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이근 기자/ 한겨레 경제부 ryuyigeun@hani.co.kr

문제는 돈이다. <한겨레21>은 지난 596호(2006년 2월7일자) ‘정치의 속살’에서 ‘밥이 문제다’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밥은 돈의 문제로 넘어간 지 오래다. 어느 식당에서 뭘 먹냐는 더 이상 의원들의 소소한 고민이 아니다. 정치자금법은 뒷돈, 눈먼 돈으로 펑펑 쓰던 호시절로 의원들이 되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 달 밥값으로만 3천만원을 썼다는 민주당 옛 중진 의원의 얘기는 이제 전설로 남게 됐다.

여의도 기자들의 존재는 여의도 정치인들의 밥 때 고민을 키운다. 공인으로서 기자를 떼놓고 살 수 없는 정치인들은 밥 때에도 따라붙는 기자들을 매정하게 내칠 수 없다. 상상해보자. 밥을 굶긴 정치인에게 돌아갈 기자들의 가벼운 분노를. 그래서 많을 때 몇십 개의 입을 서운하지 않게 달래려다 보면 목돈이 들게 마련이다.

지난 3월12일 정동영 열린우리당 당의장과 고건 전 총리의 만남은 정치권의 ‘밥값’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 ‘역사적 순간’이었다. 처음에 호텔에서 만나자는 얘기가 나왔다. 고 전 총리는 귀족 냄새가 나서 싫다고 했다. 그래도 여기까지가 국민을 바라보며 정치한다는 고민이 담긴 정치인의 마지막 제스처다. 인사동 한식집은 우중충한 분위기 때문에 탈락했다. 사진기자들의 원성을 살 수 있다는 노련한 정치인의 계산이었다. 프레스센터와 중식당 ‘싱카이’가 다툼을 벌이다 밥맛이 좋은 싱카이로 낙찰됐다. 이 집의 점심 코스 요리는 4만2천원에서 10만원까지다.

전주 북중 선배인 고건은 정동영의 밥값을 내겠다고 선뜻 제의했다. 문제는 기자들의 밥값. 8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그 많은 기자들의 점심값은? 열린우리당 출입기자들이 오는 만큼 열린우리당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났다. 회동을 하루 앞둔 정 의장 쪽에선 주체할 수 없는 밥값 때문에 풀(몇몇 언론사 대표) 기자단을 운영하겠다고 출입기자단에 메일을 날렸다. 하지만 주최 쪽의 밥값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자들은 따끈따끈한 뉴스거리에 왜 풀단을 운영하냐며 불만을 쏟아냈다. 불과 1시간 만에 회동을 공개하기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수백만원의 밥값 영수증을 끊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열린우리당 공보실은 최후까지 현장에 남은 30여 명의 기자들을 이끌고 근처 곰국수집에 가서 5천원짜리 국수전골을 아쉽지 않게 돌렸다.

비교적 돈을 펑펑 쓰던 2002년에도 밥값은 만만치 않은 골칫덩어리였다. ‘후단협’은 잠실 롯데호텔 중식당에서 출발해 여의도의 한국관, 옛 맨하탄호텔의 중식당 등 고급 음식점을 돌며 매일같이 모임을 가졌다. 기자들이 떼로 몰려들면서 한 끼 밥값이 100만원을 훌쩍 넘어설 때도 있었다. 최명헌·김영배·김원길 의원 등이 돌아가며 계산했지만 돈 많은 이들도 화수분은 아니었다.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한 채 국회의원회관 1층 회의실에서 도시락을 까먹는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주머니 사정 때문이었는지, 줄을 잘못 서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노무현의 집권으로 모두 몰락했다.

지난 3월15일 여야 4당의 대변인들이 신당동에서 떡볶이를 먹은 뒤 밥값 15만원을 사다리 타기로 각각 1(민주노동당) : 1(열린우리당) : 2(민주당) : 6(한나라당)의 비율로 분담했다. 한편의 코미디다. 그러나 ‘문제는 밥값’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정치 현주소가 코미디의 소재였다는 것마저 코미디는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