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경제학 - 즐기기
안윤호(아마추어 커널해커) 2006/01/05
디지털 카메라처럼 수많은 모델이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출시되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델이 다양한 경우 선택은 쉽지 않다. 약간의 지겨움과 써보지 않은 모델에 대한 동경만으로 제품의 가치는 시간에 따라 즉각적으로 하락한다. 메이커들이 제시하는 수많은 기능과 특징들은 어떤 선택이든지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아마 어떤 제품을 사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 때문에 생기는 망설임에 직면한다. 사람들은 써보고 싶은 새로운 제품에 대한 기변증(기종을 변경하고자하는 마음의 병이라고도 한다.) 때문에 자신의 기계를 팔고 다시 새로운 모델을 구입함으로서 메이커를 즐겁게 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쓸 수 있을 때 여러 가지 기종을 써보고 싶다는, 그래서 선택의 가능성을 최대화 하려는 욕심 때문에 마니아들을 기계를 바꾸고 또 바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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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름 카메라의 시절 SLR (single lens reflex) 카메라들은 고급기의 주종이었다. |
다른 사람들도 최신의 기종에 관심이 있으므로 기종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런 세계에서는 2-3년이 지난 카메라를 올드 카메라로 부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과거의 기종을 너무 오래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속칭 올빠(올드 기종을 사랑하는 사람)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새로운 카메라를 팔아야 하는 메이커의 입장에서나 새로운 것을 선호하는 얼리 어댑터의 입장에서는 환영받을 만한 요소가 적다.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나 곧바로 새로운 기종으로 한정된다. 물론 새로운 기종이 성능이 더 좋겠지만 그 가격에 비례할 만큼은 아니다. 어떤 시기에 강렬했던 모델에 대한 집착은 많은 시간을 들여서 완성도를 더해간다. 자신이 원하는 <기계의 눈>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하는 색감을 갖고 있을 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것을 현재의 모델이 아니라 과거의 모델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른바 지름신(사람들에게 구매 충동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의 강림으로 디카를 여러 번 바꾸어도 촬영의 실력은 그다지 빠르게 늘지 않는다. 정작 디지털 카메라를 사는 목적은 마음에 드는 디지털 영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좋은 영상에 대한 열망과 성능 그리고 최종적인 영상과 기계의 가격은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성적이라거나 경제적이라는 표현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이들의 틈바구니에 숨어있다. 요즘은 무서운 속도로 써버리지 않으면 쓰는 일에 뒤쳐진다. 스타일이며 체험이다. 경제관념을 떠나 시기에 맞추어 빨리 써버리지 않으면 쓸 기회조차 없어진다.
경쟁이 치열한 업계에서 DSLR의 바람이 분 후로 DSLR의 가격이 인하되고 사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붐이 일고 있기 때문에 올해와 내년에는 하이엔드나 중급기 이상의 디지털 카메라들은 더 빠른 곡선으로 가격이 인하될 것임에 틀림없다. 일반적인 용도의 작은 디지털 카메라들은 이제 신품이지만 재고인 제품의 처분가격이 10만 원대에 접어든 제품들도 등장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디지털 카메라를 신기하게 바라보지 않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이엔드가 걸어갔던 것과 비슷한 길을 내년이나 후년에 DSLR 기종들이 답습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필자 역시 1년만 기다리면 그 흔하게 될 DSLR 모델중의 몇 개를 헐값에 구하여 잘 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홀려있는 DSLR 열풍에 참여하는 즐거움은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 억울해 보이는 가격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가격이 마구 떨어지는 하이엔드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 과거에는 비싼 가격과 발표 당시로서는 놀라운 성능을 보여 주었으며 놀라운 감각의 사진들을 찍을 수 있는 능력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중고 시장에서 가격이 떨어진다. 먼저 비싼 가격에 산 사람이 이 카메라에 대해 싫증을 느끼면 다른 사람이 역시 같은 기대와 실망을 느끼고 싶어서 이 카메라를 사게 된다. 기계의 성능은 사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신품과 잘 사용된 중고는 성능상 차이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기계에는 잘못이 없지만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가격은 계속 떨어진다. 2년 전 100만원에 육박하던 기계는 올해는 20만 원대에 거래되고 내년이나 그 이듬해에는 어떻게 될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떨어질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물론 어떤 기종들은 사람들의 사랑에 힘입어 놀라울 정도로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떨어지는 순간은 곧 다가온다. 