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인식/과학평론가ㆍ |

 

질보다는 음핵에 의존하는 여성 오르가슴의 특이성 때문에 오르가슴의 기원을 놓고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동물학자인 데스먼드 모리스는 화제작인 ‘털없는 원숭이’(1967)에서 여자의 오르가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득이 있으므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첫째 오르가슴은 한쌍의 남녀관계를 결속시켜준다. 성교 도중에 여자들이 오르가슴을 통해 남자 못지않은 수준으로 성적 쾌감을 보상받는다면 여자들은 성교할 때마다 짝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다. 이러한 여자에게 매료된 남자는 바람을 덜 피우게 되므로 오르가슴은 부부관계를 강화하고 가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둘째 오르가슴은 임신 가능성을 크게 높여준다. 여자가 걸을 때 질의 각도는 거의 수직에 가깝다. 따라서 성교 직후에 여자가 서서 움직이면 대부분의 정액이 질 밖으로 나와서 허벅지로 흘러내린다. 이런 상황에서 정액을 질 속에 담아두려면 남자가 사정을 마치고 성교를 끝낸 뒤에 여자가 수평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여자를 누워있게 하려면 성적으로 만족해서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자가 기진맥진해서 녹초가 될만큼 격렬한 오르가슴을 느끼면 피로하고 졸음이 와서 계속 누워있을 것이다. 결국 정액이 질 밖으로 덜 흘러나오기 때문에 수정될 기회가 상당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이 주로 밤에 성교를 하고 곧장 잠들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설명될 수 있다.

오르가슴이 일거양득의 이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리스의 견해는 오르가슴을 인간이 환경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 진화시킨 적응의 산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르가슴을 적응의 결과가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도널드 시몬스이다. 그는 1979년에 펴낸 ‘인간 성의 진화’라는 책에서 음핵을 남자의 젖꼭지에 비유했다. 남자의 젖꼭지는 여자의 그것과는 달리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여자의 젖꼭지가 아이에게 젖을 빨리는 중요한 기능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남자에게 젖꼭지가 달려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젖꼭지는 그 기능이 어떻든 남녀에게 똑같이 주어진 신체기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여자 젖꼭지가 없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남자의 젖꼭지가 덤으로 붙어있다는 것이다.

시몬스는 젖꼭지의 논리를 음핵에 적용했다. 음핵은 음경과 함께 태아의 같은 조직에서 분화되었다. 음경은 사정으로 오르가슴을 달성하는 생식기로 진화되었다. 말하자면 음경은 적응의 산물이다. 그러나 음핵은 생식을 위해 성교에 개입하지는 못하면서 오르가슴을 제공한다. 요컨대 음핵은 생식을 위해 진화되지는 않았지만 음경 덕분에 덩달아 오르가슴 기능을 갖게된 우연의 산물이다. 시몬스의 논리에 따르면, 남자의 젖꼭지나 여자의 음핵은 이성의 몸에 있는 짝의 기능이 진화되었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존재하게 된 진화의 부산물인 셈이다.


임신 가능성 높여준다


1981년 인류학자인 사라 홀디는 모리스와 시몬스의 주장을 일축하는 이론을 발표했다. 여성의 오르가슴과 생식이 분리된 까닭을 유아살해(infanticide)에서 찾은 이론이다. 여자가 젖을 먹이는 동안에는 아이를 갖지 못한다. 배란이 되지 않아서 아무리 성교를 하더라도 임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자들은 자신의 자식을 갖지 않은 여자의 어린애를 보면 곧잘 살해했다.

잔인한 수컷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연약한 암컷이 생각해낸 전략은 가능한 한 많은 수컷들이 그녀의 아이를 자신들의 새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개발한 무기는 배란의 은폐와 적극적인 성행동이었다. 배란기를 모르고 성교를 함에 따라 수컷들은 암컷의 새끼라면 자신의 자식일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암컷이 여러 수컷들과 생식보다는 성교 자체를 즐기기 위해 필요로 한 것은 성교에서 받는 보상, 즉 오르가슴이었다. 오르가슴은 결국 암컷이 밤낮으로 성교에 탐닉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진화된 것이다. 홀디의 이론은 여성의 오르가슴이 일부일처의 결속보다는 난잡한 성관계를 고무하기 위해서 진화되었다는 측면에서 모리스의 이론과 정반대이며, 암컷이 수컷으로부터 자신이 낳은 새끼를 기르는데 필요한 양육투자와 보호를 얻어내기 위해 진화된 적응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시몬스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오르가슴의 기원에 대한 이론은 그 밖에도 여러가지가 더 있지만 오늘날까지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오르가슴이 비록 생식과 분리되어 있지만 임신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두 개의 이론이다. 하나는 모리스가 제안한 바와 같이 오르가슴이 여자를 성교 직후 누워있게 만들어서 정액의 손실을 줄여준다는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오르가슴이 정액을 흡인하는 효과가 있다는 이론이다. 흡인이론에 따르면, 여자가 오르가슴을 느끼면 자궁이 수축하므로 자궁 내부의 압력이 증가된다. 이러한 압력의 증가로 여자의 신체가 무의식적으로 질에 있는 정액을 더 많이 자궁 안으로 빨아들이기 때문에 수정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오르가슴은 문화적 발명품


여자의 성욕을 죄악시하고 여자를 남자의 성적 노리개쯤으로 삼는 문화에서 여성의 성은 철저히 억압받는다.한국도 마찬가지다.
여자의 성욕을 죄악시하고 여자를 남자의 성적 노리개쯤으로 삼는 문화에서 여성의 성은 철저히 억압받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오르가슴은 음핵의 물리적 자극에 의해 획득되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상대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심지어는 강간을 당하면서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자가 있다. 또 매춘부들이 오르가슴을 느꼈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나 여성의 오르가슴이 음핵의 생리적 기능 못지 않게 여성의 마음에 의해 좌우되는 현상임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여성 오르가슴이 문화적 산물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여자의 성욕을 죄악시하고 여자를 남자의 성적 노리개로 삼는 문화에서는 여자의 성을 철저히 억압한다. 예컨대 회교가 득세하는 아랍국가의 여자들은 금욕을 강요받고 있다. 아프리카 일부 부족 사이에는 음핵절제(clitoridectomy)와 음순봉합(infibulation)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음순봉합은 음핵을 제거하고 주변 조직을 난자한 다음에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음순이 서로 붙게 하는 외과적 수술이다.

한편 오르가슴을 남녀가 성취할 수 있는 최선의 쾌락으로 높이 사는 사회에서는 여자의 오르가슴을 소중한 문화의 발명품처럼 다룬다. 남태평양에 소재한 쿡 제도의 하나인 망가이아(Mangaia) 섬이 대표적인 보기이다. 이 섬의 여인들은 성교 중에 2-3회의 오르가슴을 만끽한다. 남자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성인이 되는 일련의 의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성교 경험이 풍부한 늙은 부인네들로부터 여자에게 최고의 성적 쾌락을 안겨주는 비법을 실습을 통해 전수받는다. 만일 여자를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 사내는 섬사회로부터 신분상실 등 불이익을 감수해야 된다. 망가이아 섬사람들은 남녀노소가 선진국의 성의학 전문가 못지 않게 성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진화는 다른 개체보다 자손을 더 많이 생산하려는 유기체 사이의 경쟁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성적 쾌감 또한 생식의 성공을 위해 진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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