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야마 부시코' 허구로 '환경결정론' 옹호라?
[논단] "이규태식 인식은 더러운 침략전쟁 정당화에 일정부분 이바지"
 
이기현
 
그동안 과도하게 이규태를 옹호해왔던 무위가 드디어 소설(영화)을 사실로 묘사해 실제상황과 픽션을 제대로 구분을 할 수 있는 능력은 되는 지까지 의문을 표하게 만들고 있다.
 
무위가 이번에 쓴 도입부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자.
 
굶주림의 계절인 겨울에 태어난 사내아이들은 이웃의 논바닥에 버려지고 여자 아기는 한 줌의 소금에 팔린다. 마을에서 70세가 되는 노인들은 가족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나라야마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한반도에도 있었다는 고려장과 비슷한 풍속이다. 70세가 되어서도 건강한 노인 오린은 자식과 마을사람들에게 자신이 죽을 때가 되었을 만큼 쇠약해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이빨을 돌절구에 부딪쳐 깨버린다.
 
그렇다. 이것은 일본의 유명한 영화인 ‘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영화의 장면들이다. 무위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고 있고 이규태가 썼으며 진중권이 비판했던 환경결정론을 옹호하기 위해 바로 이 허구를 끌어들인다.
 
무위는 ‘나라야마 부시코’가 허구라는 것을 알면서 이것을 그 이후 실제와 연결을 시킨다. 이른바 선의추정원칙에 의거 이렇게 잘못된 논거를 끌어들여 잘못된 주장을 하는 것을 최대한 인정을 한다면 결국 무지에 의한, 이른바 지적소화불량에 빠져 올바른 주장을 펴고 있지 않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가 세계인의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점은 척박한 환경이 인간들의 가치체계와 도덕율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진솔하게 표현해 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무위가 영화를 끌어들여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저 부분에 있다. 척박한 환경이 인간의 가치체계와 도덕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위는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이 실제 ‘민족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논증은 지금까지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거의 민족과는 상관이 없다는 증거들이 더 많다.
 
유럽, 특히 독일이나 영국은 겨울철에 해를 보기 힘들다. 심한 해에는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해를 한 번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덕분에 통계자료에 의하면 이 시기에 자살률이 상당히 높다. 이규태가 주장하는 환경결정론에 따르면 유럽에 사는 민족들은 자살을 유발하기 딱 알맞은 성격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그럴까.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성향이 우울증을 크건 작건 갖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게놈프로젝트에서 우울증에 특별히 약한 유전자가 해석이 됐다. 환경결정론이 옳다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특별히 우울증에 강하던지(아니면 민족을 유지하기 힘드니까), 아니면 환경의 영향으로 우울증에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유전자 지도에 따르면 특별히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과 통계적으로 큰 차이를 찾을 수 없다.
 
더 해보자. 처음 이규태가 말했던 아랍사람들은 셈족이나 함족인 단일계통의 민족인가. 최초로 문명을 만들었다는 수메르 사람들은 정확하게 확인이 되지 않지만 그 이후 아카드인은 셈족계열이고 수메르 민족이 자주 대립을 했던 사람들은 이란계열이다. 지금의 아랍인과 큰 차이를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터어키에 있었던 힛타이트 사람들은 인도유럽계이다. 한 지방에서 거의 변화지 않는 문명을 유지했던 이집트의 경우 종종 이디오피아계 왕조가 있기도 했다. 다시 말해 흑인계열도 섞였다. 이후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의 집단이주 속에서 터어키계를 비롯한 알타이어계 민족들도 다수 유입이 된다. 이들이 섞이면서 현재의 아랍인이 됐는데 이를 하나로 묶을 수 있을까.
 
더욱 이규태의 당시 칼럼이 문제가 되는 것은 911테러 직후 썼다는 점이다. 이후 미국의 보복전쟁은 어떠했는지 굳이 더 말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규태식의 인식은 이 더러운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데 일정부분 이바지를 했다. 최소한 당시 테러를 일으킨 사람이 “인살라”라고 외쳤는지는 생존자 중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를 유추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그 인식의 저변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환경결정론이 있으며 그 바탕에는 인종주의가 들어 있다.
 
환경결정론은 최대한 봐줘도 증명이 불가능한 이론이다. 이를 학문에서는 이론이라고 하지 않고 “가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위는 주 논점은 아니었지만 이규태의 여성인식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 이렇게 해석을 했다.
 
이규태를 보고 인종주의자니 또는 남성우월주의자니 하는 폭언을 하는 일은 학문에 대한 몰이해나 지적인 게으름에서 비롯된다.
 
