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돌바람 > 상상동물과 전쟁동물
전쟁동화집 - Bookvillage Classic
노사카 아키유키 지음, 이선희 옮김, 정택영 그림 / 책이있는마을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사자-개미를 아세요? 플로베르는 이 녀석을  "앞은 사자이고 뒤는 개미일 뿐만 아니라 생식기는 거꾸로 달려 있다"고 하네요. <욥기>에서는 " 늙은 사자는 먹이가 없어서 죽어갈 수밖에 없다"고 하구요. 라이시, 미르멕스, 미르메콜레온, 그리고 사자-개미라고 불리는 이 녀석은 그러나 먹이가 없어서 죽어갈 수밖에 없대요. 왜 먹이가 없지. 궁금했어요. 아버지는 사자고 어머니는 개미니까 용맹스럽고 부지런하지 않을까요. 아, 그런데 녀석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을 닮아 앞부분은 사자고 뒷부분은 개미로 태어났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기를 먹을 수도 풀을 먹을 수도 없어서 그냥 굶어죽었다는군요. 이렇게 허망한 환상동물(상상동물)도 있을까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최고의 것을 주었는데 그것 때문에 죽어버리다니.

저건 상상동물이니까 그냥 그렇다고 치고, '전쟁동물'이라는 것도 있어요. <반딧불이의 무덤>이라는 만화 보셨나요? 보셨다면 거기에서 사람이 나오던가요? 숨고, 숨기고, 울고, 또 우는 그들이 사람이었던가요. 아님 폭격하고, 폭격하고, 또 폭격하는 그들이 사람이었던가요? 제가 본 유일하게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들이었어요. 시체요. 내장이 파열되고, 머리가 너덜거리고, 사지가 잘려나간 시체가 그나마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이 끔찍한 만화를 동화로 읽는 것은 또 얼마나 넌덜머리가 나는 일인지요. 보지 말라구요. 그럴까요. 그나마 살아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보지 않을 수 있지요.

전쟁동화라. 사자-개미만큼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 아닌가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노사카 아키유키는 자신의 전쟁체험을 동화로 풀었는데요, 이게 너무 아파요. 왜 그들이 그렇게 강경하게 보수주의를 지지하는지 이해가 되거든요. 이해는 되는데 이게 미로잖아요. 우리가 한국전쟁 당시 지배적인 입김을 넣은 체험을 통해 강경하게 반빨갱이주의자가 될 것을 강요받았듯, 베트남 사람들이 베트남전쟁을 통해 학살자 한국인을 기억하듯 역사는 전쟁을 통해 되반복되고 있다는 증언이거든요. 이건 쉽게 멈춰지지도 사라질 것 같지도 않거든요. 작가는 종이로 만든 풍선에 수소가스를 넣어 미국으로 띄어보내던 아이들의 체험을 패전 소식을 접한 이후에는 수소 대신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숨으로 채워넣고 막막하게 띄어보내기는 하지만 그것은 또 얼마나 그야말로 동화적인가요. 소망, 믿음, 마음으로 전쟁을 멈출 수 있다면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어디 있겠나요.

다시 전쟁동물로 돌아가서, 그가 전쟁터에서 만난 동물들 좀 보실래요. 유난히 몸집이 커서 다른 고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한 고래가 있어요. 다른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싶었지만, 사랑도 하고 싶었지만 그가 너무 커서 다른 고래들은 녀석을 끼워주지 않네요. 그러다 녀석은 자기보다 더 큰 고래를 만나게 돼요. 그게 누구냐구요. 잠수함이요. 미국을 공격하기 위해 마지막 폭격을 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잠수함만은 녀석을 따돌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녀석은 그녀를 사랑하기로 했지요. 잠수함은 적에게 포위되어 있어요. 마지막 선택이 남았지요. 항복할 것이냐 적과 함께 죽을 것이냐. 잠수함에 탄 선원들은 유서를 쓰기로 했어요. 모두의 유서를 모아 자꾸 따라오는 고래의 꼬리에 달아주었지요.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발견해주기를 바라면서요. 그리고 적을 향해 몸을 던지려는데, 그때 잠수함을 사랑한 고래가 어떻게 했게요. 죽으려고 작정한 그녀를 대신해 미군을 향해 돌진해요. 그리고 고래를 본 미군은 또 다른 잠수함이라고 생각하고 고래를 향해 포탄을 쏘아대지요. 분명 잠수함을 향해 포를 쐈다고 생각했는데 망망한 바다는 핏빛으로 물들어요. 고래의 살점들이 여기저기 떠 있구요, 그 사이로 마지막 연애편지처럼 병사들의 유언이 둥둥 어디론가 흘러가지요. 굶주린 소년에게 말을 거는 파란 앵무새나, 빼빼 마른 코끼리와 사육사나, 말과 병사, 늙은 늑대와 소녀, 고추잠자리와 바퀴벌레 모두 8월 15일을 기억하는 '전쟁동물'들이지요.

상상동물들이 나오는 상상동화가 있다면 전쟁동물들이 나오는 전쟁동화라는 것도 있어요. 참 지독하지요. 현실은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은 것까지 상상하게 해주니까요. 상상을 강요하니까요. 이렇게 지독한 동화는 머리털나고 또 처음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 책을 천천히 아이에게도 읽어줄 작정입니다. 천천히요. 아주 천천히.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 학살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정부로부터 받은 일본군 위안부 생활지원금 전액을 그들에게 건네주고 그해 돌아가신 문명금 할머니를 기억하기로 합니다.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다시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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