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태우스 > 이건 오버라고 본다

저 이 책 읽었어요!

 

 

 

피디수첩이 황박사의 윤리 문제를 제기했을 때, 피디수첩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황박사의 업적은 인정한다. 다만 짐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난 그런 선의만큼은 얼마든지 인정할 수 있었다. 때문에 황박사의 팬카페 회장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황박사의 업적이 사기라는 전제하에서 취재를 시작한 것”이라는 말을 했을 때, 오버라고 일축해 버렸다. 하지만 후속보도의 내용을 접하고 나니 오버하는 것은 오히려 피디수첩이라는 걸 깨달았다. 윤리 문제는 언론사로서는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얘기지만, 논문에 실린 내용의 검증은 아무리 전문가 집단에 의뢰를 한다고 해도, 언론사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넓게 보아 과학계에 몸담고 있는 나같은 사람으로서는 네이쳐(싸이언스도 포함해서) 같은 잡지에 실린 논문이 조작된 것이라는 생각을 감히 할 수가 없다. 네이쳐가 아니라 웬만한 국내 잡지라 하더라도 실험결과를 조작해서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연구라는 것은 혼자 이루어지는 법이 없으며, 연구자에게 있어 결과의 조작은 곧 그의 죽음을 뜻한다.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거기 관여된 사람들은 모두 과학계에서 영원히 추방된다. 때문에 황박사의 연구에 관여된 그 모든 사람들이 조작 사실을 은폐했다는 건 도무지 말이 안되는 소리다. 또한 황박사가 그런 정도의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 훨씬 전에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다.


아무리 시시한 잡지라 해도 논문이 투고되면 몇 명의 전문가가 검증을 한다. 하물며 논문 게재율 (투고된 논문 중 채택되는 비율)이 5%도 안되는 네이쳐에 논문을 싣기 위해서는 몇 달에 걸쳐서 까다로운 검증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네이쳐는 우리같은 중진국에게 관대하지 못하다. 책에 썼던 얘기를 다시 해보자. 우리 학계의 H 교수가 분류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일을 해낸 적이 있다. 그는 네이쳐에 투고를 했지만, 거기서는 차일피일 시간을 끌면서 게재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알고보니 심사위원 중 한명이 비슷한 일을 하는 독일의 연구팀에게 “이러이러한 일을 한국 애가 했다. 니가 어서 그 일을 끝내고 논문을 써라.”고 한 것이었다. 다행히 그 일이 잘 안되어 H교수는 네이쳐에 논문을 실을 수 있었는데, 이런 일은 결코 드문 게 아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황박사의 업적이 네이쳐에 실렸다. 무슨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수백, 수천번의 실패를 거듭하며 만들어낸 성과를 우리나라의 누가,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과학자에게 “니 논문을 검증해보자.”고 말하는 것만도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대단한 연구를 해본 적이 한번도 없는 나같은 사람도 그런 요구를 받으면 발끈할 거다. 뉴스를 들으니 피디수첩은 복제소에 대해서도 검증을 하자고 했단다. 과학계에 종사하는 내 한계일 수 있지만, 그 뉴스를 듣고나니 “얘네들이 단체로 돌았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피디수첩은 그간 우리 사회에 기여할 소중한 일들을 많이 했다. 황박사의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 것 역시 그 안에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전공을 벗어난 분야에까지 카메라를 들이대다가 그간 쌓아둔 명성과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질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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