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지난달 중순 서울 ㅈ고교 졸업식장. 이 학교를 졸업한 김아무개(19)군은 하마터면 졸업장을 못 받을 뻔 했다. 지난해 학교에 냈어야 할 세 분기치 수업료 등 120여만원을 못 낸 때문이다. 학교 쪽은 졸업식 당일 김군의 졸업장을 주지 않고 행정실에 남겨뒀다. 미납된 수업료의 ‘볼모’였다. 학교 쪽은 김군의 아버지가 졸업식 직전에 언제까지 내겠다는 각서를 쓰고 나서야 비로서 졸업장을 내줬다. 김군의 아버지는 “갑작스런 부도로 생활이 어려워져 수업료를 못냈다”며 “어린 학생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수업료를 미납한 또다른 학생은 졸업식에 참석하긴 했지만 끝내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담임교사가 친구들의 이름을 한명씩 부르며 졸업장을 나눠줄 때 터지는 울음을 참아야 했다. 이 학생의 아버지는 “기뻐해야 할 졸업식 날에 아이가 우느라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다”고 했다.

1일 <한겨레> 취재진이 서울시내 26개 고교를 확인해본 결과, 수업료 미납시 졸업장을 주지 않는 학교는 11곳, 이 가운데 8곳이 사립고였다. 학교 별로는 2~10명이 졸업장 없이 졸업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서울시교육청 공립고교 가운데 2005년 2월말 현재 전체 학생의 1.64%에 이르는 1794명이 수업료를 내지 못했다. 수업료 체납으로 학창생활 내내 주눅들었던 학생들은 졸업식날 또한번 ‘아픈 상처’를 입는 셈이다.

이원희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는 “현재 규칙상 학생이 수업료를 안낼 때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처가 출석 정지인데 거의 사문화돼 실제로 쓰이진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학교에서 졸업장을 안주는 방법을 쓰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국 시·도교육청이 아예 2개월 이상 수업료를 체납하면 해당 학생을 출석정지케하는 수업료 및 입학금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거나 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2일 ‘학교 수업료 및 입학금에 관한 조례안’을 제정한 경기도 교육청의 홈페이지에는 수업료 미납 학생을 학교에 오지말라는 발상은 학생들의 교육권을 박탈하는 ‘비교육적 처사’라며 조례개정을 촉구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이라고 밝힌 네티즌은 “고교 시절에 교육비를 밀린 적이 있습니다. 수업료 통지서 나올 때 만큼 학교 다니기가 무서웠던 적도 없었습니다. 부모님께 보여드리면 두 분다 미안하시단 말을 할 때 마다, 담임 선생님께 수업료 문제로 불려갈 때 마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여러분은 생각해보셨나요”라고 물었다.

사태가 확산되자 경기도 교육청은 ‘최소한의 제재규정’이며 ‘일부 고의적으로 수업료를 내지 않는 학생도 있어 불가피한 조처’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네티즌 최창곤씨는 “그러나 고의적으로 수업료를 내지 않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있다고 해도 그 수가 얼마나 되냐”고 반문했고 유완재씨는 “교육감은 교육자이지 회사 경영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박범이 참교육학부모회 교육자치위원장은 “대학생이라면 아르바이트라도 할텐데 고등학생은 그럴 수도 없지 않느냐”며 “수업료 때문에 졸업장을 안주는거나 학교를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예민한 시기의 청소년들에겐 너무나 비교육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수원/홍용덕,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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