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늘빵 > 좌파 신자유주의(홍세화)

좌파 신자유주의


   언어 사용의 혼란은 사회의 혼란을 반영한다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좌파’가 아니라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말한 점도 흥미로운데, 이에 대해, 한나라당에선 노대통령을 ‘좌파’라고 비판하고 다른 쪽에서는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을 응수한 말이라는 그럴 듯한 해석이 있었습니다. 그보다는 “말은 ‘좌파’로 하고 행동은 ‘신자유주의’로 한다”는 게 더 정확한 해석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좌우’라는 말이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시작되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1789년 7월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쳐부수면서 시작된 대혁명은 급기야 군주제를 지속한 것인가 아닌가로 치닫게 됩니다. 그 때 입헌군주제에 찬성했던 의원들이 의회의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고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의원들이 의회 왼쪽에 모였던 일에서 좌우라는 말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좌우의 차이는 그렇게 분명했는데, 결국 1792년에 공화국 이 선포되고 루이16세는 ‘루이 카페’라는 평민의 이름으로 1793년 1월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프랑스의 군주제가 종식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15년 권세 이후 몰락하면서 왕정은 복고되었고 1848년 2월 혁명까지 군주제는 지속됩니다. 1848년 2월 혁명으로 마침내 앙샹 레짐은 끝나는데, 오늘날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모태인 자유주의가 그 모습을 분명히 드러낸 게 바로 이 때부터입니다. 구체제가 무너졌다는 것은 신분질서와 토지의 지대에 바탕을 둔 귀족체제가 무너졌다는 것을 뜻하는데, 그 때까지 구체제에 맞섰던 시민계급은 무산자계급과 유산자계급으로 나뉘어 전자는 사회주의(좌)를, 후자는 자유주의(우)를 지향하게 되었다고 거칠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1848년에 나온 것도 우연만은 아니었고 시대의 반영물이었지요.

   좌우는 시대의 변화에 조응합니다. 구체제 아래 ‘좌’였던 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와 함께 구체제를 무너뜨렸지만 그러자마자 곧 ‘우’에 자리를 잡습니다. 과거에 스스로 ‘좌’라고 했던 사람도 일단 권력을 장악 玖 ‘우’에 자리 잡으려는 경향이 강한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각 개인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재산을 축적하면 점차 우경화하는 경향을 가집니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이 철칙은 아닙니다만.

   대개 사람은 사회 환경의 변화에 조응하면서 스스로 바뀝니다. 천천히 바뀌기 때문에 바뀐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박정희 정권의 사형수였던 이철씨가 오늘 철도공사 사장이 되어 신자유주의 전선에 서서 KTX 여승무원들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과연 청년 학생 시절의 그는 자신의 오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인데, 어쩌면 그것이 오늘 우리 사회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불성설이라는 점에서.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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