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공황'을 극복하는 길  
  '황우석 공황'을 극복하는 길  
  2005-12-16 오전 10:05:46      

  전대미문의 환란(換亂) 사태로 결국 IMF 구제 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던 1997년 11월 21일이 바로 이랬다. 물론, 전조가 있었다. 양식 있는 전문가들의 지속된 경고도 이어졌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장밋빛 미래를 되뇌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가 "꽝"하고 일순간에 무너졌다. 국민들은 공황에 빠졌고, 그 뒤 눈물과 분노 없이는 듣기 어려운 비극들이 수없이 우리 주변에서 발생했다.
  
  '황우석 공황',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결국 11개라고 주장하던 맞춤형 줄기세포는 거짓임이 드러났다. 2개는 있을 것이란 말도 들리지만, 더불어 제기된 여러 의혹과 정황들은 아예 줄기세포의 존재를 부정하는 쪽에 기울어 있다. 연구 결과의 날조(fabrication)가 아니라 더 심각한 위조(falsification)라는 것이다.
  
  이미 황우석 교수와 국내 과학계는 때를, 그것도 매우 중요한 때를 벌써 3번이나 놓쳤다. 첫 번째 실기는 황 교수께서 난자 관련 윤리 의혹에 대해 떠밀려 사과함으로써 세계 과학계의 구설에 오른 일이다. 두 번째에도 서울대 수의대 기관윤리위원회(IRB)가 자체 조사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밝힘으로써 또다시 국내 과학계가 자정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이는 데 실패했다. 세 번째 실기는 더 참담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입과 진술을 통해 치명적인 연구 부정행위가 드러나게 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이 사건은 IMF 환란 사태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적어도 그 때는 국민들이 금이라도 모아서 해결에 대한 의지를 표출하고 또 실제로 그것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황우석 교수가 때마다 강조하시던 '성녀(聖女)'들의 난자를 모아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의혹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익명의 많은 젊은 과학자들에게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음을 확인한 것은 큰 수확이다. 따라서 이제 이들이 선배 과학자들의 과오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조기에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단 한번밖에 더 기회가 없다는 말이다.
  
  영롱이, 스너피, 줄기세포…철저한 검증 절차 밟아야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 오늘 필자의 기고는 철저히 공적인 관점에서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적인 정리(情理)는 배제했다. 아울러, 또 다시 이 사건을 '의학계 대 비의학계', '외국파 대 국내파'의 대립 구도로 규정하려는 어떠한 불순한 의도도 배격돼야 한다. 이 절체절명의 사태 앞에서 다시금 편 가르기로 반사적 이익을 찾으려 한다면, 이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두 번 범하는 것이다.
  
  이 사태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제기된 의혹이 지금 문제가 된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의 니콜라스 웨이드 기자는 〈네이처〉의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고, 연구 부정행위에 관한 실제 사례를 조사해 저서로 펴내기도 한 이 분야의 전문가다. 웨이드 기자는 여러 차례 필자와 전화 통화 및 이메일 교환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명히 했다.
  
  "모든 연구 부정행위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것은, 실제 부정행위가 드러나기 매우 오래 전부터 이미 자료 조작(data cooking)이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벌써부터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의 진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며, 국내 최초의 복제소인 영롱이를 놓고도 말들이 많다. 그렇지 않아도 체세포 핵이식 줄기세포에 대한 의혹이 사실로 입증됨으로써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린 황 교수께서는 물론 억장이 무너지실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 의혹들을 불식시킬 책임(burden of proof)은 이제 당신에게 주어져 있음을 정중히 알려 드린다.
  
  왜 그런가? 서울대가 자체 진상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 이전에 많은 사람들은 '과학은 과학으로 풀어야 한다'며 후속 연구와 논문을 통해 줄기세포의 진위를 입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얼핏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정직한 오류(honest error)'만이 후속 연구의 재현으로 이전 논문의 진위를 입증해도 무방하다는 '연구 부정행위 처리의 대원칙'을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나온 주장이다.
  
  즉 당시에 가용한 정보와 기술 수준으로는 그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었던 경우에 한해 후속 연구에 의한 진위 검증이 타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필자가 이전 기고를 통해서 밝힌 것처럼, 제기된 의혹은 결코 정직한 오류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중대한 범죄 행위로 간주해야…
  
  더 중대한 문제가 또 있다. 황우석 교수가 만들었다고 '주장'한 핵이식 줄기세포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수 없이 많은 여성으로부터 난자를 제공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거짓으로 점철된 이전 논문의 결과가 막연히 사실일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 실시되는 후속 연구에 위험을 무릅쓰고 난자를 기증하는 셈이다. 요컨대 난자 매매나 암묵적 강제에 의한 난자 공여와는 비교도 할 수도 없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연구 부정행위가 선량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범죄 행위로 간주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안이 이러함에도 후속 연구의 결과를 기대하거나 또는 들리는 것처럼 냉동 줄기세포를 복원하는 데에 집중한다면 더 큰 과오를 범하는 것임을 감히 말씀 드린다. 이러한 연구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 더 시급한 과제는 이전 연구와 관련해 제기된 의혹을 낱낱이 해명함으로써 한 점의 거짓도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자발적 난자 제공자의 선의를 악용하지 않는 길이다. 동시에 이전의 과오에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방법이다.
  
  문제가 된 연구에 저자 등으로 관여한 20여 명의 자칭 '학자'들의 신상에 대한 조치는 해당 대학이나 기관에 맡길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사안의 경중에 따라 분명한 행정 조치를 취해야 한다. 미 연방규정(42 CFR Part 93)은 관련자에 대한 연구비 지원 중단은 물론, 심지어는 거짓 결과를 내기 위해 기존에 사용한 연구비까지 물어내도록 요청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 공무원이 이러한 연구 부정행위에 직간접으로 관여했으면 형사법에 따른 소추 대상이 된다. 물론 모든 연구 부정행위 관련자는 앞으로 어떠한 정부 관련 자문위원의 자격도 얻을 수 없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연구 부정행위를 통해 선량한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범죄 행위를 주도 또는 묵과한 사람들이 한 국가의 과학 기술 정책을 좌지우지하도록 내 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확신의 표현인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 사태의 전개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우리 사회에 아직 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양심과 진실의 불씨를 확인했다. 강양구 기자로 대표되는 〈프레시안〉은 온갖 박해와 매도에도 불구하고 정론을 지향함으로써 상황에 따라 춤추듯 요동하는 대형 언론사의 이중적 행태를 매우 부끄럽게 만들었다.
  
  비이성적 네티즌들의 폭거로 회사의 존망을 앞에 둔 상태에서도 진실 보도의 원칙을 지켜낸 〈PD수첩〉은 우리에게 그래도 행동하는 양심적 지성이 살아 있음을 보여 주었다. 아울러, 의혹을 파헤치는 데 결정적 공로를 한 많은 젊은 과학자들의 존재는 필자처럼 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자부심이 됐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오직 목숨을 걸고 이 엄청난 연구 부정행위를 제보한 '내부 고발자'의 용기 있는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필자는 이 분께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며, '기립 박수(standing ovation)'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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