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사회는 합계출산율 1.16명(2004)이다 하면서 ‘저출산’이라고 호들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혹자들은 “온 사회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출산 노이로제’에 걸렸다”고도 한다. 때문에 정부는 각종 기구를 만들고 저출산 대책을 쏟아놓고 있다. 대체로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경제적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최근의 정부의 호들갑을 보고 있자니 과거의 출산억제정책과 ‘닮은 꼴’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비껴갈 수가 없다. 국가의 번영을 위해 ‘국가에 의한 인구통제’를 해온 것이나 지금의 저출산 극복을 위한 ‘출산장려정책’이나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저출산은 정말 문제일까? 출산의 문제가 여성만의 문제일까?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는 지난해 정당·국회·노동·학계 등 7명의 인사들로 ‘여성정치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다양한 여성정책을 논의해 오던 중 주요 이슈였던 저출산 대책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해보자는 의견을 모았다. 저출산과 가족위기의 담론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진보적 대응방안 마련을 위한 것이었다. 이 논의들이 모여 <저출산 위기 다시 보기>란 한 권의 보고서로 발간됐다.<사진>
“여성은 임신·출산의 자기 결정권이 없다”
이 보고서는 ‘임신·출산에 관한 여성의 재생산권’과 ‘성평등한 노동권 토대 형성’ 두 가지 주제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 논의들을 정리해서 ‘임신·출산, 여성의 의무에서 권리로’를 쓴 김원정 민주노동당 여성정책연구원은 “방향 전환을 시작하는 인구정책, 출산장려정책을 추진하기에 앞서 여성인권, 즉 여성이 한 명의 인간 주체로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가 보장되고 있는지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재생산 과정에서 여성의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목표로 모든 분야의 정책들이 재구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원정 연구원이 가지는 문제의식은 과거의 인구억제정책이나 최근의 출산장려정책이나 적절한 노동력과 생산성의 문제, 경제발전과 민족국가의 장래 등의 맥락에서 주요 논리는 닮아 있다는 것이다. 국가주도의 가족계획이 시작된 이래 주요정책대상은 여성이었으나 그런 여성은 ‘자기 결정권’이 없었다. 즉 임신과 출산의 선책을 자신의 권리로 향유하지 못하고 대를 잇기 위해 출산과 낙태(임신중지)를 반복하고 임신한 비혼 여성은 낙태를 강요당해 왔으며, 장애여성은 건강한 임신과 출산을 보장받지 못해 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원정 연구원은 ‘여성의 재생산권’ 확장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재생산권이란 ‘모든 사람들이 만족스럽고 건강한 성생활을 할 수 있고 자녀를 출산할 능력과 자녀를 가질지 여부, 언제, 몇명이나 가질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임신·출산 등 ‘여성의 재생산권’ 확장돼야”
김 연구원은 “여성의 재생산을 둘러싼 사회·경제·정치적 불평등 개선은 ‘모성보호’ 또는 ‘모자보건’이라는 협소한 틀로 이해되거나 아직까지 충분히 의제화 되지 못했다”며 “여성의 재생산권이라는 개념에 주목했던 이유는 최근 우리사회 저출산 위기 해법 찾기가 여성의 권리를 확장시키기 위한 목적의식을 결여한 채 진행되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연구원이 제시하는 재생산권에 기초한 주요정책 방향은 다음과 같다.
