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에 기반한 현대 산업문명에 대한 냉철한 비판서다. 미국의 작가이자 문명비평가인 저자는 세계적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통합’(국내에는 지난해 ‘통섭’이란 제목으로 출간)에 대한 비판적 서평 형식을 통해 현대 과학기술의 맹점을 파헤치고, 문명비판에까지 이른다.

저자가 ‘통섭’을 선택한 것은 윌슨이 우상파괴적 일을 하는 척하지만 실은 대중적인 과학정통주의를 대변한다고 보기 때문. 또 그가 ‘아는 것’은 물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가 산업주의 가치·심리의 전형이라는 것. 저자는 윌슨이 유전생물학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모든 인간·사회 현상을 해명코자 한다고 본다. 이는 과학자가 과학의 영역을 뛰어넘어 인간과 세계를 해석하려는 과학주의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드러낸다는 지적. 윌슨이 자연과학·사회과학·인문학 등 지식의 대통합을 외치지만 이는 통합이 아니라 자연과학 하나가 장악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저자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는 시구절을 인용, 인간의 삶을 축소·환원이 아니라 확장시키자고 말한다. 즉 현대과학은 모래알에서 세계를 보지 못하고 그저 쪼개고 쪼개 최소단위로 환원하듯 삶도 기계적·예측가능한 것으로 다뤄 축소·환원시킨다는 것. 이제 과학기술과 한탕주의 기업정신의 결합으로 인한 폐해, 합법적 야만주의인 ‘경제 제일주의’에 의한 인간성과 생태계의 파괴 등을 극복하자는 주장이다. 이는 우리가 과학기술이 아니라 일하고 살아가는 생태계와 인간 공동체의 건강성을 우리 경제의 척도로 삼는 데서 시작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한겨레] 아깝다 이책

학창시절 행운의 편지 한 통 안 받아본 사람이 있을까?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숫자의 사람들에게 그와 동일한 편지를 보내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을 애써 무시하면서도 한동안 가슴 졸였던 기억이 난다. 편지 속에 등장하는 협박의 대상이 나라면 좀 대범하게 넘길 수도 있었을 터인데,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일 경우에는 고민이 더 커지곤 했다.

 그런데 이 책 <대중의 미망과 광기>를 진행하면서 행운의 편지가 비단 나에게만 고민을 안겨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0세기 초반 서양에서도 주기적으로 등장했다고 하니, 유서가 꽤 깊은 인류의 문화유산인 듯하다.

평소에는 합리적이고 현명한 개인이 집단행동에 가담하면서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는 사례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되어 왔다. 한 나라의 국민 대부분이, 심지어 한 대륙 전체가 광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충동적인 행동을 했던 일도 적지 않다. 1841년 초판이 발간된 찰스 맥케이의 <대중의 미망과 광기>는 이런 군중의 광기에 관한 책 가운데 대표적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언론인으로서 계몽주의자이며 이성의 신봉자였던 저자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집단 광기’ 현상을 다루고 그 원인을 분석했다.

많은 지식인을 망친 연금술, 거품회사에 대한 영국인들의 미친 듯한 투기,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찮은 일을 명예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살인을 합법화하던 결투 관습,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유령의 집에 이르기까지 그 폭과 범위가 매우 넓다.

흔히 고전은 ‘인구에 회자되지만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별로 없는 책’이라고 한다. 금융 투기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나 영국의 남해 버블 회사,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에 대해 언급하곤 한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들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 책에는 한 가지 약점이 있다. 출간된 시점이 19세기 중반이다 보니 대중이 미망에 사로잡히고 광기에 빠진 근현대 사례와 분석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나는 앞으로 이러한 약점을 보충해 좋은 짝을 이룰 수 있는 또 한 권의 책을 출간하겠다는 출판쟁이로서의 욕심을 갖고 있다.

