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은 전쟁의 참혹함을 독특한 방식으로 기억하는 소설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1943년, 스무 살의 나이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영미 연합군 800대의 폭격기가 2개월간 폭격을 가해 13만 명의 희생자가 생겼던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학살’ 독일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남았다. 드레스덴 폭격 이후 커트 보네거트는 2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소설을 쓸 수 있었다. 전쟁의 경험을 전통적인 소설의 기법, 즉 한 명의 서술자가 사건을 서술하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표현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드레스덴은 도시 전체가 건축 박물관처럼 보일 정도로 유서 깊은 도시였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영미 연합군은 소련 측에 폭격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다는 명목 하에 재래식 폭격기로 도시를 초토화시킨다. 드레스덴의 13만 명이라는 희생자 수는 히로시마 핵폭탄으로 인한 희생자보다도 많다. 이 어이없는 참변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보네거트는 드레스덴 참변을 기억하는 자신의 자세에 대해 성서를 인용한다. 소돔과 고모라가 파괴될 때 롯의 부인은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만다. 보네거트는 소금기둥이 되는 운명이라 할지라도, 파괴의 순간을 뒤돌아보고 기억하는 자세를 긍정하고 있다.

“이 소설에는 등장인물이 거의 없다. 극적인 갈등도 거의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약하고 거대한 힘 앞에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가장 중요한 효과 중 하나는 개성을 가지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여타 소설처럼, <제5도살장> 또한 꼴라주처럼 다채롭고 짤막하며 경쾌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이 에피소드들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보편적인 시간관을 따르지 않는다. 주인공이자 드레스덴 참변에서 살아남은 검안사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자유롭다. 그는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재로 자유롭게 시간여행을 할 줄 안다.

독자들은 빌리 필그림을 따라서 그의 현재와 과거, 미래까지 자유롭게 들여다본다. 빌리는 한참 전쟁 와중에 부인과 결혼하는 장면으로 시간여행을 가기도 하고, 별 다른 이유 없이 트랄파마도어 혹성으로 납치됐던 순간으로 떠나기도 한다. 빌리는 미래를 볼 줄 알기에 자신이 언제 죽을지, 가족이 언제 죽을지를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죽음은 놀랍지 않다. 또한 사람들의 죽음이 서술 될 때마다, “그렇게 가는 거지”(so it goes)라는 문장이 후렴구처럼 붙는다. 이 문장에는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그 부조리한 비극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 담겨있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이 같은 담담함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된 빌리의 부대원들이 밀어터지는 기차 안에서 죽어갈 때도 “그렇게 가는” 것이다.

빌리를 납치한 트랄파마도어 혹성 사람들은 지구와는 정 반대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트랄파마도어 혹성 사람들은 ‘로키 산맥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처럼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자유의지’ 같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영원하다. 그래서 그들은 책을 읽을 때 ‘수많은 경이로운 순간들’을 일시에 들여다보기를 선호한다. 빌리가 왜 자신을 납치했느냐고 묻자, 트랄파마도어 인은 왜 라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단지 이 순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빌리가 납치된 것일 뿐이라고 답한다.

트랄파마도어인의 세계관은 세계의 부조리함을 견디는 하나의 방법처럼 제시된다. 어차피 모든 것은 영원하므로,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순간만을 보면서 살자는 것. 물론 미국으로 돌아온 빌리는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취급 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5도살장>에는 역설적으로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추구하면서 희망을 찾는 문장들이 자주 등장한다.

꼴라주적 기법을 사용한 까닭에 이 소설에는 다양한 자료들이 자유롭게 삽입된다. ‘지구에는 평균 324,000명의 신생아가 태어나는데 평균 10,000이 굶주림이나 영양실조로 죽는다.’ 남북전쟁 이후 비겁죄로 유일하게 총살당한 군인에 대해 법무관은 ‘군 기강’을 위해서는 ‘사형’을 당연하게 부과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드레스덴 참변은 1760년, 프러시아 군에 의해서도 일어난 바 있다. 또한 전쟁이 끝난 후 어느 장교는 ‘군사적으로 꼭 필요하지는 않았던’ 참변이라고 기록하기도 한다. 이처럼 갑작스레 삽입되는 자료들은, 과거와 현재를 다층적이고 총체적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커트 보네거트는 이 소설을 구상할 당시 친구의 부인에게 혼이 났다. 그녀는 커트 보네거트가 전쟁에 참전했을 때는 ‘젖비린내 나는 애들’에 불과했다고 쏘아붙인다. 또한 전쟁을 영웅시하는, ‘프랭크 시나트라나 존 웨인처럼 매력있는’ 배우들이 역할을 맡는 전쟁영화들을 비판한다. 백여 년 간 쓸모 없이 피를 흘린 십자군 전쟁에서 소년 십자군까지 동원되었던 것처럼, 젊은이들은 전쟁을 영웅시하는 책과 영화를 보면서 자라나서 전쟁터에서 피를 흘렸다. (그래서 이 소설의 부제는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이다.) 이 부조리한 전쟁을 기억하는 자세는 평정심과 지혜다.

“하느님, 저에게 허락하소서. 내가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늘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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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

 

 

 

 

 

이 책은 과학과 기술의 역사, 과학기술의 흐름을 통해 세계사를 훑어보면서 ‘즐거운 과학기술’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이집트의 나일강이 범람한 뒤 토지를 재조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기하학이 생겨났다고 전해준다. 황하,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 인류문명도 기하학을 이용한 관개시설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었다. 고대 과학자들은 숫자놀이를 발전시켜 역수, 제곱, 2차·3차 방정식 풀이법 등을 개발하는 등 수학을 추상적으로 즐겼다.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과학자의 일화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것보다 먼저 땅에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뒤집기 위해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서 무게가 다른 2개의 물질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다는 것이 대표적. 저자는 그가 낙하법칙을 정립하기 10년 전에 이같은 실험을 했을 리가 없다고 말한다.

과학은 늘 신학에 짓눌려왔지만 뉴턴은 영국의 종교적 온건주의자와 결합하면서 빛을 발한 경우다. 그가 사망한 뒤 영국의 유명시인 알렉산더 포트는 “어둠 속에 있던 자연과 자연법칙들을, 신께서 말씀하시길 뉴턴이 ‘있으라’하매 모든 것이 밝아졌다”고 칭송했다. 저자는 서구뿐만 아니라 앙코르와트, 마야, 잉카, 이슬람 등이 쌓아올린 과학·기술 업적까지 일목요연하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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