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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 '할로우맨'의 한 장면 | 폭풍우 치는 어느 추운 겨울밤, 영국의 한 시골여관에 수상쩍은 남자가 도착한다. 당시로서는 겨울에 혼자 여행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남자의 얼굴이 온통 붕대로 감겨 있는 건 더욱 기이하다.
음산한 분위기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1897년에 발표된 영국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대표작 ‘투명인간’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마시기만 하면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약물을 발명하여 시골 마을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이 소설은 1933년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이후에도 투명인간은 육체적 한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상상을 자극하며 인기 소재로 사용되곤 했다.
이처럼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투명인간에 대한 관심이 요즘 인터넷 속에서도 화제로 떠올랐다. 지난 1일 오후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투명망토’였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러시아의 한 대학교수가 투명망토를 발명하여 특허를 냈다는 외신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 뉴스의 주인공은 러시아 율라노브스크 주립대의 올레그 가돔스키 교수로서, 금의 나노 입자를 하나의 얇은 층으로 만들어 펼쳐 투명망토를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이 망토를 입을 경우 빛의 복사가 왜곡되어 마치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데,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나 사진정보는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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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도쿄대학의 스스무 다치 교수가 만든 투명 코트 | 사실 투명망토가 발명되었다는 소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첨단기술전시회인 ‘넥스트페스트’에 일본 과학자가 개발한 투명망토가 출품됐다. 도쿄대 다치 스스무 교수팀이 개발한 이 투명망토는 해리포터의 것처럼 감쪽같이 몸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상을 이용한 시각위장기술이었다.
즉, 스크린처럼 작용하는 역반사 물질 소재의 망토에 카메라가 잡은 뒷배경 영상이 정확히 제 위치에 투사됨으로써 마치 망토를 입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럼 이 같은 착시현상을 유발하지 않고 빛의 반사를 없애는 과학적 현상을 이용하여 투명망토를 만들 수는 없을까?
작년 초 코엑스에서 개최되었던 미국 과학체험관 엑스플로러토리움 한국전시회에서는 빛의 굴절과 반사를 이용하여 유리막대가 사라지게 하는 장치가 전시되었다. 유리로 된 막대와 렌즈를 어떤 액체가 담긴 수조 안에 넣으면 액체 속의 물체가 보이지 않게 되는 것.
그 막대는 파이렉스라는 유리로 만들었는데 수조 안에 담긴 액체와 파이렉스는 빛이 굴절되는 정도가 같다. 즉, 빛이 액체 안에서 나아가는 속도와 파이렉스 막대 안에서 나아가는 속도가 같으므로 빛이 굴절되거나 반사되지 않아 막대를 볼 수 없게 된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진짜 투명망토를 만들 수 있다. 공기 중에서 빛이 통과하는 속도와 같은 물질을 개발하면 굴절되거나 반사되지 않아 망토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망토가 만들어진다고 가정해도 자신의 몸까지 보이지 않게 할 수는 없다. 망토 자체만 없는 것처럼 느껴질 뿐 망토 안의 사람은 여전히 보이게 된다.
그런 점에서 투명인간이 지니는 과학적 허점도 빼놓을 수 없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공기처럼 투명해지면 눈의 수정체도 투명해지게 된다. 그러면 눈으로 들어온 빛은 망막에 상을 맺지 못하고 그대로 통과해 버려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투명인간은 본인 스스로도 다른 물체를 볼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투명인간을 가끔 꿈꾼다. 가면을 쓰는 것처럼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싶은 것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투명인간이 되었을 때 상상할 수 있는 모습은 긍정적인 면을 지닌 게 별로 없다. 남의 비밀 얘기를 엿듣는 상상, 백화점에 가서 맘에 드는 물건을 훔치는 상상, 공동 목욕탕에 몰래 들어가는 상상 등등…….
사회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을 숨길 수 있을 때 무책임해지고, 이기적이 되고, 공격성이 높아지며 법이나 규범도 지키지 않게 된다고 한다. 소설이나 영화 속의 투명인간이 모두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임수경 씨의 아들 사망기사에 악플(악의적인 댓글)을 달아 검찰에 소환되었던 이들의 대다수가 중년의 점잖은 층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그처럼 돌변한 것도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인터넷이란 익명성 탓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출처 : 사이언스타임즈 ⓒScience Time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