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상의 불행은 한편으로는 현실의 불행의 표현이자 현실의 불행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강조!-제가 강조하는 겁니다.)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고 또 정신을 상실해버린 현실의 정신이다.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중에서-
한동안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서 나쁜 내 머리를 탓했습니다. 서문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본문이야! 그러나 몇 권의 다른 책을 계기로 이 문장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이트의 종교의 기원, 엥겔스의 포이에르 바하와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이라는 저작을 통해서요.
황우석교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근대의 정신은 신에서 인간으로 미신에서 과학으로 종교에서 (인간의) 본성으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서구의 기준으로 따지면 빅토리아 시대같은 인간 본성에 대한 억압의 시기가 있었지만 분명하게도 종교적 금기, 윤리적 제한으로부터 본능에 충실한 인간적인 삶을 찾아냈던 것이 바로 근대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꾸준히 종교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또한 있어 왔습니다. 특히나 어렵고 힘들때 종교는 더욱 절실해지기 마련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들이 왜 종교에 귀의를 하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곤궁한 상태, 정신을 잃어버린 죽음앞의 인간이 종교를 찾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지요. 사형수는 종교에 귀의를 함으로써 잃어버린 정신을 찾는 겁니다.
그렇다면 황우석 교수라는 과학자가 어떻게 한국에서 하나의 종교적 신앙의 형태로 변이가 됐을까요? 혹시나 우리나라 시민들이 곤궁한 상태에 있었던 게 아닐까요? 어려운 경제 상황을 돌파할 추진체가 될 것이 필요했는데 우리앞에 황우석이라는 인물이 나타납니다. '사회 과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무능한 정부-보수 정당에게는 호재가 됐을 겁니다.
시민들은 곤궁한 상태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아우성인데 애초에 그러한 것을 해결한 의지도 별로 없고 능력은 더더욱 없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곤궁한 피조물의 한숨과 정신(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정신을 만들어주는 것이겠지요. 정치가들이 드디어 새로운 신앙을 찾았을 때, 언론들은 옆에서 설교를 하기 시작합니다.
33조가 될 것이다, 한국을 선진국으로 진입을 시켜 줄 것이다. 놀라운 것은 걸핏하면 서로 싸움박질이나 해대면서 으르렁거리는 자들이 33조라는 금전적 희망앞에서는 공통의 신앙을 가지게 되었던 겁니다. 수구 신문의 독자 게시판과 걸핏하면 개혁을 부르짖는 현 정부의 지지자들을 가장 많이 보유하는 사이트의 게시판이 비슷한 글로 가득찼습니다.
민주노동당같은 좌파는 이 상황에서 수구와 노빠들로부터 공통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유일하게 제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비이성으로 똘똘뭉친 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것은 그들(수구와 노빠)이 절대적으로 옳았거나 아니면 광기로 뭉쳤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자는 아닌 게 밝혀졌으니 이제 남은 것은 후자 뿐이지요.
민주노동당과 같은 좌파와 엠비씨, 프레시안은 과학과 싸우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신앙과 그것도 사이비 신앙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힘들었던 겁니다. 사실 난감하지요. 민주노동당은 사이비 신앙에 물들었던 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아 집권을 해야 하는 정당이라는 점에서요. 우울하기도 합니다 솔직히. 곤궁한 피조물을 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들을 마냥 그렇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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