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바다 쭈꾸미 통신 - 꼴까닥 침 넘어가는 고향이야기
박형진 지음 / 소나무 / 200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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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자살, 분신, 게다가 생존을 위해 시위하던 농민이 살인적인 진압으로 사망하는 일도 일어났다. 살려는 의지마저도 살해당하는 세상이라니… 절망적이다.

세상 많이 변했다. 먹을 것을 생산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먹을 것이 귀했고, 먹을 것에 인간미가 스멀거리며 묻어날 수 있었던 시대가 이젠 머나먼 과거가 되어버렸다. 과거, 그것은 잊혀져야만 하는 불운한 운명을 안고 태어나는 것…
현재는 비만을 고민해야 하고, 흙 묻은 손은 가난하거나 못 배우거나 하찮다. 1차 산업은 구시대의 산물로서 천대를 감내하며 ‘첨단의 IT 산업시대’를 살아내야 한다. 이 가혹한 세상은 적응 아니면 죽음을!!! 외친다. 어찌 반도체, 휴대폰, LCD, 자동차 수출국가가 쌀이나 생산하랴 이러면서 ‘1차 산업 고사시키기 작전’을 지난 10여년간 펼쳐 농민들을 빚쟁이로 만들어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노련한 농업 근로자’들을 도시의 가난한 노동자 계급으로 전락시키려고 한다.
농민은 IT산업의 장애이고, 시골은 개척의 대상이고, 농지는 부동산 산업에 편입되어야 하는 돈 덩어리일 것이다. 구조조정 좋아라하고, 경쟁 좋아라하고, 자본 좋아라하는 자들에게는 말이지…

요즘에 어울리지 않게 이 책에서는 구수한 된장 냄새가 난다. 아니 푹 익은 청국장이다. 탁탁거리며 타는 장작 냄새도 난다. 시골 노인들의 주름진 손마디가 느껴지고,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만선의 노랫가락이 들린다. 계절은 바뀌고, 그 때마다 먹을 것은 소박하지만, 웬지 풍요롭고 따스한 일상들. 인간적인 관계들 속에서 피어 오르는 깊은 맛, 깊은 향은 잊혀질 수 없는 것들인데… 아련하다. 이 아련함은 아마도 앞으로는 못 느낄 것이라는 선언에 가깝기 때문에 더하다.

‘내 한입만 도’라고 말하고 싶은 구절마다 우리 모두의 고향이 서려있다. 귀에서 종소리가 날만큼 저자의 입담의 힘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고이는 침을 주체할 수 없게 한다. 시골 맛이 아니라, 이게 진국이여…
글만으로도 인간을 자극하고,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의 갈증을 불러온다. 사람들, 풍습, 전통, 요리법, 맛, 향, 놀이가 어우러지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그러나 사투리가 어렵게 느껴지고, 경험해 보지 못한 풍경에 낯설어 할지도 모르겠다.

낯선 그곳, 그것들, 그 사람들을 담아낸 이 책은 풍요의 계절, 가을부터 시작하여 고된 겨울과 봄을 이겨내고, 희망을 키우는 여름으로 끝을 낸다. 가을이 다시 올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부황에 죽어간 사람들, 도시로 떠나 소식도 없이 어렵게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애잔하게 밤공기를 가른다.
누군가의 영원한 가을을 위해, 우리는 오랜 겨울을 이겨내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길고도 혹독한 겨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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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2-03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입 벌리세요.^^

이 맛난 리뷰를 놓쳤구만요.
저도 몰래 사놓은 책이어유.
빨리 냄새라도 맡고 싶어요.

라주미힌 2005-12-03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