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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황우석 사태, '민주주의 퇴행'의 징후적 사건" 
  "'盧정부 업적강박'-'애국열정' 결합해 '유사파시즘' 연출"
 
2006-01-12 오전 11:24:07     

 
  지난해 노무현 정부가 자신의 지지 기반인 '민중'의 요구를 외면하고 '신자유주의 경제 관료기구'와 '수퍼 재벌'이 주도하는 헤게모니에 투항했다는 비판에 매진해 온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이번에는 노무현 정부와 노 정권을 창출한 민주화운동 세력의 관계, 이들의 '민주적 구속 실패'가 불러온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관한 고찰을 내놓았다.
 
  "황우석 사태, '민주주의 퇴행'의 징후적 사건"
 
  최 교수는 12일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연구소'가 대학 내 새천년관에서 개최한 '민주주의, 여전히 희망의 언어인가? : 한국사회 위기 진단과 희망 찾기' 포럼에서 "최근 황우석 사태는 다른 어떤 요소보다 노무현 정부의 과학 정책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퇴행할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를 잘 드러내는 징후적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을 세계 생명공학의 중심으로 내세우고자 했던 '과학정책'은 무언가 업적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노무현 정부의 강박관념'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으며, 이를 위한 정책 지원과 민족주의ㆍ애국주의적 열정의 동원이 결합하면서 진실과 비판이 억압되는 일종의 '총화단결', 즉 유사파시즘적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 상황을 통해 우리는 민주정부를 지지하는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의 일부와 극우적 세력 간의 연대를 목도할 수 있었다"며 "이러한 상황은 민주화운동 세력이 민주주의 공고화 과정에서 과연 얼마나 기여를 하고 있나 되짚어 보게 한다"고 지적했다.
 
  "盧정부 강박관념은 '바닥 지지도' 탈출구 차원…그러나 잘못 짚었다"
 
  최 교수는 이어 노무현 정부의 '업적 강박'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노무현 정부의 '바닥 지지도'와 한국사회의 정치지형을 분석한 뒤, 해법의 오류인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계속되는 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의 생산제도를 보장할 수 있는 경제관료의 수중으로 넘겨진 지 오래며 그럴수록 노동ㆍ사회복지정책은 전자의 잔여 범주에 지나지 않게 됐다"며 "동북아허브 건설, 지역 균형발전, 행정수도 이전, 기업도시 건설 같은 정책은 '토건 국가'로 명명 되듯 큰 규모의 국가 재정과 행정기구를 가동시키며 무언가 큰 일을 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불러일으키지만 이는 민중적 삶의 질 향상의 효과는커녕 역행하며 엄청난 위험성을 수반한다"고 우려했다.
 
  최 교수는 이어 "노무현 대통령은 정당이 아닌 '제도권 밖 운동'의 대대적 동원을 통해 정부를 창출했다. 이것이 노무현 정부의 첫번째 드라마였다면 그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정책노선을 능동적이고 공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두번째 드라마"라며 "이 두번째 드라마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단히 유해하다"고 덧붙였다.
 
  12일 오후 2시30분부터 열리는 이 포럼에는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가 최 교수와 함께 발제자로 참여하며 성공회대 권진관 교수와 카톨릭대 조돈문 교수,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조현옥 대표, 성공회대 조효제 교수가 토론자로 참석한다.

출처 :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60112102738&s_menu=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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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는 아닙니다만, 황우석 사태를 바라보는 제 관점 및 입장의 각도란 점에서 최장집 교수의 시각과 흡사한 일면이 있어 올립니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옥중수고"에서 프랑스 대혁명의 자코뱅주의와 이탈리아의 실지회복운동(리소르지멘토) 사이의 차이를 "수동혁명"이란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동혁명"이란 용어는 그람시 정치 사상의 요체 가운데 하나인데, 그람시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는 '대중참여가 없는 혁명'이란 의미(이때의 '참여'는 '동원'과 구분되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사회의 외피 아래서 일어나는 분자적인 사회 변혁(예를 들어 독재 체제 같은) - 특히 진보적 지식인들이 공개적으로 나아갈 수 없는 조건 속에서 - 이라는 의미이다. 그람시는 수동 혁명 전략은 부르주아의 헤게모니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때, 또 헤게모니를 재확립하기 위한 광범위한 재조직화 과정이 필요할 때마다 일어나는 부르주아지의 독특한 대응양식(반혁명)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람시는 "옥중수고"에서 19세기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분석하면서 "수동혁명"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이탈리아의 리소르지멘토(실지회복운동)를 통해 형성된 이탈리아 국민국가의 허약성, 당시 이탈리아의 급진적 민족주의 운동가 마치니와 그를 따른 행동당은 이탈리아 반도(당시 이탈리아는 사분오열된 군소왕국체제)를 통일하여 이탈리아 민족국가를 건설하려는 과정에서 이탈리아 반도의 대다수를 이룬 농민들을 일으켜 국가 통일 과정에 동참시키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고, 그것이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자코뱅주의와 차이와의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봅니다.

