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1절 골프 파동'의 와중에서 이른바 '배부른 진보'에 대한 비판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사실 이건 아주 해묵은 논쟁이다.
계급적으로 상류층에 속하면서 상류층의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사람이 진보적 가치를 역설하는 게 위선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정답은 없는 논쟁이다. '배부른 진보'에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긍정론을 살펴보자.
첫째, 상류층 사람이 진보적 가치를 역설하는 건 하층계급에 큰 힘이 된다. 상류층 사람이 점하고 있는 위치의 파워 덕분이다.
둘째, 갈등의 양극화를 막는 데에 도움이 된다. 모든 상층계급은 보수, 모든 하층계급은 진보라면 갈등이 살벌해지겠지만, 상층에도 진보가 있고 하층에도 보수가 있다는 건 양쪽의 충돌 예방에 도움이 된다.
셋째, 상류층에 속하면서도 하층계급을 생각하는 마음이 고맙다. 그걸 위선으로 보겠다면, 이 세상에 위선 아닌 게 뭐가 있겠는가.
다음은 부정론이다.
첫째, 권력·금력까지 누리면서 양심과 정의의 수호자로 평가받는 이른바 '상징자본'까지 갖겠다는 건 지나치다. 빈털터리라도 세상을 향해 큰소리 치면서 사는 맛이라는 게 있는 법인데, 그런 '도덕적 우월감'까지 상류층이 누린다는 건 부당하다.
둘째, '배부른 진보'의 진보 프로그램은 상징적인 제스추어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하층계급의 절박함을 모르기 때문에 진정성이 결여돼 있으며, 진보를 보다 많은 권력·금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뜻이다.
셋째, '배부른 진보'의 진보 프로그램은 말로만 강경한 속성이 있어 실천보다는 당위의 역설로 그칠 가능성이 높고, 오히려 해낼 수 있는 실천마저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자, 사정이 이와 같은데 무조건 '배부른 진보'를 탓할 수만 있겠는가? 각 인물별, 사안별로 구체적인 평가를 내리는 게 공정한 대응일 것 같다. 이론상으론 그렇다. 문제는 한국사회·한국인의 특수성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정치혐오'를 넘어서 '정치저주'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정치를 비롯한 공적 영역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높다. 이런 상황에선 '배부른 진보'의 이론적 정당성이 인정받기 어렵다.
그건 마치 '국민정서'니 '위화감'이니 하는 단어들이 누구를 평가할 때에 이론적으론 부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현실에선 정당하게 여겨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2005년 11월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가 여론조사기관 TNS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반인 응답자의 82.1%가 사회 지도층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걸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배부른 진보'가 일부러 배가 고픈 척 할 필요까진 없지만, 자신의 포만감을 과시하는 건 금물이다. 그리고 공적 영역을 향해서만 진보를 외쳐댈 게 아니라 자신의 사적 영역과 행태도 진보적 가치의 지배를 받게 해야 한다.
사회를 향해선 기부문화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외치면서 자기 봉급은 고스란히 저축하는 고위 공직자들을 그 누구도 알뜰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공적 영역에 대한 극도의 불신이 해소되는 날까진 과도기적 처방 차원에서라도 '배부른 진보'들은 자신의 욕망을 통제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