우선 평등한 성생활의 권리와 성적 자기결정권이 보장돼야 하며 임신·출산·낙태에 대한 자기 결정·통제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국가가 여성과 커플에게 임신·출산의 시기, 자녀수를 강요하거나 임신·출산·피임·낙태의 선택을 제한해서는 안 되며 특정한 집단·계층의 특정한 선택이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을 초래해선 안 된다는 것. 여기에는 남아선호사상 등 가부장적 가족 이데올로기를 해소하고 혼인 여부에 따라 임신·출산 과정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양육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이 평등하고 충분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임신·출산 과정의 건강권이 보장돼야 한다며, 출산 과정의 의료서비스 제공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고 여성의 경험과 요구를 우선적으로 재조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원정 연구원은 “그동안 인구 축소가 경제성장에 미칠 영향, 공공예산 지출에 미칠 영향,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 등에 쏠려 있었다”며 “그러나 재생산권의 문제의식을 기초로 삼는다면 ‘저출산 대책’은 근본적인 의제설정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밝혔다. 그것은 임신·출산, 피임, 낙태 등에서 여성을 1차적 결정권자로 하며 그러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여건 조성을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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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노동뉴스 | | 노동시장과 가정 내 성차별 구조
저출산 대책에 있어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성평등 한 노동시장이 조성되지 않는 한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정치네트워크의 논의를 정리한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안현미씨(박사 수료)는 성평등한 노동시장 토대 마련을 위한 ‘성평등한 노동시간 분배와 임금격차 축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현미씨는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 이전과 진입 이후 그리고 경제활동을 종결한 이후까지 여성의 불평등과 출산의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는 여성의 재생산권과 노동권 확립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여성은 노동시장 내에서도 가족 내에서도 불평등한 성차별 구조 속에 놓여 있다. 노동시장 내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은 서구에 비해 여전히 M자형을 유지하고 있고 여성노동자의 70%는 비정규직이다. 여성의 비정규직화는 불안정 노동뿐만 아니라 저임의 여성화와도 연결된다. 여성의 저임금 비율은 남성의 4배에 달하는 실정이다.
가족내에서도 여성은 불평등한 성별분업에 시달리고 있다. 안현미씨는 “성평등적 보살핌노동의 사회화와 가정내 불평등한 성별분업 구조는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라고 꼬집었다. 실제 2004년 한국여성개발원 ‘전국가족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의 가사와 양육의 편중은 심각하다.<표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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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 |
자녀돌봄 |
| 아내 |
남편 |
아내 |
남편 |
부부공동 |
| 취업 |
93.1% |
3.1% |
73.9% |
3.7% |
23.1% |
| 비취업 |
98.0% |
0.9% |
82.1% |
1.3% |
16.5% | |
| 자료 : 한국여성개발원, ‘전국가족조사’ 결과보고서 자료, 2004 | | | 또한 직장 내에서 노동하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차별대우는 여전히 시정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평등의 전화> 상담통계(2002~2005)를 보면 고용상의 차별 신고건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특히 임신출산 불이익 및 해고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표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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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차별 |
합계 |
| 모집채용 |
임금 |
교육배치승진 |
퇴직정년해고 |
임신출산불이익 |
임신출산해고 |
기타 |
| 3 (1.6) |
10 (5.5) |
25 (13.7) |
22 (12.0) |
39 (21.3) |
68 (37.2) |
16 (8.7) |
183 (100.0) | |
| 자료 : <평등의 전화> 상담내용, 2002~2005 | | | “노동시간 성평등 분배와 임금격차 축소가 핵심”
때문에 성평등한 노동시장과 가정을 위한 정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안현미씨는 성평등한 노동시간 분배와 임금격차 축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현미씨는 “여성은 엄마, 며느리, 아내라는 역할을 위한 노동시간 분배는 ‘일’ 시간과 연장선상에서 중요한 시간할당의 요소가 되지만, 남성은 동일 노동시간과 동일 역할이 있음에도 가사와 양육 등의 보살핌노동 시간 분배는 부차적인 것으로 기획된다”며 “남녀간 불평등한 노동시간 분배는 여성의 일과 가정 양립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노동에 전념할 수 없거나 포기하도록 억압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이같이 불평등한 노동시간 배분이 이뤄지는 데는 주소득부양자 중심의 경제구조, 가부장적 기업문화, 법적노동시간의 낮은 규제 등이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때문에 안현미씨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시민의 참여를 통한 남성중심적 기업문화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자체를 어렵게 하며 가정 내 불평등(가사노동, 육아 등)이 개선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한 임금격차의 축소의 의미도 강조했다. 안현미씨는 “육아휴직의 경우 남녀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용자는 여성 10%, 남성 1.5%에 불과한데 이는 여성이 대부분 낮은 소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여성이 전담하게 되는 것”이라며 “노동시장과 가사노동의 불평등 분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독립을 가질 수 있는 임금수준과 성별임금의 격차를 축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현미씨는 “‘저출산은 위기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라며 “저출산이 발생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차별이 축적된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때문에 그는 “최근 여성의 출산장려정책은 국가의 경제악화를 막는 또는 회생시키는 핵심적 주체로서 여성의 성적 권리를 ‘주체적 종속화’ 시키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먹이(?)를 제공함으로써 해결하고 있다”며 “여성의 성에 대한 주체적 권리로서 재생산성과 노동권을 바탕으로 한 정치권, 사회권까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