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문화 보물창고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이야기
장 마르칼의 장엄한 서사시 '아발론 연대기' 김정란 번역으로 출간돼
 
김선자
 
“사막 끝에는 뭐가 있지요?” 보호트가 묻는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있지요…….” 모르간이 대답한다.

 
사막 저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그저 또 하나의 세계가 있을 뿐이라고 마법사 모르간은 대답한다. 그러나 원탁의 기사들은 그 너머를 탐색하러 떠난다, 끊임없이.
 
젊은 그들은 ‘솔직한 눈길’을 갖고 있다.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홀로 세계를 주유하며, 한번 결심한 것은 자신과 동지들의 명예를 위해 끝까지 밀어붙인다.” “세계의 위대한 신비 앞에 인간은 참으로 무지하지만” 그러나 “세상엔 언제나 무슨 일은 일어나 있고 앞으로도 일어난다”. 에메랄드로 만들어진 성배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세상은 언제나 무슨 일인가로 가득 차 있고, 젊은 그들의 탐색은 계속 된다.
 
장 마르칼은 그들의 가슴 뛰는 모험과 순수, 유치한 열정을 자신의 색깔로 그려 내었다. 김정란은 그것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겼다. 김정란에게서는 모르간의 향기가 난다. 멀린의 반지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모르간은 매혹적이고 강하다. 열정적이고 관능적이며 저항하기 힘든 매력을 지닌 검은 머리의 모르간. 란슬롯조차 그녀의 강인함을 두려워한다. 켈트의 신비로운 숲에 슬픔과 고통을 아는 깊은 눈빛으로 서 있는 모르간의 모습에 내내 김정란의 모습이 겹친다.
 
장 마르칼의 장엄한 서사시 <아발론 연대기> 여덟 권이 김정란의 향기 넘치는 번역과 섬세한 해설, 멋진 도판들과 함께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젊은 출판인의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그것은 세상 저 너머를 꿈꾸는 원탁의 기사들의 열망과 맞닿아 있다.
 
▲ 장 마르칼 지음, 김정란 번역으로 나온 <아발론 연대기>  © 북스피어, 2005

기독교 문화와 아름답게 공존하는 켈트 문화의 보물창고, <아발론 연대기>와 함께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브로셀리앙드 숲에서 전해져 오는 음유 시인들의 노래를 들었다. 멀린의 슬픔과 아더의 지혜, 란슬롯의 열정, 원탁의 기사들의 용기, 기독교 문화 사이사이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켈트 문화의 수많은 상징들이 “망각의 먼지를 뒤집어쓴 필사본”에서 빠져나와 음유 시인들의 투명한 언어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참으로 매혹적인, 그러나 때로는 쓸쓸한 그들의 언어.
 
원탁의 기사들이 찾아낸 성배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인들 어떠랴. 어차피 성배란 질병과 배고픔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인간들이 만들어낸 샴발라적 이상인 것을. 원탁의 기사들을 키운 것은 ‘길’이다. 위대한 신화 속의 영웅들뿐 아니라 고대의 시인들이나 역사가들도 길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중국의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도, 최고의 시인 이백도 젊은 날의 대부분을 길 위에서 보내지 않았던가. 떠남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는 언제나 만들어지고 시인들은 그 이야기를 노래로 기억 속에 아로새긴다.
 
기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그들의 역사, 그들의 전설. 기억만을 갖고 다녔던 바람을 닮은 사람들. 그들이 전해주는 바람의 이야기, 시간의 이야기, 그리고 길의 이야기. 그것이 바로 <아발론 연대기>이다.
 
맑은 눈길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대, 아스팔트길 위에서 나른한 일상에 빠져 있는 그대, “내 가슴이 잊지 못할 얼굴” 때문에 수많은 밤을 열정으로 새워본 경험이 있는 그대, 켈트 문화의 숲속으로 난 푸르른 길을 원탁의 기사들과 함께 떠나보지 않겠는가. / 신화전문가, 『김선자의 중국신화이야기』 저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