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계곡 1
차미언 허시 지음, 크리스토퍼 크럼프 그림, 김시현 옮김 / 평사리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계곡의 신(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를 일컬어 현빈이라 한다. 현빈의 문이 하늘과 땅의 뿌리이며, 이어지고 이어져 영원히 있으니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다.” <도덕경>

계곡은 구멍을 숨기고 있으며, 모든 물이 흘러들고 흘러나간다는 점에서 만물을 낳되 영원히 낳는(마르지 않는) 대지모신의 상징이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중에서…

주인공이 상속 받은 랜즈버리 홀은 인간사회와 경계를 두른 ‘곳’이다. 선택 받은 인간만이 ‘그곳’에 발을 디디고,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는 ‘그곳’은 알 수 없는 존재와 의미로 가득하다. 너무나 비밀스럽고, 은밀한 ‘그곳’. 깊은 비밀이 담겨 있는 ‘그곳’은 바로 생명이었다. 형형색색의 꽃과 식물들, 생명체들.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그곳’은 풍요롭고도 평화롭다. 

‘그곳’은 마치 현실을 부정하듯이 세상의 중심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우리는 ‘그곳’에 초대되고, ‘그곳’을 둘러본다. 소설은 ‘그곳’의 자연을 보고, 듣고, 먹고, 맡고, 만진다. 생명의 호흡이 원래 그러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듯이 우리의 오감을 자극한다.

이 소설은 환상과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숲속의 정령 코다마로 비유될 수 있는 각종 움프들이 묘한 신비함을 준다. 이야기는 서서히 창을 열어 호기심의 동굴로 독자를 잡아당기며 편안한 생태 탐험으로 이어진다.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주변을 감싸는 묘한 기분은 뒷일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 준다. 결말은 우리의 현실에 맞닿아 있기에 우울하다.

그 우울함은 우리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상실감에 기인한다. 아마존의 숨결에 지구는 생명을 얻고 생명을 뿌리지만, 그러한 자연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소중한 것은 그 소중한 이름이 사라진 후에 드러나듯이, 우리의 깨달음은 언제나 후회를 동반한다. 그리고 환상이 아닌 현실 속의 우리에게 곧 절실함으로 다가올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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