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뫼어스 지음, 안영란 옮김, 귀스타브 도레 그림 / 문학동네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발터 뫼르스의 소설.

‘루모의 어둠 속의 기적’을 읽고 난 후에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읽으면서, 이 책을 읽었다. 세 작품을 거의 동시에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비슷한 세계관과 주제의식에 약간의 노곤함을 느끼면서도 각각의 상이한 면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 책은 ‘귀스타브 도레’라는 19세기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들을 짜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야기의 흐름과 그림이 매우 잘 어우러져 있어서 ‘그림을 위한 글’이었어도 ‘글을 위한 그림’처럼 다가온다. 상상을 위한 소설에 그림이 필요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것은 괜한 것이었다. 굵고 거친 고딕의 선이 음침함을 더하고, 그로테스크한 일러스트가 악마적 분위기를 돋군다. 유명한 그림들이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하고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환상 소설에 가까운 이 모험담은 발터 뫼르스의 다른 소설들처럼 인생을 빗대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사랑, 근심, 운명, 시간, 공포, 꿈, 그리고 죽음…
전인류에게 똑같은 기회로 고뇌를 안기는 삶의 마디마디는 영원한 주제일 수 밖에 없다. 산다는 것 자체가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것이기에 그것은 모험인 것이다.

그렇다고 근심할 필요는 없다.

 “내 몰골을 보면 우유도 금세 상해버리고 말 테니까. 언젠가 잔잔한 물에 내 모습을 비춰본 적이 있는데, 그 때 난 거의 기절할 뻔했지…”
괴물의 ‘근심에 찬 한탄’은 공포마저도 무기력하게 한다.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이런 것이겠지.

‘우유가 상할 정도의 몰골’을 당신 인생에서 치워주세요!

그래서 발터 뫼르스에게 있어서 ‘삶’은 ‘경이로운 모험’ 이어야 한다. 모험은 활력이고, 미래를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이 소설에서 보여지듯이 주인공은 죽음과 내기를 하고, 죽음에 도전을 하고, 죽음을 극복한다.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주와 사후 세계, 괴물과 영웅들을 치환하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형을 천진하게 또는 광폭한 손짓으로 조물락거리는데 그 조형물은 가히 기괴하다.

도움이 절실할 것 같은 전라의 ‘아마조네스 여전사’는 ‘생식 다이어트’하듯이 용을 갈아 마시고, 괴물은 근심에 싸여 마른 장작이 되어가고, ‘괴물 돼지’는 썩은 어금니를 뽑아달라 한다. 공간과 시간, 우주와 차원을 넘어선 상상의 언어는 상식을 전복한다. 창조는 파괴 뒤에 오는 것 아니겠는가.

밤...
시간의 전복, 세계의 전복, 상상의 전복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에,
우리가 모두 꿈꾸는 그것이 살아나는 밤에.

 


사랑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아니 정말로 가슴이 찢어져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지고 말았다. 이것으로 영영 돌아오지 않을 아름다운 처녀를 품은 쪽과, 아직은 온전히 그의 것으로 남아 있는 나머지 반쪽으로 가슴 한복판을 관통하는 그 차가운 균열의 느낌은 여태껏 느껴본 그 어떤 육체적 고통보다 심한 것이었다.”  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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