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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 사람  (2005-11-26 17:47:50, Hit : 568, 추천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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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우석 사태의 부정적인 점과 긍정적인 점

 

대중문화의 한 특징 중에는 스타를 통한 욕구의 대리 만족이다. 대중스타들을 푹빠진 청소년들은 그들의 많은 시간과 삶을 그들을 쫓아다니며 소비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중스타들에 대한 안티가 들어오면, 전쟁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보면서, 어른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찬다. 청소년들의 비이성적인 대중스타에 대한 몰입을 걱정하면서 말이다.

근데 황우석이란 기호를 통해 표출된 우리 사회의 어른 문화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아니 더욱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 하지 않다. 박정희, 전두환에서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던 정치적 스타들에 대한 영웅주의적 몰입은 이미 잘 알려진 현상이다. 근데 이들은 이미 죽었거나, 너무 늙었거나,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바로 이때 우리사회의 미숙한 어른들을 위한 대중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바로 황우석이 이들 미숙한 어른들을 위한 스타로 등장했던 것이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황우석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과학이나 생명윤리가 아니다. 황우석을 소비하는 미숙한 어른들의 <빠돌이, 빠순이 문화>이다. 황우석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나라의 수준 낮은 기초 과학에 대한 인식이나 지원, 그리고 그 속에서 만들어진 조급한 성과주의와 이에 기반한 저급한 과학 윤리가 아니다. 바로 황우석을 소비하면서 수용하는 우리 사회의 미숙한 어른들의 집단적인 광기이다. 영웅을 만들어 환상을 소비하는 그 감상적 수준의 사회적 분위기 말이다.

이렇게 물어보자. 과연 지금 황우석이란 기표를 통해 이상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광분한 미숙한 이 어른들이, 황우석 이전에 이 사회의 기초 과학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있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황우석이란 코드를 걷어내었을 때, 과연 이들이 지속적으로 한국 기초과학의 미래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 지 말이다.

결국 모든 논의의 길을 황우석 죽이기와 살리기로 집중되면서, 이번 사태를 통해 논의되고 개선되어야 할 기초 과학에 대한 지원과 국제적 수준으로 재정비해야 될 과학 윤리에 대한 문제는 저 멀리로 내던지고 있다.

지금 사이비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광기에 휩싸인 미숙한 어른들은 제2, 제3의 황우석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황우석 사태가 몰고온 문제를 한국적 상황이라는 이상한 단어로 감싸주고자 하는 것은 황우석 그 개인에게나 제2, 제3의 황우석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냉정하게 황우석 사태가 우리에게 던져놓은 한국 기초 과학의 현재와 그 윤리적 허점을 재정비하는 기회로 이번 사태를 이끌어가는 것이, 황우석 사태를 보다 발전적으로 만들어주면서, 이땅에 제2, 제3의 황우석이 탄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다.

황우석이 이땅에 기여를 한 것은 단순히 그가 이룬 배아줄기 세포 연구 성과만이 아니다. 황우석이 이땅에 기여한 것은 이 긍정적인 연구 성과와 더불어 한국 기초 과학의 현실적-윤리적 문제점들을 펼쳐놓았다는 것이다. 문제의 지점을 펼쳐놓음으로써 문제를 극복할 대안적 모색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황우석 신드롬을 감상적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소비하는 이땅의 미숙한 어른들은, 이런 발전적 논의의 장을 스스로 폐쇄시키면서, 오히려 황우석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방식이 잘못되면 역설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황우석 사태가 보여준 하나의 긍정적인 점은 있다. 바로 한국 사회의 밑바닥에 놓인 감상적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얼마나 파시즘적 토양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하나는 바로 민주 개혁 세력이라고 불리는 일부 개혁 세력들이 국수주의적 보수주의자들과 아주 많은 감상적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적어도 이 두가지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는 점은 이번 황우석 사태의 긍정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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