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수(서울 고등법원 판사) 2006/01/12
1977년 일단의 네오나치 그룹이 미국 시카고 근교의 스코키(Skokie) 시에서 퍼레이드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곧 격렬한 반발을 일으켰는데 당시 스코키 시는 많은 유대인들이 정착하여 살던 곳으로 특히 그들 중 약 20%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거나 생존자와 관련이 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네오나치 그룹의 의도는 뻔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을 자극하여 괜한 소동을 일으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자 일부러 스코키를 택하여 이슈화 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유대인들에게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도발이자 모욕이었으므로 이에 대항하여 같은 날 데모를 계획하는 한편 그들을 상대로 행사중지가처분을 구하는 신청을 법원에 제출함으로써 사법부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이 사안의 법률적 쟁점은 명확하였다.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서 보호되는 표현의 자유가 이 경우에도 보호되느냐 문제였다. ACLU(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이 단체는 1920년에 설립된 비영리단체로서 개인의 자유에 관련된 이슈에 관한 대중 교육과 법적 소송, 입법 운동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최근에도 인터넷에서의 음란물규제와 관련된 CDA 법안 등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가 네오나치 그룹의 변호에 나선 것도 바로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ACLU를 대표한 변호사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유대인 사회로부터 온갖 비난과 공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심정적으로 도저히 네오나치 그룹의 의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끝까지 사건을 맡아 소송을 수행하였고, 결국 유대인들의 평온과 양측의 충돌로 인한 위험성에 대한 고려보다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한 법원에 의하여 위 행사중지가처분 신청은 기각되었다. 그 후 네오나치 그룹은 그것만으로 성과를 얻은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계획한 날에 행진을 하지 않았고 결국 이 사안은 한바탕의 격렬한 논쟁만 남긴 채 마무리 되었다.
내가 이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TV에서 우연히 이 사건을 다룬 스코키란 영화를 보면서이다. 위 영화는 그 사건이 일어난 바로 다음해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위 사건을 그대로 극화한 것이다. 위 영화는 네오나치 그룹의 변호를 맡은 ACLU의 변호사를 중심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면서 그의 갈등과 고뇌를 보여준다. 하도 오래 된지라 영화의 자세한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명확하게 남아있는 한 장면이 있다. 영화 끝 무렵 사건 관계자들을 기자가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기자가 위 변호사에게 당신은 유대인인데도 어떻게 네오나치 그룹을 변호할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을 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아무리 우리의 견해가 옳은 것이고 다수라고 하여도 이와 다른 소수의 견해를 가치 없는 것이라는 이유로 보호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우리의 견해가 소수가 되었을 때 똑 같은 이유로 보호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