독자들이 시험 삼아 dcinside.com 의 장터에 한번 가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시간과 가격에 대해 민감한지 곧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해외의 ebay같은 장터도 마찬가지다. 중고품의 경우 만원(약 10달러) 정도의 가격에 사람들은 매우 예민하지만 정작 신품의 경우에는 별로 예민하지 않다. 신비로운 일이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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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LR 기종이 디지털 카메라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 과거에 SLR이 카메라 업계를 지배했던 것처럼 . |
이런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드라이브는 시간에서 온다. 시간이 흐르면 값이 떨어진다. 컴퓨터 업계에서는 이미 컴퓨터의 메인보드나 CPU의 경우에서 질리도록 보아온 일들이기 때문에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에는 카메라들이 반도체의 눈을 달고 무어의 법칙과 비슷한 특성을 지니게 된 것일 것이다. 아무튼 카메라에게 큰 잘못은 없다. 분명히 시간에는 경제학적인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는데 아직은 특별한 경험적인 법칙이 알려져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경제학은 고사하고 시간을 연구하는 철학자조차 그렇게 많지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소비자 가전제품(comsumer's electronics)으로 변한 PC와 디지털 카메라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를테면 오디오와 유사한 관점에서 본다면, 디지털 카메라에는 중요한 특성 하나가 있다. 즐긴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발생한다. 오디오의 경우 즐김의 대가인 매니아 층이 있다. 수없이 많은 CD나 LP를 들어보고 갖고 있고 기계를 계속 바꾸기도 하며 몇 십년동안 듣기도 하는 기묘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목적은 기계를 싸게 구입하는 것이나 그저 음악을 듣기위한 것이 아니다. 듣고 싶은 소리를 위해 기계를 구입하고는 실망도 하고 열광도 하곤 한다.
필자도 한때 빠져있던 오디오의 세계에서는 상당히 많은 비용과 노력뿐만 아니라 많은 시간도 필요했다. 항상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필요한 시간은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개인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원하는 소리를 찾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마음이 원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이다. 일단 오디오와 음반을 골랐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즐기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음악을 즐기기 위한, 충심으로 즐기기 위한 시간이 없다면 오디오는 소리를 연주하는 단순한 가전제품에 불과하다. 수천 장의 CD를 모으고 좋은 오디오를 갖고 있더라도 즐기지 못한다면 그동안 투자한 시간은 진정으로 보상받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디오와 음반을 모으기 위해 공부하는 시간과(이를테면 베토벤의 교향곡들은 베토벤이 다시 태어난다 해도 다 들어보지 못할 만큼 다양하다. 모차르트는 더 많을 지도 모른다. 결국 좋은 음반을 고를 수 있을 정도의 안목을 가지려면 역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장비와 음반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만큼 즐길 수 있다.) 장비를 위해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시간과 이들을 감상하고 즐기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비싼 장비를 사버리면 초조해져서 즐기기 위한 시간과 여유가 부족할 수도 있다.
CD를 수천 장 갖고 있는 매니아라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들을 고르고 구하기 위해 투자했을지 필자는 가끔 궁금해지곤 한다. 수백 장의 CD도 만만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음반을 듣고 구하는 내용은 책으로 써도 될 정도의 분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의 조사에 의하면 이들이 자주 듣는 음반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조사를 하지 않더라도 오디오 광들을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이 듣는 곡들이 몇 개 안된다는 사실을.). 수많은 탐색의 시간과 노력의 투자 끝에 결국 몇 십장이 안 되는 음반을 자주 듣는 것으로 귀결된다.
수십 대의 오디오를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듣는 오디오는 결국 한 순간에는 하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결국 평범한 오디오라도 열심히 듣는 사람과의 실제적인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바로 시간 때문이다. 사용가능한 단 하나의 몸 그리고 한정된 시간에 갇힌다. 열정이 많은 장벽들을 돌파시켜 주며 시간의 제약을 단축시켜 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 베토벤이 다시 태어나도 다 들을 시간이 없는 녹음들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문화상품을 제대로 흡수하거나 소비할 시간조차 없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간다.
