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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바라보며
자명한산책 68 1 2006.04.18

서른을 바라보며

돼지국밥을 먹으러 가면
옻빛의 둥그런 뚝배기를
거울처럼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웅숭깊은 그 빛깔에 아직은 내가 비치지 않는다
(어머니는 이 국밥을 삼십 년 전통이라고 부른다)

국밥에는 어머니의 처녀적 이후 삶이 담겨 있고
그보단 그것을 먹으며 자라온 내 서른 해가 있다
국밥을 담기 전에
뜨거운 국물로 뚝배기를 한 번 데치고,
또 한 번 데치듯이
나는 그 뜨거움에 마음을 적셔왔다
국밥을 먹는 공장 아저씨들이
어느덧 나보다 어린 얼굴로 바뀌고 있음을 보듯
뜨거운 국물이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바꾸지 못한 채
질낮은 고깃덩이를 감쪽같이 수락하는
자기 변명이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이제 어설피 나자신을 용서하지도 못하는가

돼지국밥을 먹고나면
미적지근하게 식어가는 뚝배기를 매만지며
그 뜨거움의 기억이 서러웁다

 

 

송호필 눈에 띄는 기교는 없지만 돼지국밥 한 그릇으로 어머니의 삶과 서른을 눈앞에 둔 자신을 담담하게, 진정하게 성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묵직한 감동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큰 장점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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