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끼사스 > 김애란을 읽는 어떤 방법 - 로즈마리님께②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안녕하세요. 일전에 서신을 드리고 여드레만에 뵙습니다. 그 사이 몇권의 책에 대해 예의 고졸한 문장으로 올리신 서평 잘 읽었습니다. 님이 성실하고 믿음을 주는 평론가임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저는 말씀드린 대로 <달려라, 아비> 속 아홉 작품을 발표 순-아마 썼던 순서와 거의 같겠죠-으로 읽어보면서 올해 우리 나이로 스물일곱이 된 소설가 김애란의 미덕을 발견하고자 애썼습니다. 그리고 예상하시다시피 이 글은 그에 관한 제 어설픈 소고(小考)입니다. 첨언하면 책을 다시 읽으며 김애란에 대한 막연했던 호감이 좀더 꼴을 갖추게 된 한편으로, 님의 서평 속 단호한 혹평의 연유도 조금은 이해가 갔습니다. 왜 하루키의 모방이라고, 어줍잖은 기성 흉내내기라고 하셨는지를 말입니다. 하여 제 호감과 로즈마리님의 비호감은 꽤 닮은꼴일 수도 있지 않을까, 넘겨 짚어보기도 합니다.

지난 서신 말미에 제가 읽을 작품의 순서를 정했었죠. 다시 한번 써보겠습니다.

①노크하지 않는 집(창작과비평 2003년 봄호) ②나는 편의점에 간다(문학과사회 2003년 가을호) ③종이 물고기(창작과비평 2004년 봄호) ④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현대문학 2004년 5월호) ⑤영원한 화자(실천문학 2004년 가을호) ⑥달려라, 아비(한국문학 2004년 겨울호) ⑦사랑의 인사(문학사상 2005년 3월호) ⑧스카이 콩콩(문예중앙 2005년 여름호) ⑨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2005년 가을호)

되풀이하면 이를 토대로 님께서 그나마 낫다고 꼽았던 작품은 ⑥⑧번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저는 '다시 읽은 김애란' 중 최고의 작품으로 ⑧⑨번을 들고 싶습니다. 님과는 ⑧번에 대한 호평이 겹치는 셈인데 말씀하신대로 "경험의 현실성이 조금 묻어나"기 때문은 아니고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시선이 돋보"이는 까닭은 조금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제 호감이 작품번호 끝자락의 두 개에 특별히 머문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님께서 서평 밑 댓글에서 언급하신 "아직 신인이니까요"라는 명제와 결합해 볼 때 김애란은 갈수록 호감을 주는 작품을 내놓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기대 섞인 추이. 실제 작품번호(x)-개인적 호감도(y) 그래프는 대체로 y가 x의 거듭제곱에 비례하는 우상향의 형태를 띠었습니다….

순서대로 얘기해 보겠습니다. ①~④번 작품을 읽으며 김애란이 국문과나 문예창작과 등 소설가에게 '정통적'인 학과가 아닌 한예종 연극원 극작과에서 수학했다는 점을 자연스레 떠올렸습니다. 문예적 글쓰기와 관련된 전공을 한 게 아니라서 조심스럽지만 극작과는 아마도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쓰는 교육이 주종일테고 그것은 '보여주기'를 염두에 둔 작법과 연관할 것입니다. 작가의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인 ①번은 각자의 방과 공동의 생활공간에 거주하는 하숙생들의 생활을 꼼꼼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립니다. 시종 긴장을 잃지 않는 전개와 후반부의 환상을 도입한 반전이 어우러져 현대인의 고독과 관음증적 소통욕구라는, 좀 진부한 주제의식을 알레고리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애란을 즐겁게 읽으려면 알레고리를 분석하는 대신 내러티브를 극화해 보는게 좋을 듯 싶습니다. 자신만의 공간에 들어앉아서는 공간 너머 타인의 작은 기미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인공을 머릿속 스크린에 생동시키면 그녀처럼 옆방 이웃들의 정체가 몹시도 궁금해질 겁니다. ②③④번 역시 작가의 시각적 글쓰기 전략이 눈에 띄는 작품들이고, 극작과 학생이던 김애란이 소설을 처음 쓰며 품었던 지향을 짐작케 합니다. 개인적으로 네 작품 중 ③번이 발군이라고 생각합니다. 포스트잇의 비늘로 뒤덮인 옥탑방의 물고기. 미풍에 파르르 몸을 떨며 부드러우면서 거침없는 유영을 꿈꾸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소설읽는 자가 누릴 수 있는 지복(至福)일 것입니다….

⑤는 소설집 중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헤어진 연인을 다시 찾아가려고 탄 지하철에서의 에피소드를, '나는 ~(한) 사람이다'라는 자기 정의의 연쇄 사이에 끼운 형식을 취하고 있죠. 주인공은 '알기 전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알 수 없는 쓰다듬에 숨죽이'고, '묻기 전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를 때 가슴이 철렁'인다고 되뇌입니다. 실존과 관계 사이의 틈새, 채워지지 않는 결핍은 결국 인간의 숙명일까요. 자주 웃음을 빼물게 하는 다른 작품과 달리 비애가 한껏 스민, 문예적인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짠했던' 작품이지만 말씀대로 "새로울 게 없는 방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곧 마지막 서신 띄우겠습니다. 아직 안 주무시고 계신가 봐요.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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