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카산드라'를 위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쩌면 목마라는 상징으로 더욱 잘 알려진 트로이 전쟁의 중심에는 아가멤논과 헬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또한 맹장 아킬리우스와 헥토르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쩌면 트로이 전쟁의 처음과 끝, 그 깊은 곳에는 전설적인 예언자였던 카산드라가 자리잡고 있다. 카산드라는 태양신 아폴로에 의하여 신성한 예지력을 소유하게 되지만, 또한 아폴로의 저주로 인하여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여인이다.

2005년 11월의 대한민국!! 지금 여기 카산드라의 운명을 밟고 있지만, 우리가 결코 카산드라처럼 보낼 수만은 없는 '제2의 카산드라'가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을 혹자는 'PD수첩'이라고도 부르고, 혹자는 '불치병 환자들의 희망을 짓밟는 매국노들'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한낱 서푼어치 이름이야 무엇이 대수이랴. 쌀비준안 통과에 항의하다 자식같은 폭력경찰의 곤봉과 방패 앞에 유명을 달리한 故전용철의 죽음과 골곡진 사연마저 그저 한국사회에 몰아치고 있는 <타도 'PD수첩'!!>이라는 토끼몰이식 굿판에서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지금 'PD수첩'의 취재과정에서 벌어졌다는 미확인성 헤프닝이나 뒷이야기에는 관심이 솔직히 없다. 그리고 더하여 그런 이야기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굿판의 핵심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PD수첩'에 의하여 후속으로 기획되고 있다는 내용의 적절성 혹은 사실성 여부에도 관심을 멀리할 것이다. 바로 그 이유는 현재 비정상적이고 희극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한국언론의 들쥐근성과 이에 적절하게 추임새를 불어넣는 빗나간 애국주의에 대한 넌덜머리라고 보면 된다.

만약 한국사회가 집단적 건망증에서 코딱지만큼이라도 자유로운 사회였다면, 심지어 불과 몇 개월 전의 상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당시 한겨레신문마저도 맹목적인 황우석 우상화에 고개를 숙이고 투항을 할 지경이었으니, 여타 다른 언론들과 사회적 검증틀은 전혀 작동되지 못하고 그저 황우석팀의 입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며 부푼 희망만 키워왔던 것은 아닌가? 심지어 수많은 자연과학자들과 진보적 사회단체에서 요구했던 많은 기초적 의혹들마저도 황우석팀은 기막힌 정치적 술수로 대응했다. 그중에서 소위 "민주노동당의 국정감사 자료요청 때문에 연구활동에 엄청난 차질이 있다"는 둥의 말도 안되는 궤변을 언론에 흘렸던 상가집 발언은 백미중의 백미였다.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사태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이다. 다만 학계 내부의 시선에 따른 논쟁은 주견과 자격이 못되어서 나설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첫째는 언론의 기본적 본분을 오로지 'PD수첩'만이 총대를 매고 행사하였으며, 기간 이 핵심을 외면하며 혹세무민을 거듭했던 나머지 언론들의 안면몰수 및 증거인멸 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그 냄비언론들의 증거인멸을 위한 마녀사냥의 재물로 채택된 <'PD수첩' 물어뜯기>가 결합되어 알맹이가 부실한 거대한 쇼비지니즘 상태로 여론몰이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 다른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욱 근원적인 감정의 과잉 출구는 전자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바로 이 부분이 한국언론의 청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거대언론의 임무방기와 들쥐근성

요즘 난데없이 '진실'의 정의와 의미에 대한 주석붙이기 게임이 한창이다. 냄비언론들은 국익과 진실이라는 해괴한 대결구도를 만들어 놓고 선택을 강요하는가 하면, 평소에는 '비판정신을 통한 진실의 추구'를 언론의 본분인 양 떠벌이던 거대언론들은 상대적 소수에 불과한 'PD수첩'류들을 딴지꾼으로 매도하기에 급급하다. 하기야 언제 저들이 단 한 번이라도 소수의 발언권을 인정한 적이 있었는가. 오직 언제나 그들은 다수를 빙자하여 주류의 체계를 반석처럼 다지는데 능할 뿐이다.

더 나아가 혹자는 <무조건적인 진실>이 아니라 시기와 여건을 고려하는 <'지혜로운'(?) 진실>을 주문하지만, 나는 솔직히 무식하여 그 '지혜로운'(?) 진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지혜'가 목전의 이익을 위하여 사소한(?) 반칙과 선의의(?) 거짓 쯤은 공적으로 양해하고 묻어두자고 하는 의미라면 그저 한글을 만든 분들이 애처로울 뿐이다.