온갖 물건들에 사람들은 홀린다. 그리고 문화 코드들에도 사람들은 홀린다. 오디오에 빠져본 사람들은 모두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다 들어보지도 못하는 음반들이 널려 있다. 그러나 이 것이 소용이 없는 것인가? 답은 <아니다>이다 . 어떤 곡들은 소비자의 가슴에 깊이 파고든다. 평생 지울 수 없는 곡들을 듣고 또 듣는다. 나머지 곡들은 그 보다는 덜 중요하다. 억지로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매우 촉박한 시간의 제약 속에서 사람들은 웃고 울고 한다. 험난한 시간의 파도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 즐기기 위해 집착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들은 극복된다. 사람들은 이런 시간을 만들어 내기 위한 열정을 기꺼이 일으킨다. 결과적으로 앞서 장황하게 이야기한 오디오 마니아가 얻은 것은 <만족>이라는 것이다. 자기만족이다. 그 자체가 자기표현이기도 하다.
마음이 보고 싶어 하는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장비라고 할 수 있는 좋은 디지털 카메라 역시 제대로 다루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오디오의 경우와 유사한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영상을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적어도 다른 사람의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스냅 사진만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그러나 사람들의 표현을 위한 욕구는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에 흔한 스냅 사진기를 가지고 일반적인 사진 만들기를 계속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카메라를 찾아 헤맬 것이고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메이커와 관련업계의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는 와중에 만약 본인도 즐거울 수 있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실제적인 애호가의 레벨이 일반적인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것과 매니아의 중간정도에 걸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시간과 노력의 투자도 그 사이에 걸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소해 보이는 투자도 빠져들기 시작하면 가벼운 일이 아니다. 디지털 카메라 한대를 가져보면 서브 카메라를 갖고 싶을 것이고 싸고 좋은 기종이 나타나면 서브카메라를 하나 더 가져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사용하는 시간은 언제나 제한적이다. 집착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시간의 제한 속에서는 초조해 지거나 체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더 많이 즐기고 싶은 초조함과 집착 속에서 문화사업은 이상한 것들이 번식하기에 이상적인환경으로 변한다. 물건이 흔해지면 사용할 시간은 더 줄어드는 이상한 현상도 나타난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시간 = 돈 시간의 경제학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바가 적으나 어느 때 부터인가 “시간은 곧 돈이다” 라는 사고 패턴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시간제로 급여를 받기 시작하면서 출발했을 지도 모르는 이러한 사고의 흐름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완전한 리스트는 아니다.
시간제로 환산해 본 임금이나 일당
투자의 타이밍처럼 타이밍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일의 결과
사람들이 시간을 투입하여 얻는 만족도를 경제적으로 환산해본 수치
첫 번째는 과거에 시간제로 급여를 받던 시대의 산물이다. 2차 산업의 시대에 사람들은 공장이나 일터에서 시간에 따라 주로 육체적인 활동으로 몸의 시간과 돈을 맞바꾸곤 했다. 일한 시간만큼 임금이 지급되었다. 제조의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점차 밀접한 비례관계는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당시의 관습과 무의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물건은 귀했고 시간은 그보다는 덜 귀중해 보였다. 아직도 직업이 부자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한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의 특성으로 돈을 사냥하는 관습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적당한 투자처나 사업에 투자함으로서 타이밍과 안목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운도 따라야하지만 적절한 안목과 판단이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일하는 시간이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변했다.
