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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원인 제공자는 진중권이지요. 이규태의 글에 대해서 직접적인 비판을 가했어야 하는데, 큰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추상적 용어들을 비판에 끌어 들임으로써, 이와 관련한 논란이 핵심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놓았으니 말입니다. 남의 다리를 긁으면 시원한가요?
아랍이 혹서와 혹한만 교차하는 지역이 맞는지, 맞다면 그런 기후가 정말로 단일한 사고와 행동양식을 만들어 냈는지, 정말로 다양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정도로 호전적이고 극단적인 형태로 단일화 되어 있는게 사실인지를 두고 따졌어야 옳았다고 봅니다.
충돌의 순간에 인샬라라고 외쳤을거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추궁했어야 했겠지요.
진중권이 이규태를 비판하기 위해, '환경결정론'이니, '인종주의'라는 용어를 무리하게 끌어들이는 순간 논의의 촛점이 흐트러진 거라고 봅니다. 두사람 사이에서 논란이 되어야 마땅했을 '911의 원인에 대한 상반된 시각'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환경결정론'이 옳으니 그르니를 두고 의미없는 쳇바퀴를 돌리게 만들어 버린 셈이지요.
일단 길을 잘 못들고 나면, 아무리 많은 단어들이 무한증식한다고 해도 별 쓸모가 없어진다는 점을 아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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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 이규태를 비판하기 위해, '환경결정론'이니, '인종주의'라는 용어를 무리하게 끌어들이는 순간 논의의 촛점이 흐트러진 거라고 봅니다. 두사람 사이에서 논란이 되어야 마땅했을 '911의 원인에 대한 상반된 시각'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환경결정론'이 옳으니 그르니를 두고 의미없는 쳇바퀴를 돌리게 만들어 버린 셈이지요---청연 =====> 이 부분의 지적에 100% 동감합니다. 그래서 제가 쓴 글에서 괜히 이규태를 끌어들여 그것도 억지 논리를 주장하지 말고 독자적으로 주간동아 같은 잡지에 진중권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것이 정도(正道)였으리라고 말했던 겁니다.
이규태의 글이 논리에 맞지 않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서 굳이 논의와 전혀 상관없는 '환경결정론이 고리타분한 이론'이며 또 '이규태가 인종주의'라며 폭언할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이기현님이 자주 말하는 논점일탈의 오류이며 또 환경결정론은 고리타분한 이론도 아닙니다.
제가 그 부분을 집중하여 파고 들어 진중권이 얼마나 무식하여 용감한가를 말한 이유는 '진중권현상--뭘 모르면서 전문가들의 영역에 나서서 폭언을 해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일환이었습니다.
물론 아마추어도 나설 권한이 있고 또 요즘에는 그런 기회와 영역이 많이 주어지고 있는 환경으로 바뀠습니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잘 모르는 상태로 '폭언'까지 하는 현상은 뭔가 문제가 심각하지 않습니까? 모르면 자신이 좀 잘 알게 될 때까지 그 추이를 관찰하는 것도 일종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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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현님은 민화(民畵)나 풍속화가 그 사회의 풍속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는 단순한 예술작품이상의 문화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혹시 이기현님은 일본의 민화 중에서 산모가 (쌍둥이?)애기를 낳은 후 그 자리에서 목을 졸라 죽이고 있는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까? 먹을 것이 부족해서 이런 참화가 일어났으며 그 풍속화는 그걸 그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도 KOTRA 홈피 나고야 무역관에서 우연히 본 그림인데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보여 드릴려고 찾았는데 지금은 없군요. 아마도 그간 모아 두었던 자료들을 책으로 발간하느라 편의상 삭제를 한 모양입니다.
대신 『일본문화와 비즈니스』라는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http://www.kotra.or.kr/unicenter/notice/TC270S.jsp?inpt_no=36¬i_cd=177&page=1&search_gbn=ttl&search_txt=%C0%CF%BA%BB%B9%AE%C8%AD&world_cd=9100
제가 환경결정론이 인종주의로 이용될 측면이 없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칼을 예로 들어서 사용하기 나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환경결정론을 자세히 알면 알수록 인간은 겸손해져야 한다는 사실에도 천착하게 됩니다. 쓰나미나 카트리나 같은 자연 재해도 인간의 오만함에서 오는 자연파괴에서 오는 보복이라는 경종도 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며 위대한 존재라고 하더다고 해도 자연에 비하면 미미한 존재일 뿐이라는 거죠. 서구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수탁자로서의 인간관>이 자연환경의 파괴를 가속화 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은 잘 알고 계실겁니다.
이에 비해서 <무위자연>사상을 축으로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노장사상은 환경에 비해 인간이 우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경결정론과의 새로운 접점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환경결정론에 대한 일종의 재인식이지요. 이처럼 학설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다른 색채를 부각시킬 수도 있습니다.
북극 등 추운지역에 사는 곰은 따뜻한 지역에 사는 곰에 비교해서 몸집이 훨씬 큽니다. 이건 환경과 유전자 풀(pool)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상관고리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환경이 유전자에 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가 될 만 하지요. 아시겠지만 북극곰의 몸집이 큰 이유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체온은 대부분 피부로 발산이 되는데 작은 몸집은 피부껍질과의 비율이 너무 비슷해서 체온보존에 불리하고 큰 몸집은 덩치에 비해 피부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어지는 관계로 체온 유지에 유리합니다. 환경결정론 아니 환경의 힘은 이렇게 큽니다.
기타 ........
청연님의 지적대로 진중권이 '근거없는 비약과 논점일탈'(왜 그랬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일이 참 많았지요)을 하지 않았다면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
p.s)참고로 저는 문명비평도 하지만 문화비평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분야에 관해서 적어도 10~20여권 정도의 책을 발간할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라야마 부시코와 씨받이 글에 진중권의 이름은 단 한번 밖에 등장하지 않고 있을겁니다. 자꾸 진중권 이야기 하면서 내 글의 질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꼭 진중권이 싫고 질이 낮다는 말이 아니라 남을 비난하는 목적이 주목적인 글은 대체로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기에 하는 말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