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광풍

예전에 촛불집회를 광풍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지적하니까 누가 넓을 광 바람 풍이라고 변명하던 게 생각난다.

황우석씨 관련한 일에 대해 사실 별로 관심이 없다. 일단 '과학'이 들어가잖아. 언제 과학의 '과'자에라도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근데 황우석씨 문제에 대중이 난리를 친다고 하니 어떻게 난리를 치는가 해서 한겨레 댓글을 하나 퍼 봤다. 다행히 심각한 욕설 같은 거나 등등은 안 보여서, 평소 살벌한 댓글들에 놀라곤 하던 내가 보기에 다른 때보다 크게 심한 말은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대중의 일그러진 애국주의가 사람들을 미쳐 날뛰게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나는 하도 애국심이 없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애국심에 대해 유추를 잘 못하겠다. 댓글로 표현하는 애국심이란 어떤 걸까?

문득 어릴 때 즐겨 보던 만화책들이 생각난다. 80년대 초반 당시 이상무의 많은 만화들은 재일교포들이 박해를 이겨내고 귀화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이현세의 대표작들도 '오사까의 까치' 등의 재일교포 얘기였고, 허영만 역시 각시탈이라는 일제시대 항일 얘기였다.

나는 그 만화들을 즐겨 봤고 그 만화들이 그 사람들의 대표작인 만큼 가장 많은 사람들이 봤던 만화들일 것이다. 그러니 그때 내 경우를 통해서 유추를 해볼 수는 있겠다.

내가 애국심이나 일그러진 애국심으로 그 만화를 즐겨 봤을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당시에 내가 그것보다 더 좋아한 만화는(각시탈과 비슷한 부류 중에;사실 젤 좋아한 만화는 도라에몽이나 하느님께 보내는 편지 같은^^ 만화였다) 황재의 흑나비 시리즈나 이재진(맞나?)의 불청객 시리즈였다. 흑나비는 무협의 고향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불청객은 스파이전의 실감나는 세계인 미국을 중심으로 했다. 한마디로 만화의 세계에서는 애국심이 문제가 아니다. 무협은 중국에서 펼쳐져야 재밌는 것 아닌가. 용소야를 봐도 작은검법자를 봐도 일본만화 역시 무협은 중국에서^^<---앗 각시탈보다 흑나비를 내가 더 좋아한 건 역시 비주류성향인가

(음 그럼 재일교포만화하고 비교할 만한 게 뭘까?)

뭐 어쨌든 그렇다. 뭐가?(흐미 논지에 별 도움이 안 되는 논거가 됐네^^)

인터넷 댓글 쓰는 사람들은 얼마나 애국자일까? 그 사람들이 가령 자영업자라면 세금은 제대로 신고하고 살까? 당연히 아닐거다. 우리나라에 애국자가 그렇게 많을 거라는 걸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애국자가 아니라면 애국적 소재를 즐긴다고 봐야겠다. 즐긴다.

즐기긴 하는데 유쾌하게 즐기는 게 아니라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격정적으로 즐기는 걸 텐데, 황우석 박사가 억울한 사람의 배역을 맡은 것 같다. 그 정도 잘못은 너나 나나 다 하는 것인데, 한참 잘 나가다가 뚜드려 맞고 있는 사람의 억울함에 자기 일처럼 맘이 불편해지는 거 아닐까.

댓글 다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기본적으로 자기 입장을 길게 표현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일 텐데, 이들이 황우석박사 편을 들기로 일단 마음을 먹는다면 뭔가 기댈 논거가 있어야 할 거고 학교에서 배우고 주류 언론이 내놓는 애국심에 호소하는 게 가장 손쉬운 일일 거다.

결론을 말하자면 대중들은 황우석 박사가 억울하게 보인다는 거고, 윤리니 어쩌니 하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고상 떠는 인간들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하는 거고, 황우석 박사가 나락으로 떨어질 만큼(가령 친일파 자식들은 잘 먹고 잘 사는 이런 세상에서) 잘못했다는 거에 동의할 수 없는 걸 거다.

그건 어릴 때 각시탈이 항일운동을 다루고 있어서 좋은 만화라고 얘기하는 애들의 정서하고 비슷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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