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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손민호]

따지고 보면 비평만큼 고약한 독서도 없다. 읽는 맛이라곤 애당초 접은 학술논문 뺨치는 비평이 있는가 하면 '아는 놈만 읽어라'는 식으로 꼬고 또 꼰 암호와 같은 비평도 있다. 간혹 시처럼 번쩍 뜨이는 구절을 만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도 조심해야 한다. 덜컥 반가워하면 "비평을 독후감으로 아느냐"고 되레 성을 낸다.

비평이 대중에게도 허락된 독서인지는 여태 모르겠다. 분명한 건, 하나의 비평가로 말미암아 한 시대가 열린 예가 종종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테면 김현이 있어 한글세대가 있었고 백낙청이 있어 '창비'라는 시대정신이 있었다.

하여 비평을 소개하는 건 적이 조심스러운 일인데, 여러 위험을 감수하고 한 명의 평론가를 예서 말한다. 김형중(38). 2000년 등단했고 '변장한 유토피아'(랜덤하우스중앙) 등 평론집 두 권을 냈다. 문단 이력은 짧지만 요즘 문예지깨나 찾아보는 축이라면 예의 익은 이름일 터다. 말하자면 그는, 당대 가장 활발한 평론가다.

소위 '김형중 평론'엔 몇 가지 색깔이 있다. 첫째 문장이 곱다. 독자 입장에서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둘째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객관적 글쓰기를 고집하는 일부 비평가와 그는 한참 다르다. 어릴 적 담을 넘어 옆집 TV 훔쳐본 기억까지 비평에 담고 이 소설은 좋았고 저 소설은 나빴다고 대담하게 선을 긋는다. 다시 독자 입장에서, 그저 고맙다.

무엇보다 그는 젊다. 그는 21세기에 출현한 일군의 신예작가를 가장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평론가다. 남들이 '경박하다''상업적이다' 낯을 가릴 때 "어제의 잣대로 재단하지 말라"고 가장 먼저 소리친 평론가다. 이 점에 관하여 그는 단호하다. 그렇지 않고선 '이것은 리얼리즘이 아니다'고 선언할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선 아직도 한국문학에서 절대권력처럼 작용하는 리얼리즘을 상대로 싸움을 걸 수 없다.

혹자는 그를 보고 큰 틀을 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가 수시로 인용하는 아도르노의 한계가 바로 김형중의 한계라고, 다시 말해 수정주의에 그친다는 비난도 있다. 하나 그는 인정하지 않는다.

"아직도 한국문단엔 기성체계의 자명성에 결박당한 자 특유의 미소니즘(Misoneism.쇄신공포증)이 존재한다. 대안을 묻는다면 데리다의 명제를 인용하겠다. 앞으로 올 이 세상에 대한 명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 그를 '얼리어답터'(Early-adopter)로 오해할까봐 덧붙인다. 그는 전남대 앞 사회과학서점 '청년글방'을 6년 넘게 운영하다 최근 시민단체에 넘겼다. 손해만 2000만 원이 넘는단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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