더 말하지 않겠다. 다만 폭언도 아니고 지적 게으름도 아니다. 직접 무위는 이 글을 확인해 보기 바란다.
 
악소 연령의 하강은 요즈음 아이들의 조숙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종적인 부모의 힘이 약화되고 횡적인 인터넷의 힘이 대신해온 것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으며 호주제 폐지로 자신이 호주라는 의식이 만연, 불량화가 가속화할 것은 뻔한 일이다. 땅 위로 솟아난 불량은 자르면 다시 돋아난다. 그 뿌리부터 알아내는 정부 차원의 원시적(遠視的) 처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작년 일진회 문제로 언론이 떠들썩하던 때에 이규태가 쓴 글이다. 여기에서 이규태는 옛날에 악소배라는 아이들이 있었고 이것이 일진회와 비슷하다고 말한 이후 원인을 이렇게 해석을 했다. 호주제를 옹호하는 것이 메일쇼비니즘이라는 것까지 여기에서 논증하고픈 생각은 없다. 다만 무위에게 모르면서 아는 척은 하지 말기를 부탁하고 싶다.
 
조금 더 덧붙여서 무위가 “그는 철저하게 '있다. 있었다'라는 Be동사를 사용했지 '해야만 한다(should 또는 ought to)'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 말 역시 틀렸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이규태는 저 글에서 “정부 차원의 원시적(遠視的) 처방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해야만 한다(should 또는 ought to)'고 썼다.
 
무위에게 “학문에 대한 몰이해나 지적인 게으름에서 비롯된” 글만큼은 최소한 공개적인 칼럼으로 쓰지 않기를 부탁한다.
 
덧붙여서 하나만 더 확인하겠다. 무위는 편집후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FTA 등 쓰야할 글이 많다. 비생산적인 논쟁으로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다.(사실 위 글도 사람이름 하나 정도만 빼면 책으로도 실을 수 있도록 쓰려고 의도했다)
 
그런데 문명비평가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자칭하고 있고 자신의 기명으로 칼럼을 기고해 놓고 이후 자신의 글에 대한 비판에 대해 “비생산적인 논쟁”이라고 일컷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논쟁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진중권은 파시스트”라는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을 기고해 놓고 논쟁을 않겠다는 처사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진중권은 조갑제가 파시스트라는 것을 논증하면서 수십가지 논거로 몇 년에 걸쳐 ‘비생산적인 논쟁’을 했는데 원래 사상검증이라는 것은 할 수 없다.
 
굳이 이런 엄청난 글을 쓰면서 논쟁하고 싶지 않다면 더 좋은 방법도 많다. 가장 쉬운 방법은 벽보고 말하는 것이다. 혹시 그것이 외롭다면 거울을 보고 거울 속에 자신과 대화해도 좋다.
 
2006/04/20 [04:41] ⓒ대자보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님과 무위의 논란은 핵심에서 벗어난 지점에서 진행 중입니다.
청연
06/04/21 [01:18]
물론 원인 제공자는 진중권이지요. 이규태의 글에 대해서 직접적인 비판을 가했어야 하는데, 큰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추상적 용어들을 비판에 끌어 들임으로써, 이와 관련한 논란이 핵심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놓았으니 말입니다. 남의 다리를 긁으면 시원한가요?

아랍이 혹서와 혹한만 교차하는 지역이 맞는지, 맞다면 그런 기후가 정말로 단일한 사고와 행동양식을 만들어 냈는지, 정말로 다양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정도로 호전적이고 극단적인 형태로 단일화 되어 있는게 사실인지를 두고 따졌어야 옳았다고 봅니다.

충돌의 순간에 인샬라라고 외쳤을거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추궁했어야 했겠지요.

진중권이 이규태를 비판하기 위해, '환경결정론'이니, '인종주의'라는 용어를 무리하게 끌어들이는 순간 논의의 촛점이 흐트러진 거라고 봅니다. 두사람 사이에서 논란이 되어야 마땅했을 '911의 원인에 대한 상반된 시각'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환경결정론'이 옳으니 그르니를 두고 의미없는 쳇바퀴를 돌리게 만들어 버린 셈이지요.

일단 길을 잘 못들고 나면, 아무리 많은 단어들이 무한증식한다고 해도 별 쓸모가 없어진다는 점을 아셨으면 좋겠네요.
수정 삭제
청연님/ 동감입니다.
무위
06/04/21 [01:41]
진중권이 이규태를 비판하기 위해, '환경결정론'이니, '인종주의'라는 용어를 무리하게 끌어들이는 순간 논의의 촛점이 흐트러진 거라고 봅니다. 두사람 사이에서 논란이 되어야 마땅했을 '911의 원인에 대한 상반된 시각'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환경결정론'이 옳으니 그르니를 두고 의미없는 쳇바퀴를 돌리게 만들어 버린 셈이지요---청연 =====> 이 부분의 지적에 100% 동감합니다. 그래서 제가 쓴 글에서 괜히 이규태를 끌어들여 그것도 억지 논리를 주장하지 말고 독자적으로 주간동아 같은 잡지에 진중권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것이 정도(正道)였으리라고 말했던 겁니다.