세 번째는 높아진 생산성으로 남는 시간이 다시 반드시 소비되어야 하는 문화산업의 단면이다. 제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자 물건은 소비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일부는 여행과 같은 체험산업으로 다른 부분에서는 문화 사업으로 모습을 달리하여 나타나게 되었다. 일을 하거나 투자를 해서 번 돈을 써야 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세 가지의 시간 이용 패턴에 대해서도 혼동스러워 한다. 아직 익숙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의 소비는 주로 첫 번째와 세 번째의 경우에 나타나는데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시간의 가치는 더 중요해지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생산성이 높아져 흔해지기 시작한 물건 그 자체보다 시간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점차 경제학은 시간의 소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시간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게 되었다. IT 기술이 발전하자 시간을 잘 편집할 수 있다면 많은 일들을 쉽게 해치우면서 현실을 편집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은 일의 본질과 문화와 여가 활동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기술은 누가, 어떻게, 언제,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 가를 바꾸었다. 세상의 사업과 일자리들은 불안정해졌다. 사람들이 일에서 느끼는 압박감을 여행이나 레저, 문화산업의 영역에서 풀려고 하면서 이 분야는 거대해졌다고 한다. 시간은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주제를 심도있게 다룬 레온 크라이츠먼의 역작 <24시간 사회>의 머리말에는 이런 말이 있다(24시간 사회는 시간의 역사와 압박감 그리고 압박감의 유래에 대해 자세하게 적었다.).
"IT는 새로운 이중 계급 사회를 만들고 있다"
계급 1: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쓰는 사람
계급 2: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많은 돈을 쓰는 사람
사실일지도 모른다(그러나 톨게이트에서 몇 백 원을 내기 위해 차들이 긴 줄을 서고 있을 때에는 아직 경제학과 시간의 상충지점이 아직은 꽤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시간의 수요는 이렇게 절박하다. 시간에 대한 많은 미련이 베이비붐 세대부터 싹트기 시작하여 이를 다룬 뉴스위크의 주제는 “환갑이 된 베이비 붐 세대 - 80까지 일하고 100세까지 살고 싶다”로 정해진 적이 있다. 그러나 베이비 붐 세대의 평균수명은 70세가 조금 넘는다. 그 다음의 세대는 더 큰 기대를 갖고 세상을 살고 있을 것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즐기는 일에도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간을 소비하는 일에도 잘하고 못하는 구분이 생긴다. 여가 시간은 예전보다 많이 늘어났지만 만족할 만큼 소비하려면 돈과 아울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정말 이상한 경제학이다.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시간은 더 필요하다. 이런 문화코드에 크게 어필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나온다면 정말 큰 비즈니스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시간은 물질이 아니다. 시간은 만들어 내거나 저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수요는 언제나 블랙홀처럼 강력하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할 필요가 없겠지마는 현대적인 의미의 문화생활은 불가능해진다. 아마 TV도 보지 않고 인터넷도 하지 않으며 문화생활을 즐기거나 일도 적게 하면 시간은 좀더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한 불편도 반드시 감수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기술에 의해, 광고에 의한 사람들의 교육(광고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육활동이다)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고 하므로 이것을 정면으로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고 즐겁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문화활동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투자해 놓은 많은 시간과 인프라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기존의 문화적 인프라를 부정하거나 담을 쌓고 살아도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있으므로 차라리 이것을 효과적으로 즐기는 일이 더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경제활동은 서비스와 문화활동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시간이 중요한 변수이다. 비록 이들을 측정할 좋은 경제적인 법칙이 없다고 해도 투여한 시간은 중요한 변수이다. 사람의 수명 역시 시간으로 측정되므로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시간은 양도되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남의 인생을 흡수하는 것이기도 하다. 활발한 커뮤니티나 자료의 저장소는 사람들의 헌신에 가까운 노력이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참여”라고 부르는 것으로 참여는 경제적활동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인터넷의 많은 포털들은 이러한 참여 작업을 이용하여 성장해왔다
너무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이렇게 널려있는 문화코드들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시간의 경제학은 다른 사람의 노력과 시간을 흡수하면서 효율적으로 변한다. 네트웍은 다른 사람과 나 사이의 간격을 IP 주소 한 개로 단축시켰다.
비록 알려진 것이 적지만 이런 요소들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유리할 것이다. 시간의 경제학은 경제학적인 면보다는 사회 심리학적인 측면이 더 많다. 반드시 “시간 =돈”의 공식으로 시간을 스와핑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시간의 파도위에서 서핑을 즐기는 것이다. 파도가 날카롭기는 하지만 서핑이 즐거우면 더 좋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