결과적으로 리소르지멘토는 민중이 배제된, 운동 자체에 민중적 특성을 부여하거나 자기들 자신에게 견고한 계급적 기초를 부여하는데 실패하였고,  “한 사회 집단이 다른 사회 집단들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피에몬테)가, 그 제한된 권력에도 불구하고 지도적이었어야 할 그 사회 집단을 지도하는 현상", 즉 수동적 혁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노무현 정권을 포퓰리즘적인 대중 선동은 있으되 실질적인 정치 권력의 행사란 점에서 민중의 참여가 배제된 정권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런 점에서 87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진행된 일체의 민주화 과정은 이탈리아의 리소르지멘토, 즉 "수동혁명"의 과정이었던 셈이고, 이탈리아의 리소르지멘토가 민족국가 수립에는 성공했으나 결국 반동에 직면하게 되는 - 가톨릭, 보수 세력의 부활 및 파시스트 정당의 출현으로 이어지는 - 결과를 맞이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저는 87년 6.29선언 이후 벌어진 일련의 정치 과정들을 남한 사회의 부르주아들이 행한 수동혁명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역사발전론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나 그 뒤(절차적 민주화)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현상들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정권을 장악하던 무렵의 독일, 이탈리아와 흡사한 일면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가 오랜 독재기간을 거친 뒤 민주주의를 쟁취했으나 수동혁명이었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탈리아는 앞서 이야기했으니 생략하고, 독일의 경우엔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군국주의적 분위기의 제국이었다가 패전으로 인해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죠. 그 과정에서 독일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의 결별이 있었고, 스파르타쿠스단의 무력을 통한 정권 장악 시도가 구체제에 의해 진압당합니다. 그 뒤 나타난 것들은 일련의 재봉건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패전은 한국의 분단과 유사한 목적의식을 국민들에게 심었다는 점에서 또한 흡사합니다. 그런 와중에 수립된 바이마르 공화국은 당시 전유럽에서 가장 선진적인 민주적 헌법을 가진 공화국이었으나 약체 정부였고, 공화국의 관료들은 민주주의에 익숙치 않았으며 자본가 계급은 사회의 변화 과정을 급진적으로, 민중 계급은 경제 사정의 악화에 비해 개혁 과정은 너무 더디게 진행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지식인에 대한 대중의 혐오와 파시즘의 단순한 논리(국익 우선)가 먹혀들어 결국 독일에서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히틀러가 집권하게 됩니다. 물론 파시즘적인 정치 지도자의 등장에는 이밖에도 여러 요인들이 있으며, 한국적 상황이 반드시 위에서 언급했듯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상황과 모두 일치한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나고 있는 제반 현상들이 매우 위태롭게 보인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도 없을 듯 합니다.

결론을 새로 쓰기엔 시간이 다소 부족하여 예전에 제가 팩스턴의 책 "파시즘"에 대한 서평의 결론을 끌어와 말씀드리면....

파시즘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우며, 팩스턴이 내리는 파시즘의 정의가 비록 협소한 의미의 정의에 불과할지라도 결과적으로 파시즘적인 방식을 모방한 새로운 형태의 권위주의, 군부 독재, 급진화된 민족주의 정치 질서의 출현 자체를 긍정할 수는 없다. 팩스턴은 "파시즘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셔츠 색깔을 보거나 20세기 초 반체제적인 국가주의적 생디칼리스트들이 내세운 구호의 메아리를 찾아볼 것이 아니라, 과거에 파시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파시즘의 단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면 위기에 직면한 정치적 교착상황에서 나타나는 불길한 경고 표지를 더 많이 읽어낼 수 있다. 이 때는 위협을 느낀 보수세력이 적법절차와 법의 지배를 포기할 태세를 갖추고 더 강한 동맹 세력을 찾아 헤매며, 국가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선동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고자 한다. 보수파들이 파시스트들의 정치적 테크닉을 빌리기 시작하고 파시스트들의 '결집된 열정'에 손을 내밀며 파시즘 추종 세력을 흡수하고자 할 때 파시스트들은 벌써 권력에 아주 가까이 접근한 것이다." <본문 458-459쪽>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파시즘은 그 자체로도 위험하긴 하지만, 다른 정치 세력과 결합되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는 상태로 존재할 때, 기존의 정치 세력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동안엔 마치 휴면에 들어간 바이러스처럼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적 효용에 눈뜬 보수세력과 결합할 때, 파시즘은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된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바로 그 점이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주창하던 군부독재와 기묘한 동거를 자청했던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자들, 그들 자체도 경계해야 하겠으나 아직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대중 속에 몸을 숨기고 있을지  모를 유능한 지도자... 그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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