인터넷매체가 눈부시게 발달한 요즘도 심심찮게 대중의 파워를 목도하곤 한다. 수천 마리의 모기떼가 갑자기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느리지만 엄청난 결과를 낳는 거대한 대중의 움직임. 사람은 혼자 있을 때는 분별력 있고 이성적이지만, 군중 속에 있으면 멍청이가 된다는 실러의 말이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에피소드 하나. 나는 작년 가을께부터 신문을 거의 보지 않는다. 사무실에서는 물론이고, 집에서 받아보던 신문마저 구독을 중단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는 것에 환호하고 대통령 탄핵에 눈물 흘린 적도 있지만, 어느 순간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세상 일에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절망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눈 막고 귀 막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 하지만 그 소용돌이 속에서 한발 물러나고 싶었다. 어쩌면 집단의 광기에서 벗어나려 또 다른 미망에 사로잡힌 것인지도 모른다. 이옥선/ 창해출판사 편집부장

 

 

 

 

 

 

권력 앞에선 똥이라도 먹었다

“속임수를 꺼리지 말라 반드시 전임자를 부정하라
포상은 퍼주지 말고 질질 끌어라 대신 통크게 포용할지어다”
조직생활 생존기술 한가득 권력 관심 없더라도 중국 고사 읽는 맛

“권력술이란 곧 처세술이다. 군주가 신하와 백성을 지배하고 경영하는 임기응변의 기술이며, 소위 말하는 최고권력을 획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곽말약)

정치권뿐 아니라 모든 사회조직은 정치적이다. 윗사람, 아랫사람, 동료 등이 하나의 권력장으로 연결돼 상호작용에 의해 움직인다. 사회조직에서 권력술은 최소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이며 최대한 권력을 획득하여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술이다.

<권력의 규칙>(한길사 펴냄)은 중국 고대 정계에서 추출해낸 권력의 쟁취, 관리, 안정 그리고 상실에 관한 규칙이다. 중국은 수천년에 걸쳐 수많은 왕조가 명멸하고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권력장에서 부침했다. 표본집단이 많은 까닭에 추출해 낸 규칙들은 상세할 수밖에 없어 목차가 길고 1, 2권 합해 950쪽이다.

기원전 494년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 왕 부차에게 잡혔다. 구천은 노예의 옷을 입고 유람가는 부차의 말 고삐를 잡았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아첨과 애교 등 온갖 방법으로 부차의 비위를 맞췄다. 한번은 부차가 병으로 눕자 병문안을 갔다. 마침 부차가 설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똥을 보면 병의 경중을 가릴 줄 안다면서 똥통 덮개를 열어 똥 한 움큼을 입에 넣고 야금야금 맛을 보았다. 그렇게 신임을 얻은 구천은 석방되어 월나라로 돌아갔다. 10년을 절치부심한 그는 힘을 얻어 오나라를 공격해 해원을 했다.

여기에서 뽑아낸 규칙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속임수를 꺼리지 말라’다. 이에 더해 △바보와 약자를 이용하라 △핵심 부위를 공격하라 △대가를 아끼지 말라 △미인계를 이용하라는 규칙을 전한다. 핵심 부위를 공격한 예로 당송 팔대가로 꼽히는 한유(한퇴지)를 들어, 정식관직에 오를 수 있는 이부의 시험에 세번 낙방한 끝에 경조윤 이실한테 낯간지런 청탁편지를 넣어 벼슬길을 뚫은 일화를 소개한다.

중국 고대 정치사에서 추출


역사상 가장 여색을 좋아했던 당 현종이 집권 초에는 궁녀를 풀어주고 승려들을 해산했으며 사치품을 불태운 사실을 아는가? 태평공주, 조모 무측천으로 인한 원성을 자신의 선정으로 치환하기 위해서였다. 역사상 중대한 영향을 끼쳤던 누명사건이나 오심판결들은 최고 권력자의 비위를 건드린 경우가 많아서 이것들은 후임자의 손에 넘어가면 중요한 권력 밑천이 된다. 뒤집기만 하면 후임자의 위상과 명예가 갑자기 욱일승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권력을 굳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임자를 부정하라’를 규칙을 도출한다. 이밖에 △위계질서를 엄하게 하라 △공덕을 선전하라 △속마음을 드러내지 말라는 규칙이 있다. 그러나 신비감과 외경심을 주기 위한 속마음 감추기는 뛰어난 군주한테는 신하를 지배하는 수단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권력을 잃는 길이 된다.

