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책을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적거나 표시하며 읽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나는 고등학교 이후로 책에 무언가를 기록한 적이 없다. 아니, 실은 몇 번이나 시도를 하기는 했었다. 책에 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는 것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다시 책을 들췄을 때 중요하게 여기거나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을 바로 찾을 수 있고 그때그때의 생각을 놓치지 않을 수도 있다. 독자로서의 나는,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수집가로서의 나는, 이미 인쇄된 것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용납하지 못한다. 줄을 긋는 대신 책의 면지에 페이지수를 적거나 따로 타이핑을 한다. 기록할 것이 있으면 그 자리에 포스트잇을 붙여 쓴다. 그것도 아니면 아예 따로 노트를 만들어 정리한다. 수집가로서의 나는 대단히 부지런하고 인내심이 많아야 한다. 사실 이런 것들을 제대로 하려면 나는 책 읽는 것 외에 다른 무언가를 할 시간을 마련할 수 없다. 대단히 소모적이다.
게다가 이런 것들은 부작용이 심하다. 포스트잇을 이용하면 책에 정돈은 잘 될지언정 책의 두께가 두 배 정도는 부풀어 올라 책꽂이에 제대로 끼울 수 없을뿐더러 간혹 포스트잇이 책장에 아예 달라붙어 뗄 때 책장 종이를 일부 잡아먹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노트를 따로 마련하는 일은 책과 노트를 따로 보관해야 하는데다 힘과 노력을 여간 잡아먹는 게 아니다.
가끔 나는 독자의 피보다 수집가의 피가 진한 것이 아닐까 의심한다. 의심이라니, 아마 그게 진실일 것이다. 다만 독자의 피를 아주 버리지는 못한 수집가. 독자의 피가 수집가의 피보다 (아주 조금) 더 진했을 시기에 남았을 책의 흔적들(주로 앞쪽에만)은, 두고두고 수집가의 심장에 상처로 남았다. 가끔 그 책들을 펴보면 옛 상처가 부풀어 올라 아리기 그지없다.
모든 종류의 책에 수집가의 피를 흘렸던 건 아니다. 중학교 시절 내 교과서(특히 국사책)는 거의 본문의 글이 보이지 않았다. 외운답시고 굵은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몇 번이나 쳐가며 읽은 흔적 때문에, 정말 외우지 않고서는 도무지 뭐라고 써 있는지 알 방도가 없을 정도였다. 때로는 아예 책에 구멍이 나 없어지기도 했다. (결국 두 번째 시험 볼 때는 참고서를 사용해야 했다)
그 시절에는 지금은 생각지도 못할 짓을 책에 하기도 했다. 책갈피를 사용하는 대신 읽던 곳의 책장을 접고, 심지어는 손톱으로 완전히 선을 잡았다......(네가 군인이냐. 군복에 깃 잡듯 on_)
가끔 독자의 피가 역류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는 완전히 수집가의 피에 잠식당한 느낌이 든다. 책에 무언가를 쓴다는 생각만으로도 우뇌에 붉은 불이 들어오며, 사이렌이 울리는 듯한 환청이 들린다. 그냥 내 몸을 수집가의 손에 내 맡기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거라는 의사의 진단이 있...........을 것이다. 이 코너 또한 '리브맨 블루스'가 아니라 '컬렉터 블루스'라고 바꿔야 하는 것일까? -虎-
http://www.readordie.net/naboard/memo.php?bd=readmanblues&no=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