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업과 IT, 빌더의 철학

김국현(IT평론가)   2005/12/22

 

신생 분야 IT는 자신의 정체성 확립 과정에서 정의되어야 할 갖가지 과제를 기존 타 분야의 관념에 빗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유난히도 은유가 풍부한 분야가 되고 말았다.

‘인헤리턴스’나 ‘폴리몰피즘’과 같이 생물학에서 가져 온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건축과의 밀월은 넓고도 깊다. 특히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드러나는 다양한 행태, 예컨대 하청과 하도급이 난무하는 관행은 꽤나 흡사하다. 또 설계나 구축, 아키텍트나 빌더와 같은 업계 용어도 건축으로부터 차용한 것이 많다.

IT. 수학적 알고리즘에서 시작한 이 순수 과학은 경영의 시녀인 SI 산업으로까지 급박하게 변모해 간다. 21세기가 이 산업에 거는 기대란 20세기의 경제 발전 5개년 계획 등지에서 건축과 토목이 해 왔던 인프라 건설의 역할에 비견할 만 할 것이다. IT839 정책 등에서 볼 수 있듯, IT는 어느새 사회 간접 자본으로서 여겨지고 있다. 건축에 대한 은유는 IT의 오늘을 잘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공사판이 되어 버린 SI 산업을 한탄하며, 소프트웨어란 그리고 프로그래밍이란 창의적 지성의 특권과도 같은 것이라 믿고 싶은 오늘,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 괴리에서 고민하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한다.

벽돌을 올리는 인부에게 누군가가 묻는다.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지겨워 죽겠어. 오전 내내 시멘트만 개고 있으니까." 다른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골목의 랜드마크가 될 10층짜리 벽돌 건물을 짓고 있지."

이 것이 바로 빌더의 철학이다.

테라코타 붉은 벽돌로 유명한, 교보 강남 빌딩과 리움 미술관의 설계자 마리오 보타는 "건축은 모든 예술의 모체"라 말한다. 우리가 막노동판이라고 야유하던 그 산업을 두고 말이다. 지역적 아이덴티티를 강하게 살려 명성을 얻은 건축가 마리오 보타. 지방의 건축물들이 세계적 화제를 사고 그 양식이 다시 지역과 무관하게 퍼져 나간다. IT는 그럴 수 없을까?

예술로서의 건축처럼 테크놀로지가 미감과 교차하고, 단순한 기능을 시적 차원으로 승화시키기에는 IT 산업 구조가 너무나도 미국 중심의 일극 주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미국에서 솟아 나와 흘러 나오는데 무슨 지역적 아이덴티티가 있겠느냐고.

나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덴마크를 생각한다. 걸출한 건축가를 수없이 배출해 낸 덴마크. 그 곳에서 C++이 탄생했다. 터보 파스칼, 델파이, C# 모두 덴마크인의 작품임을 기억한다. 오브젝트 지향에 관해서는 스캔디나비안 학파를 알아 주며, 모듈화의 은유에 등장하는 '레고 블럭'마저도 덴마크가 준 선물이다. 면면하게 이어지는 지역적 아이덴티티란 이런 것이다. 진정한 건축 강국이란, 진정한 IT 강국이란 이런 것이다.

건축으로의 은유를 IT가 지닌 숙명이라 생각한다면, 이에 대한 교훈도 IT가 닮고 싶어했던 건축이 주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건축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그러한 빌더의 철학이다.

혼을 담은 예술이라 생각하는 건축을 하지 않는다. 막노동이라 투덜댄다. 그러다 보면 백화점이 무너져 내리고, 대교가 끊어져 가라 앉는다. 빌딩의 수준은 빌더의 철학을 반영할 뿐이다. 철학이 없다면 이러한 수준의 IT 밖에 될 수 없다.

으레 건축에는 필연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기묘한 형상에 대한 설명이 있다. 이는 '오브젝트(Object)'와 '컨텍스트(Context)'에 대한 건축가의 해석으로 표현된다. 오, 너무나도 IT에 익숙한 용어다. IT에게도 이러한 해석을 기대할 아키텍트가 필요할 텐데, 코딩도 할 줄 모르는 아키텍트가 무책임한 제안서와 타성에 젖은 개발자들과 씨름하고 있다.

지나치게 험난한 SI 현장에 있다면,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냐"는 빌더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자. 지나치게 무모한 제안서를 써야만 한다면, 현상 공모에 도면을 내는 건축가의 심정이 되어 보자. 이러한 마음가짐은 업계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빌더의 철학이 담긴 분위기가 자리잡을 때, 너무나도 한국적인 IT, 한국다운 지역적 아이덴티티를 살린 성과물로 세계에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참된 IT 강국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짠 한 줄의 코드가 다음 시대의 랜드마크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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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ama 2005-12-26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추천하고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