이규태의 글이 논리에 맞지 않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서 굳이 논의와 전혀 상관없는 '환경결정론이 고리타분한 이론'이며 또 '이규태가 인종주의'라며 폭언할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이기현님이 자주 말하는 논점일탈의 오류이며 또 환경결정론은 고리타분한 이론도 아닙니다.

제가 그 부분을 집중하여 파고 들어 진중권이 얼마나 무식하여 용감한가를 말한 이유는 '진중권현상--뭘 모르면서 전문가들의 영역에 나서서 폭언을 해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일환이었습니다.

물론 아마추어도 나설 권한이 있고 또 요즘에는 그런 기회와 영역이 많이 주어지고 있는 환경으로 바뀠습니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잘 모르는 상태로 '폭언'까지 하는 현상은 뭔가 문제가 심각하지 않습니까? 모르면 자신이 좀 잘 알게 될 때까지 그 추이를 관찰하는 것도 일종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수정 삭제
이기현님/ 나라야마 부시코는 단순한 허구가 아닙니다
무위
06/04/21 [02:04]
이기현님은 민화(民畵)나 풍속화가 그 사회의 풍속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는 단순한 예술작품이상의 문화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혹시 이기현님은 일본의 민화 중에서 산모가 (쌍둥이?)애기를 낳은 후 그 자리에서 목을 졸라 죽이고 있는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까? 먹을 것이 부족해서 이런 참화가 일어났으며 그 풍속화는 그걸 그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도 KOTRA 홈피 나고야 무역관에서 우연히 본 그림인데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보여 드릴려고 찾았는데 지금은 없군요. 아마도 그간 모아 두었던 자료들을 책으로 발간하느라 편의상 삭제를 한 모양입니다.

대신 『일본문화와 비즈니스』라는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http://www.kotra.or.kr/unicenter/notice/TC270S.jsp?inpt_no=36¬i_cd=177&page=1&search_gbn=ttl&search_txt=%C0%CF%BA%BB%B9%AE%C8%AD&world_cd=9100

제가 환경결정론이 인종주의로 이용될 측면이 없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칼을 예로 들어서 사용하기 나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환경결정론을 자세히 알면 알수록 인간은 겸손해져야 한다는 사실에도 천착하게 됩니다. 쓰나미나 카트리나 같은 자연 재해도 인간의 오만함에서 오는 자연파괴에서 오는 보복이라는 경종도 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며 위대한 존재라고 하더다고 해도 자연에 비하면 미미한 존재일 뿐이라는 거죠. 서구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수탁자로서의 인간관>이 자연환경의 파괴를 가속화 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은 잘 알고 계실겁니다.

이에 비해서 <무위자연>사상을 축으로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노장사상은 환경에 비해 인간이 우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경결정론과의 새로운 접점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환경결정론에 대한 일종의 재인식이지요. 이처럼 학설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다른 색채를 부각시킬 수도 있습니다.

북극 등 추운지역에 사는 곰은 따뜻한 지역에 사는 곰에 비교해서 몸집이 훨씬 큽니다. 이건 환경과 유전자 풀(pool)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상관고리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환경이 유전자에 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가 될 만 하지요. 아시겠지만 북극곰의 몸집이 큰 이유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체온은 대부분 피부로 발산이 되는데 작은 몸집은 피부껍질과의 비율이 너무 비슷해서 체온보존에 불리하고 큰 몸집은 덩치에 비해 피부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어지는 관계로 체온 유지에 유리합니다. 환경결정론 아니 환경의 힘은 이렇게 큽니다.

기타 ........

청연님의 지적대로 진중권이 '근거없는 비약과 논점일탈'(왜 그랬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일이 참 많았지요)을 하지 않았다면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

p.s)참고로 저는 문명비평도 하지만 문화비평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분야에 관해서 적어도 10~20여권 정도의 책을 발간할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라야마 부시코와 씨받이 글에 진중권의 이름은 단 한번 밖에 등장하지 않고 있을겁니다. 자꾸 진중권 이야기 하면서 내 글의 질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꼭 진중권이 싫고 질이 낮다는 말이 아니라 남을 비난하는 목적이 주목적인 글은 대체로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기에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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