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하고는 3살 차이가 나는데 남동생이 유치원을 다닐 무렵부터 저보다 컸어요.
지금은 물론 무척무척 크죠.
여튼 덩치가 비슷하다 보니 별로 형으로 안여기는 경향을 보이더군요.

동생이 초등학교 1학년정도일 무렵에 볕 좋은 마루 앞에서 조각도를 갖고 놀고 있었는데
잘못해서 손가락을 베었답니다. 꽤나 심각하게 베여서 피가 마치 분수처럼 쏟아졌었죠.
동생은 막 울고 있고 손에선 포물선을 그리며 피가 흐르고 있고...
그 상황을 본 저는 어쨌냐?!
저는 사실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 누나 말로는 세수대야를 가져와서 그 피를 받았다고 합니다.
피를 멎게할 생각은 않고 말이죠.
생각해보세요. 포물선을 그리며 흐르는 피를 대야로 받고 앉아 있는 형-_-;

아무래도 이게 맺혀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뒤로 한 3-4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죠.
봄이 되면 못자리를 만들기 위해 황토를 파러 산 기슭으로 경운기를 끌고 가거든요.
아버지랑 동생하고 갔죠. 적당한 곳을 찾아내고 열심히 흙을 괭이로 파는데...
갑자기...쾅-
윽...-_-
괭이가 제 머리를 내리치는게 아니겠어요.
범인은 제 동생. 흙 파다 말고 제 머리를 내리쳤답니다.
저는 원래 잘 참는 터라 울지도 않고 아버지께 얘기했죠. 피 나온다고.
대충 피 멎는 듯 싶어서 흙 다 파고 가자고 얘기를 했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도 제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됩니다. 당연히 중단하고 집으로 왔죠. 쑥 같은 걸로 상처 부위를 지졌습니다.
동생더러 왜 그랬냐고 했더니 자기도 모르겠답니다.
제 머리엔 초승달 모양의 상처가 남아있게 됐죠.
나이를 먹어가면서 종종 그 얘기를 하는데 동생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답니다.
당한 사람만 기억하는 건가봐요...

그 녀석의 성격상 복수를 한 것 같진 않은데...여튼 왜 제 머리를 내리쳤는지는 알 수가 없네요.
괭이로 내려쳐도 흠집만 조금 난 제 머리는 참 단단하단걸 알았지요.

어쩌면 요즘 급격한 기억력 저하가 그것 때문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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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 2005-11-2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피가 나오는 이야기라 웃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결국 웃고 말았습니다. 옆에서 엄마도 웃으시네요.^^;; 피를 받은 건 그래도 동생 분의 피가 소중하고 아까워서 어린 나이에 바닥에 흘려버릴 수가 없어서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당한 사람만 기억한다는 거 저도 동의 합니다. 저와 오빠 사이에도 그런 애기가 많죠.^^ 시간 나는데로 저도 올리겠습니다.

라주미힌 2005-11-20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끼로 이마까
빠께쓰로피바다
그런거네요? ㅎㅎㅎ

호랑녀 2005-11-20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라주미한님 저도 딱 그 생각했어요.
도끼로 이마까 바께쓰로 피바다...ㅋㅋ
(이 페이퍼인 줄은 모르고,오늘 김장 열심히 하시다가 피를 보셨단 소린 줄 알았습니다, 소굼님)

▶◀소굼 2005-11-20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라/지나고 나니 뭐 웃고 넘어가지요^^; 그런데 제가 그때도 꽤나 냉정했나봐요. 당황도 않고 피 받고..흙 마저 파고 가자고 그러고-_-;;
라주미힌님/크;;제 일본 이름을 그걸로 해야할까봐요;
호랑녀님/옛날엔 그런 이름 재밌어 했는데...몸소 실천한 셈이네요;;
김장할 땐 고춧가루만 실컷 묻혔지요^^;