로는 성공적으로 만드는 기술 등을 사용한다, 더구나 이 사업을 개도국의 고속도로, 항만, 발전소를 지어주며 선한 일로 포장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경제저격수로 안 되면 나중에 테러, 군까지 동원한다, 등의 세계에서 활동했다. 그는 사우디 돈세탁 프로젝트, 이란 국왕 축출, 오마르 토리호스 파나마 대통령 사망 등에 관여했다.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30대에 최연소 경제 및 지역개발팀장이 됐다. 또 고액 연봉을 받으며 언론에 기고하는 등 유명인사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죄책감과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 1980년 45세에 회사를 그만뒀다. 그후 이런 사실을 폭로하는 글을 쓰려다가 몇 번 좌절한 끝에 2004년 ‘경제저격수의 고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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