강력한 권력자는 권력의 유지를 위해 상벌의 두 수단을 구사한다. 상은 독려하고 유도하고, 벌은 두려움에 떨게 한다. 상은 주도권을 신하한테 주고 벌은 주도권을 군주의 수중에 붙들어 둔다.

▲ 권력을 위해서라면 핏줄도 아랑곳않은 무측천. 그는 당 고종의 후궁서열 3위인 소의였을 때 자신이 낳은 딸을 죽여 황후에 올랐다. 고종 만년에는 퇴출을 두려워해 태자였던 두 아들을 살해했고, 제위에 오른 두 아들을 끌어내린 뒤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대권독점 15년. 사진 한길사 제공
포상은 관직과 봉록으로 지배자의 여의봉이다. “항우는 남이 큰 공을 세워 마땅히 벼슬과 작위를 상으로 내려야 할 때 포상의 인장을 손바닥에서 굴리기만 하면서 상 주기를 아까워합니다.” 유방한테 투항해온 한신이 항우를 평한 말이다. 이에 비해 유방은 한신을 대장군에 발탁하고 극진한 예를 갖췄다. 하지만 포상은 한번에 퍼주지 말고 질질 끌어야 한다. 관직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공을 세우려는 동력을 갖는 까닭이다. 또 관직을 줄 때는 기대치에 못 미치게 줘야 한다. 높은 자리를 얻으면 진취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내려는 의지에 녹이 슨다.

말 몇마디 눈물 몇방울의 힘

친절하고 자상한 말 몇 마디, 감동어린 눈물 몇 방울 등은 돈 안드는 무형의 포상. 그 효과는 고위 관직이나 고액 봉급을 능가한다. 연회에서 술에 취해 애첩을 희롱한 부하를 감싸주었고 그 부하는 진나라와의 전쟁 때 다섯 번이나 적진으로 돌진해 적장을 사로잡아오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초장왕, 부하의 몸에 난 종기의 피고름을 입에 대고 빨아냄으로써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었던 전국시대의 유명한 군사가 오기의 예가 여기에 해당한다.

상벌은 비상한 경우일 따름. 일상적으로는 신하(부하)들을 자신을 중심으로 응집시키고 이탈을 방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조조가 북방의 군벌 원소와 맞붙었을 때 병력, 군량에서 완전히 열세였다. 조조의 부장들과, 후방의 대신들은 원소한테 편지를 띄워 조조가 패하기만 하면 귀순할 준비를 했다. 반년 뒤 전세가 역전돼 원소를 물리쳤는데, 원소의 군영에서 노획해온 문서에서 부하들의 편지가 발견됐다. 조조는 그것을 보지 않고 불태웠다.

과오는 묵히지 말고 바로잡아야

신하를 다룸에 통 크게 포용하라는 규칙이다. △사람을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 △신하의 힘이 과도하지 않도록 앞에서 띄워주고 뒤에서 깎아내려라 △파벌간 균형을 잡으라는 것도 권고사항.

일정한 직위에서 살아남으려면 공격 빌미를 없애면 되지 않겠는가. 드러나지 않으면 공격도 상처도 받지 않는다. 하여 △때를 알아 용기있게 물러날 줄 알아야 하고 △바람을 보며 노를 젓는 지혜가 필요하며 △작은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권불십년이라던가. 권력자가 더 이상 통치할 수 없을 때가 온다. 백성을 핍박하여 민심을 잃을 때, 사리에 어둡고 유약하여 통제력을 잃었을 때, 날마다 조금씩 권력을 침식당해 기반을 잃었을 때가 그러한 때다. 즉, 위는 아래로써 존재한다는 것. 권력자는 백성한테든 부하한테든 공명정대해야 하며, 과오는 묵히지 말고 즉시 바로잡아야 하고, 은혜와 위엄을 함께 동원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직사회에 속한 사람이면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권력 자체에 관심없는 사람은 몹시 지루할 테지만 읽고나면 인용된 풍부한 고사가 지루함의 반을 덜었음을 비로소 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