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호에서 보낸 1460일 - 사상 최악의 전쟁, 제1차 세계대전의 실상
존 엘리스 지음, 정병선 옮김 / 마티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영웅적인 임무 완수, 사선에서의 전우애, 현대 과학기술의 파괴 미학 등 영화 속의 전쟁상은 가상 체험이라는 극적 효과에 목표를 두고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헐리웃 자본은 승부, 생존의 극적 긴장감과 환상의 이미지로 현실을 삼켜버리듯 잠식하고 있으며, 세상을 스크린으로 옮겨 놓았다. 여기에 미디어는 전쟁조차도 생중계로 전하면서 ‘당신은 안전합니다’라고 강조하고, 전쟁을 그들만의 생존게임으로 둔갑시켜버린다. 어느새 감각은 시신경만을 자극할 뿐이고, 우리는 현실과 복제의 경계에서 자기 중심의 세계를 만들어 그 안에 앉아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우리가 세상을 제대로 보려면 알 속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인류의 가장 큰 도박은 전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대인 살상무기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보병 돌격전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양측은 깊은 참호를 파기 시작했고, 그 후 4년(1460일간)동안 구덩이 속에서 치열한 살육전을 펼치게 된다. 병사들은 지옥의 문턱에서 고통에 신음하고 죽어갔다. ‘승부’의 냉정함과 참혹함은 영국군 370만 사상, 프랑스 390만 사상, 독일군 1100만 소집인원 중 170만 사망이라는 역사적으로 최악의 군 사상자 기록을 내게 된다. 그러한 전쟁의 실상을 담은 이 책은 참전 군인들의 참호 생활과 생각을 세세하게 담아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참호전은 파괴와 개보수, 위치 사수가 끝없이 반복되는 거대한 소모전이었다. 연합군은 1063만 8천자루의 삽으로 약 2만 4천 킬로의 참호를 팠다고 하니, ‘삽질’은 제1차 세계대전의 가장 주요한 ‘삽질’이었던 셈이다. 참호와 참호 사이의 무인지대에는 철조망을 설치하였는데, 수백미터에서 단지 6~7미터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참호 생활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플랑드르 지방은 저지대라 조금만 땅을 파도 물이 나와 진흙탕이 되는 지역이다. 무릎까지 빠지는 진흙구덩이, 겨드랑이까지 차오르는 물속에서 며칠간 근무하기도 한다. 그런 상태로 오래 있으면 ‘참호발’에 걸려 발을 잘라내기도 하는데, 포탄 구덩이의 진흙에 빠져 죽는 병사들도 많이 있었다.

“쥐들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시체였다. 특히 눈과 간을 좋아했다. 바르뷔스는 병사들이 시체 주위에서 항상 죽은 두세 마리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폭식 아니면 중독이었다.” 86p

자고 나면 팔에 붙어있는 70여마리의 파리들, 붉은 이, 하얀 이가 온 몸을 물어대고, 그것으로 인해 감염되는 질병 그리고 악취는 사는 것을 거짓말처럼 만들어 버린다.

“우리는 모두 시체들이 뿜어내는 악취에 짓눌려 있었다. 우리가 먹는 빵, 우리가 마시는 물, 우리가 손대는 모든 것에서 썩는 냄새가 났다.” 94p

정기적으로 참호 이동이 이루어졌다. 30~40킬로그램의 군장에 비가 오면 어찌나 흡수가 잘 되던지 약 10킬로그램 정도의 물을 더 얹고서 근무지로 향한다. 진흙구덩이는 더욱 발을 잡아당기고, 추위와 배고픔, 벌레와 질병, 폭격과 저격수는 늘 생명을 위협한다.

하루에 100만발이 쏟아지기도 했던 폭격, 전쟁기간에는 1억 7천만개가 사용되었다 하는데, 포탄충격에 빠진 병사들은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서 죽음의 전선에 배치되었다. 치명적인 독가스는 병사들의 눈을 멀게 만들고, 기관지의 점막을 녹여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고, 죽어가는데 며칠씩 걸리게 했다. .

이러한 최전선에 ‘보고 체계’는 필수. 그러나 황당하다.
격렬한 포격을 뚫고 전달되는 메시지의 내용
1)‘단추는 반드시 휘장 오른쪽 위에 꿰매어 달아야 한다.’
2)‘탑승 여부와 관계없이 장군의 깃발이 휘날리는 자동차에는 항상 경례 할 것”
3)‘장교님의 암말이 선역으로 고통 받고 있다’ 식이다.

게다가 지휘관들은 독일군의 기관총 앞으로 돌격하는 무식한 전술을 독려한다. 전멸, 해체되는 부대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예로 루스 전투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하루 동안 잃은 병력보다 더 많은 병력을 잃기도 했다.

“조준할 필요가 없었다. 장전하고 재장전하기만 하면 됐다”

그러한 전술에 수긍한 사병들은 죽음보다 집단적 경멸, 겁쟁이가 되느니 죽는 게 낫다라는 집합적 의지를 갖고 있었다.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없이 전진했던 좀비들… 사는 것이 정말 거짓말 같았을 것이다.

전진하는 부대는 부상병 돌보는 것이 금지되었다, 부상병들은 방치되었기에 스스로를 치료해야만 했다. 부상병들 스스로 기어서 참호로 복귀하는 게 사는 방법… 진흙 속에서 부상병 후송하는 것도 쉬운 임무가 아니겠지만, 어쨌든 야전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하더라도 다른 부상자들을 위해 어느 정도 회복하면 바로 복귀되었다.

전쟁 말기

“1918년 말에는 총격전이 거의 없었다. 임무 수행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생략함으로써 전쟁이 중단되었다. “

부대 곳곳은 탈영, 항명, 와해된 사기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정체된 전선, 그 안에 있던 병사들의 고통은 죽음의 위협만큼 끔찍했다. 그 참혹함이 인간을 잠식하고, 전쟁마저도 종식시킨 것이다. 거대한 중력수축에 의해 블랙홀이 되어버리는 초신성의 운명처럼…

그러나 지옥을 경험한 자들과 경험하지 않은 자들 간의 불신과 증오가 커져 갔다. 누군가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미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의 상황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분열과 장벽을 발생시킨다.

삶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들의 전쟁을 방관하는 자들이 충돌하는 세계….

서부 전선 이상 없다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누군가의 희생에 침묵을 던지는 세계는 여전히 전쟁 중인 것이다.

우리의 전쟁은 그래서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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