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공사노조가 민영화 반대와 공공성 강화를 내세우며 3월 1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지난 2003년 일방적 민영화 추진에 반발, 파업에 돌입한 철도노조는 엄청난 희생속에 가까스로 민영화를 막아냈지만, 그 흐름을 끝내 막지는 못했다. 이후 철도청은 2005년 민영화 전 단계인 공사로 출범했고, 철도노동자들은 더욱 가혹한 처지에 몰려 다시 파업전선에 나섰다. 파업은 ‘밥그릇 투쟁’이 아니다. 머리에 띠두르고 철야농성 하면 월급올라가고 근무여건 좋아진다는 얘기는 그야말로 ‘전설 중의 전설’이 됐다. 파업은 생존권을 위한 최후의 싸움이며, 주동자는 파업했다고 잡혀가고 이제는 손해배상까지 청구하는, 그야말로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그런데도 파업한다. 그럼에도 이런 절박한 사실을 알려야 할 언론은 ‘국민의 발 타령’만 하염없이 늘어놓는다. 그보다는 이번 파업에 성실히 응해야 할 철도공사 사장이라는 사람이 낯익으면서도 낯설게 다가온다. 정치사형수에서 철도공사 사장된 이철 철도공사 시장 이철이라는 사람은 정치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
| ▲지난 85년 2.12 총선당시 이철 후보의 선거벽보. 이 한장의 사진으로 그는 국회의원에 당선, 화려한 정치를 시작했다. ©이철 후보 누리집(leechul.net) | 85년 2.12 총선, 광주민주화항쟁을 피로 물들이며 집권한 전두환 정권에 대한 첫 심판인 12대 총선에서 서울 성북구에 당시 36살로 신민당 후보로 출마한 이철은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다. 선거용 벽지에 붙어있는 흑백사진 속에 빛나는 ‘정치사형수 이철’.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판결’을 받은 이철이 옥중의 수의(囚衣)를 입고 있는 사진은 군부독재에 저항하던 성북구민의 심금을 울렸고, 이심전심 속에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당시 성북구 길음동 미아리 재래시장의 상인들은 지나가는 이철 후보 선거운동원들에게 꼭꼭 접은 천원, 오천원짜리를 쥐어줬고, 대학생들은 라면을 꿇여먹으며 자원봉사를 자청, 무명의 이철 후보는 돈도 안들이고(돈도 없지만) 선거를 치를 수 있었다. 신민당 돌풍으로 끝난 2.12 12대 총선은 그후 개헌, 직선제 투쟁으로 민주화를 이끌며, 87년 군부세력의 항복선언인 6.29를 이끌어내며 정치개혁의 기초를 다졌다. 이 과정에 시민과 노동자 등 전국민의 전폭적인 성원과 지지가 있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후 이철 의원은 3선으로 승승장구 하지만, 김대중 김영삼 양김정치를 반대하면서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고 낭인생활을 하면서 잠시 정치권에서 사라진다. 그가 다시 모습을 보인 것은 2002년 16대 대선에서 정몽준 후보편에 있다가 후보단일화 이후 노무현 진영에서, 정몽준 후보의 지지철회시에는 잽싸게 노무현 후보 지지선언을 이끌어내며 노 후보 당선에 일정한 공헌을 통해 정치권에 복귀했다. 이후 그는 2004년 4월 이제는 빛바랜 그 흑백사진을 다시 한번 꺼내 한나라당의 아성인 부산 북구로 가서 군부독재의 ‘시녀’ 노릇을 했다는 안기부 출신 정형근 의원과 맞붙는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서 한나라당 의원을 심판하겠다는 그의 야심도 결국 PK(부산경남) 지역주의에 가로막혔다. 선거 패배후 그는 예의 지역주의를 탓했지만, 지역주의를 탓하기에 앞서 ‘민주화의 투사’ 이미지만 강조한 그의 내용없음은 생각하지 않았다. 선거 패배 후 논공행상이랄까? 그는 자신의 이력과 아무 관련없는 철도공사 사장에 내정됐다. 내정되고 나서 그가 한 일이라고는 남북철도 복원, 철도로 ‘붉은 악마’ 응원단 수송 등 관료서는 생각지 못할 각종 다양한 이벤트를 벌여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철도공사가 당면한 가징 시급한 10조원에 이르는 누적적자 문제, 그리고 뽑을 때는 항공기 스튜어디스처럼 대우하겠다며 ‘철도의 꽃’으로 여성을 성상품화 한 KTX 여승무원들을 편법으로 비정규직화 하면서 기껏 수백 여명의 여승무원 임금을 깍은 것 밖에 없었다. 협상이 결렬되고 파업이 시작되자 정치인다운 협상노력은 온데간데 없고, TV 화면에 비춘 그는 과거 ‘민주화 투사’다운 강경한 모습으로 파업참가자들에 대한 직위해제와 검거령을 강조하는데 급급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어느 공장 어느 현장에 가더라도 파업이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목숨을 걸고 하는 일에 ‘민주화 투사 경력’으로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이철 사장이 노동자를 탄압하는데 선봉에 서서 무서운 얼굴로 노동자에게 복귀를 명령하고 있다. 이철 사장의 얼굴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자화상 군부독재에 신음하는 국민에게 민주화 투사라는 이미지 하나만으로 ‘동토의 왕국’에 꽃을 피운 정치인이 이제 20여 년이 지난 지금 바로 그 민주화의 적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지난 96년 1월 ‘노동법 날치기’로 김영삼과 신한국당 대표인 이회창은 몰락의 수순으로 돌아섰다. 그 노동법 날치기를 온몸으로 막으면서 노동자의 생존권을 운운했던 그들이 이제는 앞장서서 노동자를 탄압하며 신자유주의 전도사로 움직이고 있다. 물론 이철 사장도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다. 공사 사장이 무슨 힘이 있겠느냐고? 맞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태의 핵심은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있는 것이다. 민주화의 열망과 성과를 최소한이라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그들이 이제 동일노동 동일시간 동일임금이 되야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몰아가면서 생존권을 깍아먹고 있다. 파업 마다 흔히 나오는 시나리오가 있다. ‘서민의 발’이라는 타령부터 시작해 ‘철도공사 직원이면 한달 월급이 얼마냐’는 비교부터 시작해 언론마저 파업을 불법행위로 몰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이 왜 파업을 하는가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운행율과 복귀율, 파업 보도마저 경마방송화 되고 있다. 철도가 민영화되면 공공성이 사라지고, 무엇보다 노태우가 시작한 고속철도 적자비용은 언급 안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에서 깍아내리는 것은 아예 언급도 없다. 기득권화된 과거 민주화 세력, 한때 군부독재권력의 시녀였던 방송언론, 그리고 한발 물러서 미소짓고 있는 한나라당과 재벌들이 이제 함께 움직이고 있다. 이제 노동자들의 파업은 더 이상 없다. 싸워도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조 간부와 그 가족의 삶을 파괴할 뿐이다. 이번 파업도 이미 2천 여명의 희생자들을 예고하고 있고, 현실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이미 850만명이 동일노동을 하면서 동일임금을 못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시키는데는 과거 민주화의 투사였다는 그들이 한나라당 보다 먼저 거들고 나섰다. 철도노동자들에게 대학살을 자행하는 이철 사장의 얼굴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몰아가는 민주화의 주역을 자처하는 세력 앞에서, 이제 시민과 노동자 농민들은 새로운 각오로 판을 다시 짜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