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 불리는 사람들

97년 한여름 밤 처갓집에서 동서와 웃통 벗어젖히고 한참 술잔을 주고받을 무렵 잡지 기자로 일하던 후배가 펑크 난 원고를 때워주라 전화를 했다. 글을 써본 적 없는 나에게 그런 청을 한 것부터가 희한한 일이었지만 그놈의 술이 흥을 돋웠던지 아니면 사는 게 워낙 팍팍했던지 동서가 돌아간 새벽녘 식탁에 혼자 앉아 뭔가를 끼적거렸다. 그런데 그게 빌미가 되어 이듬해 초 나는 한 영화주간지의 고정 칼럼을 맡게 되었다. 얼떨결에 ‘필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칼럼이 여섯 해나 이어진다거나 필자가 아니라 저자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쓸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보니 쓸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 여름밤 술김에 썼던 것이나 영화주간지에 처음 쓴 것이나 똑같이 ‘날라리의 영역인 록음악에 깃발을 꼽고 주인 노릇을 하는 모범생들 욕’이었던 건 그런 난처함의 반영이었다. 그렇다고 시작하자마자 꼬리를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를 어째, 한참 낑낑거리다 불현듯 방안이 떠올랐다. ‘그래, 내 이야기를 쓰자.’
독자로서 내 체험 때문이었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른바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가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이 사람들은 왜 제 이야기는 안 하는 걸까’ 였다. 그들은 언제나 구름 위에 앉은 양 세상 이야기를 했고 제 이야기나 일상을 들먹이는 건 어딘가 품위 없는 짓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김수영이라는 거의 유일한 예외를 빼놓고 말한다면, 내가 보기에 한국의 지식인들이란 뇌는 있으되 자의식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의 당연한 하나로서 아이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내가 처음 쓴 아이 이야기는 98년에 쓴 ‘딸 키우기’라는 글이었다. 남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한 여자를 생산해놓은 한 남자의 소회를 적은 글이었는데 지금 읽어보면 그 절절한 필치에 빙그레 웃음짓게 된다. 그 글에 등장한 다섯 살짜리 내 딸 김단은 지금 “내 초경은 언제일까” 궁금해 하는 열세 살 여자다.
아이 이야기를 쓰는 일은 나에게 또 다른 예상하지 못한 의미가 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해서 아이 이야기를 쓰는 일은 ‘내 글과 내 삶을 일치시키는 일’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아이하고 있었던 일을 소재로 내 사회적 견해를 쓰면, 그 사회적 견해가 내 일상을 다시 거꾸로 검증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내 아이를 결부지어 어떤 이야기를 해놓고선 그 이야기와 다르게 행동하긴 어려웠다. 하기야 세상에 어떤 악한이 제 새끼 앞에서 한 말을 쉽게 거스를 수 있겠는가.
이제 나에게 아이 이야기를 쓰는 일은 내가 글 씁네 지식인입네 하다가 주둥이만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 되지 않도록 하는 매우 강력한 장치가 되었다. 그런데 갈수록 아이에 대해 쓰는 것보다는 아이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뜻밖의 것들을 종종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난해 언젠가 나는 김건(김단의 동생, 열 살 남자)과 땅에 대해 대화하다가 가슴이 저렸다. 그는 말했다. “아빠, 그런데 왜 어른들은 땅이 자기 거라고 하는 거야?” 아이들, ‘아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어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영원한 선생이다.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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