실제 황우석팀의 논문을 게제했던 사이언스 5월호에는 같은 비중과 분량으로 생명윤리의 중대성에 관한 다른 논문이 실렸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우리 언론의 보도환경은 어떠했는가? 과연 지금 'PD수첩'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는 거대언론들은 당시에 치정주의의 주술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던가? 이는 황우석 교수가 기자회견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과학과 함께 인류문명을 이끌어 온 또 다른 수레바퀴인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마치 윤리('PD수첩'의 방송내용')에 대한 기본적인 점검이 과학(황우석팀의 성과)을 방해한다고 몰아세우는 아햏햏한 광풍에 입을 여는 언론은 과연 있는가?

그렇다면 이들 냄비언론들은 왜 지금처럼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침잠하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자승자박에 대한 두려움이요, 제 얼굴에 침뱉는 용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황우석팀의 입만 통하여 모든 기사를 작성하고, 확인되지 않은 미래의 부가가치를 계량화시켜 많은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의 주술을 걸어왔던 스스로의 이력을 끝끝내 고집하고 싶은 것이다. 이로써 한국언론의 문제는 'PD수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준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하여 오히려 정당한 역할을 행사한 'PD수첩'의 지난주 보도내용을 떼거지로 과도하게 물어뜯으며 공격하는 더러운 동업자 정신에 존재하는 것이란 말이다.  

이들은 카르텔의 외연을 확장시키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항상 반쪼가리 정보를 절대시하고, 심지어 사실이 아닌 내용을 윤색하여 기정사실로 만들어 유포시킨다. 이들은 청의협을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들과 민주노동당에게 '줄기세포연구 자체를 반대하는 집단'이라고 뻔뻔한 거짓 라벨링을 서슴치 않으며, 넋나간 불교계에서는 난데없는 '난자보시론'을 들고 나와 여성의 신성한 인권마저 희화화시켜 석가모니에게 귀쌈맞을 짓마저도 서슴치 않는다. 한 마디로 정제되지 않은 추상적 이익 앞에서라면 그 어떠한 짓마저도 서슴치 않겠다는 살기를 느낄 뿐이다.    

'국익'이 아닌 '인간'을 위하여, 아니 '인간'이 아닌 '약자'를 위하여...

지금 이 순간, 불행히도 거친 바람은 쉽사리 멈출 것같지 않다. 이미 'PD수첩'은 보도과정과 다른 의혹에 대한 후속탄의 방송을 기정사실화했으며, 청와대는 이 사태의 전개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박기영 보좌관에 대한 신임을 굳히지 않고 있다. 또한 황우석팀에 따르면 국내의 여파는 외국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하고, 국내여론은 'PD수첩' 죽이기를 뛰어 넘어 MBC죽이기로 진군할 양상이다. 외국(더 정확하게는 외국의 생명과학계)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황우석發-'PD수첩' 경유-도착지 미정>인 희한한 굿판이 조성된 선정성에 힘입어 치킨게임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우리가 황우석팀의 성과에 왜 주목했는지를 되새겨야 한다. 물론 그들에게는 각각 다양한 이유가 있다. 황우석팀의 열정과 수많은 희귀난치병 환자들의 고통과 염원, 그리고 오랜 생명과학계의 숙원을 한꺼풀 열어젖힌 많은 연구진들의 노고들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실체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살림살이도 팍팍해서 별로 살 맛이 없던 가운데 그것도 기초과학의 변방으로 취급받던 조국의 과학자가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더 나아가 그 결과가 엄청난 경제적 이익으로 환원된다니 너냄없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성원했던 국민들의 기대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라도 더욱 냉정하고 거시적인 시선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불과 몇 년 전에 벌어졌던 실체없던 '국익논쟁'에서 더욱 치열한 반면교사를 거듭해야 한다. 적어도 백주대낮에 생사람을 두들겨 죽여 놓고도 등돌려서 생명을 운운하는 대한민국은 이제 그만둬야 하지 않겠는가? '국익'이 아닌 '인간'을 위하여, 아니 '인간'이 아닌 '약자'를 위하여...

'PD수첩'이여, 어제밤 너를 보며 안타까웠던 것은 광고없는 방송이어서가 아니다. 막말로 지난 일주일간의 숱한 번민과 광란의 과정 속에서도 끝까지 냉정을 잃지 않고 시청자에게 재판단을 구하려는 사회자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 대하기 억색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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