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이 신(神)을 발명했다?

어떻게 해서 우리 사고 안에서, 사고 밖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사고가 생겨난 것일까? 인류는 언제 어떻게 ‘초월’과 접촉하게 되었을까? 초월성의 직관, 그것은 최초에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을까?

이 난해한 물음에는 매우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초월성을 체험하는 일은 인간의 지성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마음의 구조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 그리고 이런 신화적 사고는 구석기 시대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뇌 구조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졌다는 것.

1980년대 이른바 ‘뉴아카데미즘’의 기수로 일본 지성계를 흔들었던 저자. 그는 인지고고학의 연구 성과에 기대 인류의 초월성 체험이 대략 3만 년에서 4만 년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진단한다.

‘스피리트(Spirit·정령)’로 인해 인류는 ‘초월’과 만나게 되는데, 우리의 직접적 선조인 현생인류는 이전의 네안데르탈인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뇌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뉴런의 결합 방식이 훨씬 복잡해져 다른 영역의 지식을 횡적으로 연결해 가는 새로운 지성의 통로가 열렸다는 것.

“비유를 본질로 하는 ‘유동성 지성’이 엄청나게 분출하면서 ‘감각 저편’에 대한 초월적 사고를 탄생시켰다.”

이 책은 구석기 인류의 사고에서부터 일신교 성립에 이르기까지 초월적인 것에 대해 인류의 사고와 관련이 있는 거의 모든 영역을 답파(踏破)하고자 한다. 신화에서 시작해 글로벌리즘의 신학적 구조에 이르기까지 자유분방한 걸음걸이로 인류의 지(知)와 종교의 기원을 더듬는다.

이 책의 시리즈 제목 그대로 ‘카이에 소바주(Cahier Sauvage·야생적 사고의 산책)’다. ‘스피리트에서 유일신’으로의 이행 과정을 세밀하게 살피며 절대적 권력을 가진 왕이나 국가의 탄생이 어떻게 일신교적 세계관의 탄생과 연관되는지 탐색한다.

저자는 현대의 상품사회에 이르러 인간의 마음 내부에 있는 초월성의 영역을 생생하게 일깨워 주던 스피리트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스피리트는 더는 사람들의 영혼을 바깥으로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성령의 바람이 어디서도 불어오지 않는 시대, 인류의 마음의 역사에서 이처럼 빈곤한 시대는 없었다….”

수천 년에 걸쳐 초월성으로 통하는 통로를 만들고 이름을 부여해 온 것은 종교였다. 그러나 이제 그 통로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웬만해서는 은총이나 기적조차 통풍되지 않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저자는 낙관한다.

인류에겐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뇌이자 마음이다. 수만 년이라는 시간을 견디며 본래의 순수함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현생인류의 뇌 속에서는 아직도 스피리트가 연면히 살아 숨쉬고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여전히 야생(野生)이다!”

원제 ‘神の發明’(2003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17세기 바로크시대를 연 이탈리아 천재화가 카라바조(1571∼1610)에 관한 평전이다. 우리에게는 대중적으로 낯선 화가이지만, 자신의 조국 이탈리아에서는 10만 리라짜리 지폐 앞면을 장식할 정도로 대접받고 있는 문화적 영웅이다.

저자가 평가하는 카라바조의 위대함은 교회나 제도에 종속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중세시대에 인간 내면의 추악함, 고통, 배반, 슬픔, 속임수, 환희의 체험 등을 화폭에 표현하며 ‘아름다움과 추함, 성속(聖俗)의 경계를 허물었던 화가’라는 것.

살인자로 오랜 도피생활을 할 정도로 부침이 심했던 삶을 산 카라바조는 로마 뒷골목의 거지, 불량배, 매춘부, 집시, 협잡꾼 등을 때로 예수처럼, 성자처럼, 막달라 마리아처럼 표현했다. 하늘 위의 신이 아니라 땅 위의 신을 화폭에 구현하려 했던 것이다. 미술평론가 못지않은 전문적인 작품 설명과 책의 주인공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수준 높은 미술서가 되었다.

허문명 기자

 

 

 

 

 

1923년 모스크바에서 출간된 블라디미르 클라우디에비치 아르세 니에프의 책을 번역했다. 막심 고리키가 저자의 풍부한 자연묘사 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키플링의 ‘정글북’이나 페니모어 쿠퍼의 ‘모히칸 족의 최후’와 비견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이 책은 자연과 하나되어 사는 사람이 얼마나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소위 문명화된 인간에게 퇴화된 능력을 어디까지 지 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의 대자연 묘사는 탁월하기 그지없다. 저자는 러시아 극동 탐험가이자 지리학자이며 작가이다. 김 욱 옮김.

엄주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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